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지도에 표시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틀린 데나 빠진 데를 알려주시면 확인하고 고칩니다.
이 브라우저에만 저장됩니다. 서버로 아무것도 보내지 않습니다.
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서쪽에는 프랑크·서고트·동고트 왕국이 들어섰고 동쪽 로마만 제국으로 남았다. 유스티니아누스가 옛 영토를 되찾으려 했지만 역병과 재정 파탄이 뒤따랐다.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왜유스티니아누스는 제국을 옛 경계로 되돌리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반달·동고트 왕국의 내분이 개입의 빌미가 됐다.
결과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를 되찾았지만 20년 전쟁과 역병으로 국력만 소진했다.
로마법을 집대성하고 하기아 소피아를 세웠다. 옛 영토를 되찾으려다 국력을 소진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인물 · 537 · 옛 로마를 되찾으려 한 마지막 시도
로마법을 집대성하고 하기아 소피아를 세웠다. 옛 영토를 되찾으려다 국력을 소진했다.
【그때 그 자리】 527년 즉위했다. 서로마가 무너진 지 50년이었다.
그가 원한 것은 로마의 복원이었다. 지중해를 다시 하나의 바다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됐나】 532년 니카 반란이 일어났다. 전차 경주 파벌들이 합세해 도시가 불탔고 3만이 죽었다.
황제가 달아나려 하자 황후 테오도라가 막았다. 「황제의 자주색 옷은 훌륭한 수의입니다.」 서커스 곡예사의 딸이었던 여자가 제국을 붙들었다.
【어떻게 흘렀나】 벨리사리우스를 보내 북아프리카의 반달 왕국을 무너뜨리고(533), 이탈리아의 동고트 왕국을 쳤다(535~554). 에스파냐 남부도 일부 얻었다.
지중해가 다시 로마의 호수처럼 보였다.
동시에 「로마법대전」을 편찬했다. 천 년 동안 쌓인 법을 정리해 칙법휘찬·학설휘찬·법학제요·신칙법으로 묶었다.
이것이 뒤에 유럽 대륙법의 뿌리가 된다. 소유와 계약과 상속의 기본 틀이 여기서 왔고, 한국 민법도 그 계보 위에 있다.
하기아 소피아를 다시 지었다. 지름 31m의 돔이 창문 40개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완공하고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를 이겼노라」 했다고 전한다.
【그래서】 대가가 컸다. 전쟁 비용으로 세금이 무거워졌고 이탈리아는 20년 전쟁으로 폐허가 됐다.
541년 페스트가 돌았다. 콘스탄티노플에서 하루에 5천 명이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제국 인구의 3분의 1에서 절반이 죽었다는 추정도 있다.
그가 죽고 몇십 년 만에 되찾은 땅 대부분을 잃는다. 그리고 한 세기도 안 돼 이슬람이 온다.
【남은 것】 옛 로마를 되찾으려는 마지막 진지한 시도였다. 실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정리한 법이 로마보다 오래 남았다.
궁정 사가 프로코피우스가 공식 역사와 별개로 「비사(秘史)」를 남겼다. 황제와 황후를 악마처럼 그린 책이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지금도 논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