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나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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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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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청동기 제국들

히타이트·이집트 신왕국·바빌로니아가 사신과 군대를 주고받았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1건

아시리아-미탄니 전쟁BC 1350 – BC 1300
아시리아 vs 미탄니

히타이트에 얻어맞아 약해진 미탄니를 아시리아가 동쪽에서 밀었다.

와슈칸니 함락

결과미탄니가 지워지고 아시리아가 대국의 반열에 올랐다. 이때부터 아시리아는 700년간 근동의 상수가 된다.

50년 · 대국의 교체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2명

아케나텐사상BC 1350 · 신을 하나로 줄이려 한 파라오
BC 1353 – BC 1336 재위

태양원반 아텐만을 섬기겠다며 이름과 수도를 바꿨다. 배가 나오고 턱이 긴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새기게 한 것도 파격이었다.

  • 아텐 유일 숭배 — 기록상 첫 일신교 시도
  • 아마르나로 천도, 미술 양식을 사실적으로
  • 사후 모든 것이 되돌려지고 이름이 지워짐
네페르티티정치BC 1345 · 베를린의 흉상으로 남은 아마르나의 왕비
BC 1370 무렵 – BC 1330 무렵

아케나텐과 함께 태양신 아텐을 섬겼다. 3,300년 전 흉상이 1912년 발굴되어 고대의 얼굴 가운데 가장 유명해졌다.

  • 아케나텐의 대왕비, 아텐 숭배 공동 주도
  • 네페르티티 흉상(베를린 신박물관)
  • 아케나텐 사후 공동 통치자였다는 설

그 무렵의 사건

BC 1350
아마르나 종교개혁
한 왕이 신을 하나로 줄이려 했다.
아멘호테프 4세가 태양원반 아텐만 섬기겠다며 이름을 아케나텐으로 바꾸고 수도를 옮겼다. 미술도 사실적으로 바뀌었다. 그가 죽자 모든 것이 되돌려졌고 그의 이름은 왕명록에서 지워졌다.
BC 1323
투탕카멘
아홉 살에 즉위해 열여덟에 죽은 소년 왕.
재위 중 한 일은 아버지의 개혁을 되돌린 것뿐이다. 그런데 무덤이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은 채 1922년에 발견되면서, 가장 하찮았던 파라오가 가장 유명해졌다.

교역로

해당 없음

아케나텐

인물 · BC 1350 · 신을 하나로 줄이려 한 파라오

태양원반 아텐만을 섬기겠다며 이름과 수도를 바꿨다. 배가 나오고 턱이 긴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새기게 한 것도 파격이었다.

【그때 그 자리】 BC 14세기. 아멘호테프 4세로 즉위했다. 아버지 아멘호테프 3세 때 이집트는 부유하고 평화로웠다.

문제는 아문 신전이었다. 사제단이 땅과 재물을 쥐고 왕권을 넘볼 만큼 커져 있었다.

【왜 그렇게 됐나】 즉위 5년째에 모든 신을 버리고 아텐 하나만 섬긴다고 선언했다. 아텐은 태양 원반이다.

이름을 아케나텐(아텐에게 이로운 자)으로 바꾸고, 수도를 테베에서 아마르나로 옮겼다. 아무것도 없던 사막에 도시를 새로 지었다.

다른 신들의 이름을 비석과 신전에서 지우게 했다. 특히 아문의 이름을 집요하게 파냈다.

【어떻게 흘렀나】 예술이 바뀌었다. 그전까지 파라오는 완벽한 몸으로 그려졌는데, 아마르나 시대에는 배가 나오고 얼굴이 길쭉하고 목이 가늘게 표현됐다.

왕비 네페르티티와 딸들을 무릎에 앉히고 입 맞추는 장면이 새겨졌다. 신 같은 존재가 아니라 가족으로 그려진 것이다.

그 사이 밖은 무너졌다. 아마르나 문서 — 속국들이 보낸 점토판 편지가 380장 넘게 나왔는데, 「도와달라」는 요청이 반복된다. 답이 없었다.

【그래서】 죽자마자 되돌려졌다. 아들 투탕카멘이 이름을 투탕카텐에서 바꾸고 테베로 돌아갔다.

아마르나는 버려졌고 아케나텐의 이름은 왕명록에서 지워졌다. 「그 범죄자」라고만 적혔다.

【남은 것】 신을 하나로 줄이려 한 최초의 시도로 자주 인용된다. 프로이트는 모세가 아케나텐의 사제였다는 가설까지 냈다 — 지금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정치적 계산이었는지 진짜 신앙이었는지도 갈린다. 사제단의 힘을 꺾으려는 수단이었다는 견해와, 개인적 확신이었다는 견해가 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실패했다는 점이다. 한 사람의 뜻으로 천 년 된 믿음을 바꿀 수는 없었다.

지도에서 보기: BC 15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네페르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