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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아라비아에서 일어난 새 종교가 100년 만에 이베리아부터 인더스까지를 하나의 정치권으로 묶었다. 사산조는 사라지고 동로마는 영토의 절반을 잃었다.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해당 없음
신라 진골 성골 혈통이 끊길 위기에서 즉위한 한국사 최초의 여왕. 첨성대를 세우고 황룡사 9층 목탑을 건립하는 등 불교를 통해 왕실의 권위를 세우려 했다.
형제를 죽이고 아버지를 밀어내 즉위했지만, 신하의 간언을 듣고 돌궐을 꺾어 「천가한」으로 불린 황제가 됐다.
10년 만에 시리아·이집트·페르시아를 정복했다. 정복지의 세금·군대·달력 제도를 세워 아랍 부족 연합을 제국으로 바꿨다.
국법을 어기고 서역으로 나가 17년 만에 경전 657부를 싣고 돌아왔다. 그의 여행기는 인도 역사의 1급 사료다.
수의 대군을 살수로 끌어들여 궤멸시켰다. 30만 중 살아 돌아간 자가 수천이었다.
딸이 죽은 대야성 함락 뒤 고구려와 일본을 거쳐 당으로 갔다. 진골로서 처음 왕이 됐다.
메카의 상인이었다가 40세 무렵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메카의 박해를 피해 메디나로 이주(헤지라, 622년)한 뒤 공동체를 조직해 아라비아반도 대부분을 통합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인물 · 632 · 한국사 최초의 여왕
신라 진골 성골 혈통이 끊길 위기에서 즉위한 한국사 최초의 여왕. 첨성대를 세우고 황룡사 9층 목탑을 건립하는 등 불교를 통해 왕실의 권위를 세우려 했다.
선덕여왕은 신라 왕실의 성골 혈통 중 남자가 끊기는 위기 속에서 즉위한, 한국사 최초의 여성 군주다.
그는 즉위 이전부터 총명함으로 이름이 높았다고 전한다. 왕이 된 뒤에는 첨성대를 세워 천체를 관측하게 하고, 황룡사 9층 목탑을 건립해 주변 아홉 나라의 침입을 막아달라는 염원을 담는 등, 불교와 학문을 통해 왕실의 권위를 높이려 애썼다.
그의 치세는 백제와 고구려의 잦은 침공으로 순탄치만은 않았다. 이런 위기 속에서 그는 김유신, 김춘추 같은 유능한 인재를 적극 등용해 국방과 외교를 맡겼는데, 이들은 훗날 삼국통일의 주역이 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의 왕위 계승에 반발하는 목소리도 있었고, 말년에는 상대등 비담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김유신이 이를 진압했다. 그가 등용한 인재들이 이룬 통일 위업의 토대를 놓았다는 점에서, 그의 치세는 신라가 삼국통일로 나아가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