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클레티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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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AD 2025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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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전제군주정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제국을 넷으로 나눠 통치했고 콘스탄티누스가 다시 합쳤다. 수도가 동쪽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겨가고, 박해받던 기독교가 국교가 되어간다.

한반도

삼국의 성립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전쟁 1건

3세기의 위기235 – 284
로마 vs 내부·페르시아·게르만

황제가 군대에 의해 세워지고 죽는 일이 반복됐다. 은화의 은 함량이 5%까지 떨어지며 물가가 폭등했다.

에데사 260 — 황제가 포로가 됨팔미라 수복 273

결과50년간 황제가 26명 바뀌고 제국이 셋으로 갈라졌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사두정치로 겨우 봉합했지만 제국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졌다.

49년 · 황제 26명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1명

디오클레티아누스정치284 · 제국을 넷으로 나눠 살린 황제
AD 244 – AD 311

노예 출신 병사에서 황제가 됐다. 혼자 다스리기엔 제국이 너무 커졌다고 보고 넷으로 쪼갠 뒤, 스스로 물러나 양배추를 길렀다.

  • 사두정치 — 정제 둘, 부제 둘
  • 최고가격령으로 물가를 잡으려 함
  • 로마 황제로는 처음으로 자진 퇴위

그 무렵의 사건

300
바누아투의 사람들
한 섬에 100개가 넘는 말이 있다.
작은 섬무리에 서로 통하지 않는 언어가 100가지 넘게 산다. 인구 대비 세계에서 가장 언어가 많은 곳이다. 산과 바다가 마을을 갈라놓았고, 각 마을이 오래 따로 살았다는 뜻이다. 로이 마타의 무덤에는 마흔 명이 함께 묻혀 있었다.
300
야마토 정권
3세기 후반부터 7세기까지, 오늘날 나라·오사카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야마토 정권이 일본 열도의 여러 지역 세력을 통합하며 고대 일본 국가의 기틀을 놓았다.
이 시기 곳곳에 거대한 열쇠구멍 모양의 무덤('전방후원분')이 세워졌는데, 그 규모는 지배자의 권력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보여준다. 야마토 정권은 한반도의 백제·가야 등과 활발히 교류하며 유교·불교와 한자, 여러 선진 기술을 받아들였다. 6~7세기에는 쇼토쿠 태자가 불교를 진흥하고 중국식 관료제 요소를 도입하는 등 국가 체제를 정비했으며, 이후 다이카 개신(645년)을 거치며 천황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 고대국가 체제로 발전해 나갔다.
313
밀라노 칙령
기독교가 공인됐다. 박해받던 종교가 제국의 종교가 된다.
박해받던 종교가 공인됐고, 80년 뒤 국교가 된다.
325
니케아 공의회
콘스탄티누스가 소집한 첫 세계 공의회. 예수가 신과 「동일 본질」이라는 신조가 정해졌다.
아리우스는 아들이 아버지보다 낮다고 했고 알렉산드리아 주교들은 반대했다. 황제는 제국의 통일을 위해 300여 명의 주교를 니케아에 모아 결론을 강요했다. 여기서 나온 니케아 신조는 지금도 대부분의 교회가 외우고, 부활절 날짜도 이때 정해졌다. 종교 문제를 황제가 결정하는 선례가 함께 생겼다.
330
콘스탄티노폴리스
제국의 중심이 동쪽으로 옮겨갔다. 이 도시는 1123년을 더 버틴다.
제국의 무게 중심이 동쪽으로 옮겨갔다. 이 도시는 1,123년을 더 버틴다.
224
사산 왕조의 등장
페르시아가 400년 만에 돌아왔다.
아르다시르 1세가 파르티아를 무너뜨리고 아케메네스의 후계를 자처했다.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고 로마와 400년을 겨룬다.

교역로 4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인물 · 284 · 제국을 넷으로 나눈 황제

노예 출신 병사에서 황제가 됐다. 혼자 다스리기엔 제국이 너무 커졌다고 보고 넷으로 쪼갠 뒤, 스스로 물러나 양배추를 길렀다.

【그때 그 자리】 3세기의 로마는 50년 동안 황제가 스무 명 넘게 바뀌었다. 군인이 황제를 세우고 죽이기를 반복했고, 국경은 게르만과 사산조에 뚫렸으며, 화폐 가치가 폭락했다.

「3세기의 위기」다. 제국이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왜 그렇게 됐나】 달마티아 출신의 하급 병사에서 올라온 사람이다. 285년 황제가 됐다.

그가 본 문제는 하나였다 — 한 사람이 다스리기에 제국이 너무 크다.

동방과 서방에 각각 정제(아우구스투스)를 두고, 그 밑에 부제(카이사르)를 둘씩 두었다. 넷이 다스리는 사두정치다.

【어떻게 흘렀나】 행정 구역을 잘게 쪼갰다. 속주 수를 두 배 이상 늘리고 군사권과 행정권을 분리했다. 반란을 일으키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세금을 사람과 땅 단위로 다시 매겼고(카피타티오-유가티오), 화폐를 개혁했으며, 301년 최고가격령을 내려 물가를 잡으려 했다. 이건 실패했다 — 물건이 시장에서 사라졌다.

황제를 신격화했다. 자주색 옷에 보석을 두르고, 알현할 때 무릎을 꿇고 옷자락에 입 맞추게 했다. 로마의 원수(프린켑스)가 동방식 전제군주(도미누스)가 된 것이다.

303년 기독교를 대대적으로 박해했다. 교회를 헐고 경전을 불태우고 성직자를 잡았다. 로마사 최대의 박해다.

【그래서】 305년 스스로 물러났다. 로마 황제가 살아서 퇴위한 첫 경우다. 고향 스팔라툼(지금의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에 궁을 짓고 채소를 길렀다.

동료 막시미아누스가 돌아오라 하자 「내가 기른 양배추를 보면 그런 말을 못 할 것」이라 했다고 전한다.

【남은 것】 사두정치는 그가 물러나자마자 무너졌다. 서로 싸우다 콘스탄티누스가 통일한다.

그러나 그의 행정 개혁과 전제화는 남았다. 그가 박해한 기독교는 10년 뒤 공인되고 80년 뒤 국교가 된다.

스플리트의 궁전은 그대로 도시가 됐다. 지금도 사람이 그 안에서 살고 장사한다.

지도에서 보기: 2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콘스탄티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