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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1848년 혁명이 유럽을 휩쓸었다. 이탈리아와 독일이 통일되면서 잘게 쪼개져 있던 유럽 지도가 큰 덩어리로 재편됐다.
세도정치와 삼정 문란이 겹쳤다. 서양 선박이 연안에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문을 닫아걸었다.
왜콘바웅 왕조가 아삼과 마니푸르로 팽창해 영국령 벵골과 국경을 맞대자 세 차례 전쟁이 벌어졌다.
결과첫 전쟁으로 아라칸과 테나세림, 둘째로 양곤 일대, 셋째로 나라 전체를 잃었다. 마지막 왕 티보는 인도로 유배됐고 미얀마는 인도 제국의 한 주가 됐다.
왜과거에 낙방한 홍수전이 자신을 예수의 동생이라 믿고 배상제회를 만들었다. 기근과 아편전쟁 뒤의 혼란 속에 광시의 농민들이 모였다.
결과난징을 수도로 14년을 버텼으나 내분과 증국번의 상군, 서양의 상승군에 무너졌다. 2천만 명 이상이 죽은 19세기 최대의 전쟁이었고, 청은 한인 지방 군대에 기대게 되어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왜성지 관할권 다툼을 구실로 러시아가 오스만령 몰다비아·왈라키아를 점령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오스만 편에 섰다.
결과세바스토폴 요새를 1년 포위한 끝에 러시아가 졌다. 철도·전신·사진·종군기자가 처음 쓰였고 나이팅게일이 간호를 바꿨다. 러시아는 농노제를 개혁했고 빈 체제의 강대국 협조가 깨졌다.
왜소와 돼지 기름을 바른 탄약통을 입으로 물어 뜯게 한 것이 발단이었다. 힌두와 무슬림 모두에게 금기였다.
결과쌓인 것이 터진 것이다. 진압 뒤 무굴 마지막 황제 바하두르 샤 2세가 미얀마로 유배되고, 동인도회사 대신 영국 정부가 직접 다스리게 된다.
왜여러 개의 소국과 외세(오스트리아) 지배 지역으로 나뉘어 있던 이탈리아반도를 사르데냐 왕국 중심으로 통일하려는 리소르지멘토(부흥) 운동이 절정에 달했다.
결과카보우르 총리의 외교와 가리발디의 의용군(천인원정대)이 시칠리아·나폴리를 점령하며 통일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1861년 이탈리아 왕국이 선포됐고, 1870년 로마 병합으로 통일이 완성됐다.
왜노예제를 새로 편입되는 서부 주까지 확대할 것인가를 두고 남북이 갈렸다. 확대에 반대한 링컨이 당선되자 남부가 연방을 탈퇴했다.
결과연방이 갈라졌다 다시 붙으며 대륙 국가로 굳어졌다.
갈라파고스의 새들을 보고 자연선택을 떠올렸다. 20년을 미루다 종의 기원을 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 했다. 신분에 상관없이 사람이 같다는 말은 그때 조선에서 위험한 말이었다.
사포텍 원주민 출신으로 스페인어를 열두 살에 배웠다. 프랑스가 세운 황제를 몰아내고 공화국을 지켰다. 교회와 군의 특권을 없앤 개혁법을 밀어붙였다.
다윈과 동시에 진화론에 이르다
천인원정대를 이끌고 시칠리아와 나폴리 왕국을 점령한 뒤, 권력을 챙기지 않고 그대로 사르데냐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에게 헌납했다. 이탈리아 통일의 상징적 인물이다.
22첩을 접었다 펴면 전국이 된다. 목판에 새겨 여러 벌 찍을 수 있게 했다. 지도를 소수의 비밀에서 꺼낸 것이다.
연방을 지키고 노예 해방을 선언했다. 전쟁이 끝난 직후 암살됐다.
스쿠타리 병원의 사망률을 위생 개선으로 40%에서 2%로 낮췄다. 통계 그래프로 정부를 설득한 최초의 사람 중 하나다.
빅토리아 폭포에 이름을 붙였고 노예무역의 참상을 알렸다. 「리빙스턴 박사님이시죠?」라는 인사가 그를 다시 세상과 이었다.
네 개의 방정식으로 전자기학을 통합하고 빛이 전자기파임을 계산으로 보였다.
경복궁을 다시 세우고 서양과의 통상을 거부했다. 척화비를 전국에 세웠다.
8년간 완두콩을 교배해 유전의 규칙을 찾아냈다. 죽고 나서야 유전학의 아버지로 인정받았다.
총살 직전 사면돼 시베리아 유형을 살았다. 인간의 밑바닥과 신의 문제를 파고든 그의 소설은 20세기 철학과 심리학을 예고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역사를 계급투쟁으로 읽은 그의 사상은 20세기 절반의 세계를 움직였다.
폭발 사고로 동생을 잃고도 안전한 폭약을 만들어 거부가 됐다. 「죽음의 상인」이라는 부고를 읽고 유산을 인류에 남겼다.
15세에 즉위해 막부를 끝내고 에도를 도쿄로 삼았다. 그의 이름을 딴 45년 동안 일본은 봉건 국가에서 열강이 됐다.
원소를 원자량 순으로 배열해 주기율표를 만들고, 빈자리에 미발견 원소를 예측했다.
귀족으로 태어나 농민의 옷을 입고 죽었다. 그의 비폭력 사상이 간디를 거쳐 세계로 퍼졌다.
절대영도를 계산하다
세 번의 전쟁으로 독일을 통일했다. 이후 20년간 유럽의 균형을 관리했다.
손 씻기를 처음 주장한 의사
작동한 적 없는 계산 기계를 위한 절차를 최초로 적어 남겼다.
일이 열로 바뀐다는 것을 재다
라코타족을 비롯한 여러 부족을 규합해 미군에 맞섰다. 1876년 리틀빅혼 전투에서 커스터 중령의 기병대를 전멸시켰으나, 결국 1890년 체포 과정에서 사살됐다.
18세에 즉위해 산업혁명과 제국 팽창의 시대를 살았다. 인도 여제가 됐고 유럽 왕실의 할머니가 됐다.
1,093건의 특허. 멘로파크 연구소에서 발명을 산업으로 만들었고, 뉴욕에 세계 최초의 발전소를 세워 밤을 밝혔다.
압전 효과를 발견하다
기계식 컴퓨터를 구상하다
결핵균과 콜레라균을 찾다
기독교 도덕을 「노예의 도덕」이라 불렀고 위버멘시와 영원회귀를 말했다. 44세에 광기에 빠졌고 그의 책은 20세기 사상을 뒤흔들었다.
위에서 빠르게 바꾸려 했다. 일본의 힘을 빌린 것이 화근이었다. 사흘 만에 끝났고 10년 뒤 상하이에서 암살됐다.
백조목 플라스크로 미생물이 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증명했다. 최초로 광견병 백신을 사람에게 썼다.
조슈의 하급 무사에서 4번 총리가 됐다. 대일본제국 헌법을 기초했고, 을사늑약을 강요한 뒤 하얼빈에서 안중근에게 저격당했다.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인물 · 1859 · 20년을 미룬 원고
갈라파고스의 새들을 보고 자연선택을 떠올렸다. 20년을 미루다 종의 기원을 냈다.
【그때 그 자리】
종(種)은 신이 창조한 그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린네가 만든 생물 분류 체계도 이 전제 위에 서 있었다.
【왜 그렇게 됐나】
의사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의학과 신학을 차례로 공부했지만 어느 쪽도 적성에 맞지 않았다. 스물두 살에 박물학자로 비글호에 올라 5년간 남아메리카와 갈라파고스 제도를 돌았다.
【어떻게 흘렀나】
갈라파고스의 섬마다 핀치새의 부리 모양이 조금씩 다른 것을 눈여겨봤다. 귀국 뒤 맬서스의 「인구론」을 읽다가, 자원은 한정돼 있는데 생물은 그보다 훨씬 많이 태어나니 살아남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갈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 자연선택이다.
이 생각이 몰고 올 논란을 알았기에 20년 가까이 원고를 서랍에 넣어 두고 다듬기만 했다.
【그래서】
1858년, 동남아시아를 탐사하던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가 거의 같은 생각을 편지로 보내오면서 더는 미룰 수 없게 됐다. 두 사람의 이론을 함께 발표한 뒤, 이듬해인 1859년 「종의 기원」을 냈다. 초판은 출간 첫날 다 팔렸다.
【남은 것】
인간이 특별히 창조된 존재가 아니라 다른 생물과 같은 원리로 갈라져 나왔다는 이 결론은,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서 끌어내린 것에 이은 「두 번째 강등」으로 흔히 꼽힌다.
훗날 이 이론은 「적자생존」이라는 말과 함께 사회진화론으로 왜곡돼 인종주의나 극단적 경쟁 논리를 정당화하는 데 오용되기도 했는데, 이는 다윈 본인의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진화와 창조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미국 등 일부 지역에서 지금도 이어진다.
지도에서 보기: 1815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최제우 베니토 후아레스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 주세페 가리발디 김정호 링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