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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프랑스 혁명이 왕정을 무너뜨리고 '국민'이라는 새로운 정치 단위를 만들었다. 나폴레옹이 그 이념을 총검에 실어 유럽 전역에 퍼뜨렸다.
세도정치와 삼정 문란이 겹쳤다. 서양 선박이 연안에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문을 닫아걸었다.
왜무굴이 무너진 뒤 인도 중부를 지배하던 마라타 동맹의 내분에 회사가 개입했다.
결과웰즐리(뒷날 웰링턴)가 아사예에서 이기고 세 번째 전쟁으로 동맹이 해체됐다. 이로써 영국은 인도 아대륙의 실질적 지배자가 됐다.
왜혁명 프랑스를 무너뜨리려는 왕정 국가들의 동맹과, 그 포위를 깨려는 나폴레옹의 팽창이 맞물렸다.
결과23년간 유럽 지도가 계속 뒤집혔다. 워털루에서 끝나고 빈 체제가 들어섰다.
왜유럽 무역상을 통해 머스킷 총이 들어오면서, 총을 먼저 확보한 부족이 그렇지 못한 이웃 부족을 압도할 수 있게 됐다.
결과총을 먼저 손에 넣은 응아푸히족이 초기에 크게 우세했으나, 곧 다른 부족들도 총을 구하면서 전쟁이 뉴질랜드 전역으로 번졌다. 인구 이동과 전통적 세력권 재편이 뒤따랐다.
혁명의 이념을 총검에 실어 유럽에 퍼뜨렸다.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국민국가가 자랐다.
트라팔가에서 프랑스·에스파냐 연합함대를 꺾고 전사했다. 영국의 제해권이 굳어졌다.
원자설을 세우다
수원 화성에 거중기를 만들어 썼다. 천주교 문제로 18년간 강진에 유배됐고, 그 유배지에서 500권을 썼다.
정수론·통계학·측지학까지 남긴 업적이 방대해 수학자들의 왕이라 불린다.
노예로 태어나 프랑스·에스파냐·영국군을 차례로 물리쳤다. 나폴레옹에게 붙잡혀 알프스 감옥에서 죽었으나 이듬해 아이티가 독립했다.
최초의 전지를 만들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유럽을 울렸고 60년에 걸쳐 「파우스트」를 완성했다. 시인이자 정치가, 과학자였다.
청력을 잃고 유서를 썼지만 「운명」을 목덜미로 붙잡겠다며 일어섰다. 9번 교향곡의 「환희의 송가」는 유럽연합의 노래가 됐다.
마이소르의 왕으로 네 차례 영국과 싸웠다. 로켓 무기를 실전에 썼고, 그 기술이 영국으로 건너가 콩그리브 로켓이 됐다.
땅은 누구의 것도 아니어서 팔 수 없다고 했다. 흩어진 부족을 하나의 연합으로 묶어 서쪽 확장을 막으려 했다. 1813년 전사하며 그 구상도 끝났다.
기체 속 입자 수의 법칙
스페인, 이어 이 지역을 점령한 브라질(포르투갈)에 맞서 게릴라식 저항운동을 이끌며 우루과이 독립운동의 기틀을 놓았다. 정작 자신은 독립을 보지 못한 채 파라과이로 망명해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우두 고름을 접종해 천연두를 막는 첫 백신을 만들었다.
이베리아반도에서 프랑스군을 몰아냈고 워털루에서 프로이센군과 함께 나폴레옹의 마지막 도박을 끝냈다. 뒤에 총리도 지냈다.
나폴레옹 이후의 유럽을 왕정과 세력 균형으로 되돌렸다. 33년간 혁명을 억눌렀으나 1848년 혁명에 쫓겨났다.
덕 없는 공포는 해롭고 공포 없는 덕은 무력하다. 혁명을 지키려 단두대를 돌리다 자신도 거기서 죽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시집온 14세 소녀가 사치의 상징이 됐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은 하지 않은 말이지만 민중의 분노는 진짜였다.
아르헨티나에서 군대를 만들어 눈 덮인 안데스를 넘어 칠레를 해방하고 배로 페루로 갔다. 볼리바르와 만난 뒤 지휘권을 넘기고 스스로 유럽으로 떠났다.
던지는 창 대신 짧은 찌르는 창을 쓰게 하고, 소뿔 모양으로 감싸는 진형을 만들었다. 작은 부족을 10년 만에 남아프리카 최강으로 바꿨다.
안데스를 넘어 스페인군의 뒤를 쳤다. 오늘의 베네수엘라·콜롬비아·에콰도르·페루·볼리비아·파나마가 그의 원정에서 나왔다. 하나로 묶으려 했으나 갈라졌다.
정밀한 저울로 연소와 질량 보존을 증명했다. 프랑스 혁명 중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오스만의 알바니아계 군인으로 왔다가 실권을 잡았다. 유럽식 군대와 공장과 학교를 들였다. 아시아·아프리카에서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시도한 첫 예로 꼽힌다.
다섯 살에 작곡하고 여덟 살에 교향곡을 썼다. 「피가로의 결혼」「돈 조반니」「마술피리」와 미완의 「레퀴엠」을 남기고 빈에서 빈곤 속에 죽었다.
전류·전압·저항의 법칙
평생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우리의 틀로 본다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었다.
임금의 초상을 그리는 화원이면서 씨름하고 서당에서 우는 아이를 그렸다. 그림의 주인공이 왕에서 사람으로 내려온 순간이다.
청에 다녀와 열하일기를 썼다. 오랑캐라 부르던 나라가 실제로는 더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적었다.
동일과정설을 세우다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유럽의 공산품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 유럽. 세 대륙이 하나의 경제로 묶였다.
인물 · 1804 · 프랑스 황제
혁명의 이념을 총검에 실어 유럽에 퍼뜨렸다.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국민국가가 자랐다.
【그때 그 자리】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왕을 무너뜨렸지만 그다음이 정리되지 않았다. 공포정치로 수만 명이 단두대에 올랐고, 로베스피에르가 처형된 뒤 들어선 총재정부는 무능하고 부패했다. 물가가 뛰고 왕당파와 자코뱅이 번갈아 봉기했다.
밖에서는 주변 왕국들이 혁명이 번질까 두려워 연달아 동맹을 맺고 쳐들어왔다. 프랑스는 국민개병으로 맞섰다. 봉급을 받고 싸우는 용병 군대와, 나라가 자기 것이라 믿고 싸우는 시민 군대의 차이가 이때 드러났다.
【왜 그렇게 됐나】
코르시카 출신 하급 귀족의 아들 나폴레옹은 혁명이 아니었다면 포병 장교로 끝났을 사람이다. 신분 대신 능력으로 올라가는 길이 열리자 스물넷에 툴롱에서 준장이 됐다.
1796년 이탈리아 원정에서 그는 굶주린 군대에게 부자의 땅으로 데려가겠다고 말하고 실제로 이겼다. 파리에 전리품과 승전보를 보내면서 이름이 커졌다. 이집트 원정은 군사적으로 실패했지만, 그는 실패를 남겨두고 혼자 돌아왔다.
1799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1804년 황제가 됐다. 대관식에서 교황이 씌워주려던 관을 스스로 집어 썼다.
【어떻게 흘렀나】
1805년 아우스터리츠에서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을 깼다. 그의 방식은 병력을 빠르게 나눴다 모으고, 적의 약한 곳에 압도적으로 몰아치는 것이었다. 유럽 대부분이 그의 영향 아래 들어갔다.
두 번의 판단이 그를 무너뜨렸다. 하나는 영국을 굴복시키려 대륙봉쇄령을 내린 것이다. 유럽 전체가 영국과 교역을 끊자 경제가 먼저 상했고, 이를 어긴 나라를 치느라 힘이 흩어졌다. 다른 하나가 1812년 러시아 원정이다. 60만이 들어가 겨울과 초토화 전술 앞에 무너져 살아 돌아온 것은 수만이었다.
1814년 퇴위해 엘바로 갔다가 이듬해 돌아와 100일을 다스리고, 1815년 워털루에서 끝났다. 세인트헬레나에서 1821년 죽었다.
【그래서】
전쟁으로 300만에서 600만이 죽었다. 그런데 그가 퍼뜨린 것이 함께 남았다.
1804년 나폴레옹 법전은 법 앞의 평등, 사유재산 보장, 계약의 자유, 종교의 자유를 조문으로 못 박았다. 그가 정복한 곳마다 봉건적 특권과 영주 재판권이 사라졌다. 이 법전이 유럽 대륙법의 표준이 되어 독일·일본을 거쳐 한국 민법에까지 계보가 닿는다.
【남은 것】
동시에 그는 민족주의를 깨웠다. 프랑스 군대에 짓밟힌 독일과 이탈리아와 에스파냐에서 우리도 하나의 국민이라는 감각이 생겼다. 19세기 후반 독일과 이탈리아 통일의 씨앗이 여기 있다.
본인은 세인트헬레나에서 자기 진짜 영광은 마흔 번의 전투가 아니라 법전이라고 말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