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무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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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제국들

히타이트·이집트 신왕국·바빌로니아가 사신과 군대를 주고받았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1건

함무라비의 통일전쟁BC 1792 – BC 1750
바빌론 vs 라르사·마리·에슈눈나

메소포타미아에 대등한 왕국이 넷 있었다. 함무라비는 30년을 기다렸다가 동맹을 갈아타며 하나씩 쳤다.

라르사 BC 1763마리 파괴 BC 1759

결과외교로 판을 짜고 마지막에 군사력을 쓴 전형이다. 정복 뒤에는 법전으로 통치를 굳혔다.

42년 · 메소포타미아 통일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1명

함무라비정치BC 1792 · 법을 돌에 새긴 왕
BC 1792 – BC 1750 재위

작은 도시 바빌론을 물려받아 40년에 걸쳐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했다. 정복보다 법과 운하로 더 오래 기억된다.

  • 282조 법전을 돌기둥에 새겨 공개
  • 「눈에는 눈」 — 복수의 상한을 정함
  • 운하를 파고 곡물 창고를 관리

그 무렵의 사건

BC 1792
함무라비 법전
왕이 아니라 글이 다스린다.
2.25m 검은 돌기둥에 282조를 새겨 광장에 세웠다. 누구나 읽을 수 있게 — 실제로는 대부분 문맹이었지만, 법이 왕의 기분 밖에 있다는 선언이었다. 신분에 따라 형벌이 다른 점에서 한계도 분명하다.
BC 1750
인더스의 쇠퇴
도시를 비우고 사람들이 동쪽으로 갔다.
가가르-하크라 강의 수량이 줄면서 도시가 유지되지 않았다. 침략의 흔적은 없다 — 서서히 떠났다. 아리아인의 침입설은 오래 주장됐으나 지금은 기후와 하천 변화가 주된 설명이다.

교역로

해당 없음

함무라비

인물 · BC 1792 · 법을 돌에 새긴 왕

작은 도시 바빌론을 물려받아 40년에 걸쳐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했다. 정복보다 법과 운하로 더 오래 기억된다.

【그때 그 자리】

기원전 18세기 메소포타미아는 여러 도시국가가 다투는 상태였다. 이신과 라르사와 마리와 에슈눈나가 서로 동맹과 배신을 반복했다.

바빌론은 그중 작은 축이었다. 함무라비가 기원전 1792년 즉위했을 때 영토가 좁았다.

그가 다스린 43년 가운데 처음 30년은 조용했다. 성벽을 쌓고 수로를 파고 신전을 지었다. 밖으로는 강한 쪽과 동맹을 맺고 몸을 낮췄다.

【왜 그렇게 됐나】

기다린 것이었다.

기원전 1763년 라르사를 쳤다. 그전까지 동맹이던 상대다. 이어 마리를 무너뜨렸다. 마리의 왕 짐리림은 한때 그와 형제라 부르던 사이였다.

마리 왕궁에서 점토판 2만 점이 발굴됐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외교 문서가 들어 있다. 이 자료 덕에 당시 국제 관계가 어떻게 돌아갔는지 상세히 알 수 있다.

편지 하나에 이런 대목이 있다. 함무라비를 따르는 왕이 열, 다른 왕을 따르는 왕이 열다섯이라는 식으로 세력을 헤아리는 내용이다. 지금의 외교 보고서와 다르지 않다.

【어떻게 흘렀나】

통일한 뒤 문제가 생겼다. 각 도시가 저마다 다른 관습으로 재판해 왔다. 같은 잘못에 어느 도시는 벌금을, 어느 도시는 사형을 내렸다.

그가 내놓은 것이 282개 조항의 법전이다.

높이 2.25미터의 검은 돌기둥에 새겨 광장에 세웠다. 맨 위에 자기가 태양신 샤마시에게서 법을 받는 장면을 조각했다. 법이 왕의 뜻이 아니라 신의 뜻이라는 선언이다.

서문에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적었다.

조항은 실용적이다. 임금과 이자율의 상한, 의사의 수술 실패에 대한 책임, 건축업자가 지은 집이 무너져 집주인이 죽으면 건축업자를 죽인다는 규정, 결혼과 이혼과 상속, 관개수로 관리에 관한 조항이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가장 유명하다. 야만적으로 읽히지만 반쯤만 맞다. 그전에는 눈 하나에 목숨을 갚거나 일족이 보복하는 일이 흔했다. 갚음의 상한을 정해 복수를 국가가 가져간 것이다.

다만 평등하지 않았다. 신분이 셋으로 나뉘어 귀족의 눈을 멀게 하면 눈을 갚고, 평민이면 은으로 갚고, 노예에게는 값의 절반을 물었다.

【그래서】

그가 죽자 제국은 곧 흔들렸다. 아들 대에 남부를 잃었고, 기원전 1595년 히타이트가 바빌론을 약탈하며 왕조가 끝났다.

영토는 그의 대에서 끝났는데 법전은 남았다.

【남은 것】

돌기둥은 기원전 12세기 엘람이 전리품으로 가져갔다. 1901년 프랑스 발굴대가 이란의 수사에서 찾아냈다. 지금 루브르에 있다. 약탈당한 덕에 살아남았다.

성문법의 원형으로 인용된다. 법을 문서로 적어 공개하고 같은 잘못에 같은 벌을 준다는 원칙이 여기서 형태를 갖췄다. 미국 연방대법원 건물에 그의 조각이 있는 이유다.

그보다 앞선 우르남무 법전이 있어 최초는 아니다. 이 법전이 유명한 것은 거의 온전하게 남았고 조항이 가장 방대하기 때문이다.

3,800년 전 사람이 임금과 이자와 의료 사고와 건축 책임을 조문으로 정해 두었다. 사람이 모여 살면 다투는 것이 대체로 같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도에서 보기: BC 20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