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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아라비아에서 일어난 새 종교가 100년 만에 이베리아부터 인더스까지를 하나의 정치권으로 묶었다. 사산조는 사라지고 동로마는 영토의 절반을 잃었다.
신라가 당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통일했고 북쪽에는 발해가 섰다. 신라 말 호족이 일어나며 후삼국으로 갈라진다.
왜이베리아를 장악한 우마이야 세력이 피레네를 넘어 갈리아 남부를 약탈했다.
결과카롤루스 마르텔이 저지했다. 이슬람의 서유럽 진출이 여기서 멈춘다.
궁재로서 왕보다 실권을 쥐었다. 투르에서 우마이야 기병을 보병 방진으로 막아냈다.
관직에는 오래 붙어 있지 못하고 평생을 떠돌았다. 즉흥으로 지은 시 1,000여 편이 남았다.
아바스가 우마이야 일족을 몰살할 때 혼자 살아 다섯 해를 도피해 이베리아에 닿았다. 거기서 코르도바에 나라를 세웠고 300년을 갔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인물 · 732 · 말발굽에 쇠를 박은 사람
궁재로서 왕보다 실권을 쥐었다. 투르에서 우마이야 기병을 보병 방진으로 막아냈다.
【그때 그 자리】 8세기 초 프랑크 왕국은 왕이 허수아비였다. 실권은 궁재(宮宰)에게 있었다.
그 궁재가 카를 마르텔이다. 마르텔은 「망치」라는 뜻으로, 뒤에 붙은 별명이다.
【왜 그렇게 됐나】 711년 이슬람 세력이 지브롤터를 건너 이베리아를 차지했다. 7년 만에 서고트 왕국이 사라졌다.
피레네를 넘어 계속 올라왔다. 732년 아키텐을 지나 투르까지 왔다.
【어떻게 흘렀나】 투르와 푸아티에 사이에서 맞섰다.
무슬림군은 기병 중심이었다. 카를은 보병을 밀집시켜 방벽을 만들었다. 「얼음벽처럼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고 연대기가 적었다.
이틀을 버텼다. 지휘관 압둘 라흐만이 죽자 무슬림군이 물러났다.
【그래서】 기번은 이 싸움이 없었다면 「옥스퍼드에서 코란을 가르쳤을 것」이라 썼다. 유럽을 지킨 싸움이라는 서사가 오래 이어졌다.
지금 학계는 그 의미를 낮춰 본다. 당시 무슬림군은 원정대 규모였고, 이베리아 안의 내분과 베르베르인의 반란이 더 큰 이유였다는 것이다.
다만 프랑크 왕국 안에서의 의미는 컸다. 이 승리로 카를의 권위가 확고해졌다.
【남은 것】 그가 한 일 가운데 오래 남은 것은 따로 있다. 기병을 늘리기 위해 교회 땅을 거둬 부하들에게 나눠 주고, 그 대가로 말을 타고 싸울 의무를 지웠다.
말과 갑옷은 비쌌다. 땅을 받고 군사 의무를 지는 이 관계가 봉건제의 씨앗이 된다.
등자와 편자가 이 무렵 퍼진 것도 함께 이야기된다. 등자가 있어야 말 위에서 창을 받쳐 들 수 있고, 편자가 있어야 말굽이 상하지 않는다. 중장기병이라는 것이 여기서 가능해졌다.
아들이 피핀, 손자가 카롤루스다. 카롤링 왕조의 실질적 시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