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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혁명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보수적 국제 질서. 열강이 회의로 세력 균형을 관리했지만 그 아래에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가 끓었다.
세도정치와 삼정 문란이 겹쳤다. 서양 선박이 연안에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문을 닫아걸었다.
왜무굴이 무너진 뒤 인도 중부를 지배하던 마라타 동맹의 내분에 회사가 개입했다.
결과웰즐리(뒷날 웰링턴)가 아사예에서 이기고 세 번째 전쟁으로 동맹이 해체됐다. 이로써 영국은 인도 아대륙의 실질적 지배자가 됐다.
왜혁명 프랑스를 무너뜨리려는 왕정 국가들의 동맹과, 그 포위를 깨려는 나폴레옹의 팽창이 맞물렸다.
결과23년간 유럽 지도가 계속 뒤집혔다. 워털루에서 끝나고 빈 체제가 들어섰다.
왜유럽 무역상을 통해 머스킷 총이 들어오면서, 총을 먼저 확보한 부족이 그렇지 못한 이웃 부족을 압도할 수 있게 됐다.
결과총을 먼저 손에 넣은 응아푸히족이 초기에 크게 우세했으나, 곧 다른 부족들도 총을 구하면서 전쟁이 뉴질랜드 전역으로 번졌다. 인구 이동과 전통적 세력권 재편이 뒤따랐다.
아르헨티나에서 군대를 만들어 눈 덮인 안데스를 넘어 칠레를 해방하고 배로 페루로 갔다. 볼리바르와 만난 뒤 지휘권을 넘기고 스스로 유럽으로 떠났다.
던지는 창 대신 짧은 찌르는 창을 쓰게 하고, 소뿔 모양으로 감싸는 진형을 만들었다. 작은 부족을 10년 만에 남아프리카 최강으로 바꿨다.
안데스를 넘어 스페인군의 뒤를 쳤다. 오늘의 베네수엘라·콜롬비아·에콰도르·페루·볼리비아·파나마가 그의 원정에서 나왔다. 하나로 묶으려 했으나 갈라졌다.
이베리아반도에서 프랑스군을 몰아냈고 워털루에서 프로이센군과 함께 나폴레옹의 마지막 도박을 끝냈다. 뒤에 총리도 지냈다.
나폴레옹 이후의 유럽을 왕정과 세력 균형으로 되돌렸다. 33년간 혁명을 억눌렀으나 1848년 혁명에 쫓겨났다.
오스만의 알바니아계 군인으로 왔다가 실권을 잡았다. 유럽식 군대와 공장과 학교를 들였다. 아시아·아프리카에서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시도한 첫 예로 꼽힌다.
땅은 누구의 것도 아니어서 팔 수 없다고 했다. 흩어진 부족을 하나의 연합으로 묶어 서쪽 확장을 막으려 했다. 1813년 전사하며 그 구상도 끝났다.
기체 속 입자 수의 법칙
스페인, 이어 이 지역을 점령한 브라질(포르투갈)에 맞서 게릴라식 저항운동을 이끌며 우루과이 독립운동의 기틀을 놓았다. 정작 자신은 독립을 보지 못한 채 파라과이로 망명해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유럽을 울렸고 60년에 걸쳐 「파우스트」를 완성했다. 시인이자 정치가, 과학자였다.
청력을 잃고 유서를 썼지만 「운명」을 목덜미로 붙잡겠다며 일어섰다. 9번 교향곡의 「환희의 송가」는 유럽연합의 노래가 됐다.
전류·전압·저항의 법칙
트라팔가에서 프랑스·에스파냐 연합함대를 꺾고 전사했다. 영국의 제해권이 굳어졌다.
혁명의 이념을 총검에 실어 유럽에 퍼뜨렸다.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국민국가가 자랐다.
동일과정설을 세우다
정규 교육 없이 독학해 전자기유도를 발견했다. 그의 실험을 맥스웰이 방정식으로 완성한다.
원자설을 세우다
수원 화성에 거중기를 만들어 썼다. 천주교 문제로 18년간 강진에 유배됐고, 그 유배지에서 500권을 썼다.
정수론·통계학·측지학까지 남긴 업적이 방대해 수학자들의 왕이라 불린다.
노예로 태어나 프랑스·에스파냐·영국군을 차례로 물리쳤다. 나폴레옹에게 붙잡혀 알프스 감옥에서 죽었으나 이듬해 아이티가 독립했다.
최초의 전지를 만들다
마이소르의 왕으로 네 차례 영국과 싸웠다. 로켓 무기를 실전에 썼고, 그 기술이 영국으로 건너가 콩그리브 로켓이 됐다.
기계식 컴퓨터를 구상하다
우두 고름을 접종해 천연두를 막는 첫 백신을 만들었다.
덕 없는 공포는 해롭고 공포 없는 덕은 무력하다. 혁명을 지키려 단두대를 돌리다 자신도 거기서 죽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시집온 14세 소녀가 사치의 상징이 됐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은 하지 않은 말이지만 민중의 분노는 진짜였다.
작동한 적 없는 계산 기계를 위한 절차를 최초로 적어 남겼다.
일이 열로 바뀐다는 것을 재다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유럽의 공산품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 유럽. 세 대륙이 하나의 경제로 묶였다.
인물 · 1817 · 이기고 물러난 해방자
아르헨티나에서 군대를 만들어 눈 덮인 안데스를 넘어 칠레를 해방하고 배로 페루로 갔다. 볼리바르와 만난 뒤 지휘권을 넘기고 스스로 유럽으로 떠났다.
【그때 그 자리】 1778년 지금의 아르헨티나에서 났다. 일곱 살에 에스파냐로 가 그곳 군인이 됐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20년 넘게 에스파냐 편으로 싸웠다.
1812년 모든 것을 버리고 돌아왔다. 서른넷이었다.
【왜 그렇게 됐나】 남아메리카 독립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가 본 판이 남달랐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페루로 곧장 북상하는 것은 어렵다고 보았다 — 에스파냐군의 중심이 페루의 리마인데, 그 사이에 안데스 고원이 있었다.
그래서 다른 길을 짰다. 먼저 안데스를 서쪽으로 넘어 칠레를 해방하고, 거기서 배를 타고 바다로 페루를 친다는 것이다.
【어떻게 흘렀나】 멘도사에서 2년을 준비했다. 지역 전체를 동원해 대포와 화약과 신발과 담요를 만들었다.
1817년 안데스를 넘었다. 병력 5천에 노새 1만 마리, 소 1,600마리다.
해발 4,000m가 넘는 고개 여럿을 동시에 넘었다. 3주가 걸렸고 노새의 절반과 말의 대부분이 죽었다.
적을 속이려 여러 경로로 나눠 보내고, 일부러 거짓 정보를 흘렸다.
차카부코에서 이겼고, 이듬해 마이푸에서 칠레 독립을 굳혔다. 칠레 통치를 오이긴스에게 맡기고 자신은 받지 않았다.
1820년 함대를 꾸려 페루로 갔다. 1821년 리마에 들어가 페루 독립을 선포했다.
【그래서】 1822년 과야킬에서 볼리바르를 만났다.
둘만 네 시간 이야기했다. 기록이 없다.
회담 뒤 산마르틴이 모든 직위를 내려놓고 남아메리카를 떠났다.
무엇이 오갔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군주제를 두자는 그와 공화제를 주장한 볼리바르가 갈렸다는 설,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내전이 난다고 판단했다는 설이 있다.
「내 앞에는 두 길이 있었다. (…) 나는 조국이 나 때문에 갈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남은 것】 프랑스로 가서 27년을 살다 1850년 죽었다.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아르헨티나·칠레·페루 세 나라가 그를 함께 기린다. 「해방자(엘 리베르타도르)」다.
볼리바르는 이름을 딴 나라를 남겼고 산마르틴은 남기지 않았다.
이길 수 있는 자리에서 물러난 사례로 오래 인용된다.
지도에서 보기: 1815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샤카 줄루 시몬 볼리바르 웰링턴 메테르니히 무함마드 알리 테쿰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