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호테프

3000
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 왼쪽 · 오른쪽 ▶
지도에 표시
주요 국가
오른쪽 게이지를 끌거나 키보드 ↑↓로 5천 년이 흐릅니다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주요 공격
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문명의 새벽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도시와 문자가 나타났다. 관개 농업이 잉여를 만들고 신전과 왕궁이 그것을 관리했다.

한반도

선사

빗살무늬토기와 간석기의 시대. 아직 국가라 부를 정치체가 없다.

전쟁

해당 없음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1명

임호테프사상BC 2667 · 이름이 남은 최초의 건축가
BC 2650 무렵

조세르 왕의 재상이자 건축가이자 의사. 진흙벽돌만 쌓던 시대에 돌로 여섯 층을 올렸다. 1,400년 뒤 이집트인은 그를 의술의 신으로 모셨다.

  • 계단 피라미드 — 최초의 석조 대형 건축
  • 외과 처치를 기록한 파피루스의 저자로 전함
  • 평민 출신으로 신이 된 유일한 사례

그 무렵의 사건

BC 2667
계단 피라미드
돌로 건물을 쌓는다는 발상이 처음 나왔다.
임호테프가 조세르 왕을 위해 마스타바를 여섯 층 겹쳐 올렸다. 그 전까지 건물은 진흙벽돌이었다. 이름이 남은 최초의 건축가이자 의사였고, 훗날 이집트인은 그를 신으로 모셨다.
BC 2600
모헨조다로
왕궁도 신전도 없는 계획도시.
격자로 구획된 도로, 집집마다 우물과 화장실, 도시 전체를 도는 하수도. 그런데 거대 무덤도 왕의 조각상도 없다. 누가 어떻게 다스렸는지 아직 아무도 모르고, 인더스 문자는 지금도 해독되지 않았다.
BC 2600
인더스 문명이 서다
왕궁도 거대한 무덤도 없는 계획도시.
모헨조다로와 하라파에 바둑판 거리와 상하수도를 갖춘 도시가 섰다. 벽돌 크기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같다. 그런데 왕을 새긴 조각도, 거대한 무덤도 없다. 문자는 아직 해독되지 않아 이들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교역로

해당 없음

임호테프

인물 · BC 2667 · 신이 된 건축가

조세르 왕의 재상이자 건축가이자 의사. 진흙벽돌만 쌓던 시대에 돌로 여섯 층을 올렸다. 1,400년 뒤 이집트인은 그를 의술의 신으로 모셨다.

【그때 그 자리】 BC 27세기 조세르 왕의 재상이자 건축가다. 이집트 역사에서 이름이 남은 가장 이른 개인 가운데 하나다.

그전까지 왕의 무덤은 마스타바 — 진흙벽돌로 쌓은 납작한 사각형이었다.

【왜 그렇게 됐나】 임호테프는 그것을 여섯 층으로 쌓아 올렸다. 사카라의 계단 피라미드다. 높이 62m.

재료도 바꿨다. 진흙벽돌 대신 다듬은 돌을 썼다. 인류가 돌로 쌓은 최초의 대형 건축물로 꼽힌다.

돌기둥을 쓰면서도 파피루스 줄기 모양으로 새겼다. 갈대로 짓던 시절의 형태를 돌에 옮긴 것이다 — 새 재료가 옛 형태를 흉내 내는 첫 단계다.

【어떻게 흘렀나】 건축만이 아니었다. 대신관이자 의사이자 서기였다.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라는 외과 의서가 그의 것에서 왔다는 견해가 있다 — 주술이 아니라 관찰과 처치를 적은 문서다.

【그래서】 죽은 뒤 2천 년이 지나 신이 됐다. 이집트에서 왕족이 아닌 사람이 신으로 모셔진 예가 거의 없다.

의술의 신으로 섬겨졌고, 그리스인들은 그를 자기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와 같다고 보았다.

【남은 것】 무덤은 아직 찾지 못했다. 사카라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본다.

이름의 뜻이 「평화롭게 오는 자」다. 왕이 아닌 사람의 이름이 4,600년을 살아남았다.

지도에서 보기: BC 30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