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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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AD 2025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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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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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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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원수정과 로마 평화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고 속주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한반도

삼국의 성립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전쟁

해당 없음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4명

예수사상30 · 가장 많은 사람이 따른 이름
BC 4 – AD 30

갈릴리에서 3년을 가르치다 처형됐다. 남긴 글은 없고 제자들의 기억만 남았는데, 그 기억이 서구 2,000년의 뼈대가 됐다.

  • 산상수훈 — 약한 자가 복이 있다
  • 십자가형과 부활 신앙
  • 연도를 세는 기준이 됨
광무제정치36 · 왕망의 신을 무너뜨리고 한을 다시 세운 황제
BC 5 – AD 57, 재위 25 – 57

농촌 호족 출신으로 곤양에서 왕망군을 깨고 낙양에 도읍했다. 후한 200년의 문을 열었다.

  • 곤양 전투 승리(23), 왕망 정권 붕괴
  • 낙양 도읍, 후한 건국(25)
  • 노비 해방령과 세금 경감
김수로왕정치42 · 하늘에서 내려온 알에서 태어나 금관가야를 세우다
42 – 199(전승)

구지봉에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 알 여섯 개 중 가장 먼저 사람으로 태어나 금관가야(오늘날 김해)의 왕이 됐다는 건국 설화가 전한다. 낙동강 하구의 철 생산과 해상 교역을 바탕으로 가야 연맹을 이끌었다.

  • 구지가 설화 속 건국 시조
  • 금관가야 초기 전성기 이끎
  • 낙동강 하구 철 생산·해상 교역 기반 확립
바울사상55 · 작은 종파를 세계 종교로 만든 사람
AD 5 – AD 67

박해자였다가 회심했다. 지중해를 세 번 돌며 이방인에게 문을 열었고, 그의 편지들이 신약의 절반을 차지한다.

  • 할례 없이도 신자가 될 수 있게 함
  • 세 차례 전도 여행 — 지중해 전역
  • 로마에서 처형

그 무렵의 사건

30
예수의 처형
로마 속주 유대에서 벌어진 처형이 세계 종교의 출발점이 됐다.
속주의 처형 하나가 300년 뒤 제국의 국교가 되는 종교의 출발점이 됐다.
79
베수비오 화산
폼페이가 하루 만에 묻혔다.
폼페이가 통째로 묻혀 고대 도시의 일상이 그대로 보존됐다.
80
콜로세움 완공
5만 명을 수용한 로마의 원형경기장이 열렸다. 개막 축제 100일 동안 맹수 9천 마리가 죽었다.
네로의 황금 궁전 연못 자리에 베스파시아누스가 짓기 시작해 아들 티투스가 완성했다. 검투사 경기와 맹수 사냥, 처형이 무료로 열렸고 황제가 민심을 얻는 장치였다. 지하에는 승강기와 통로가 있었다. 5세기까지 쓰이다 지진과 채석으로 허물어졌고, 중세엔 성당 건축의 돌 창고였다. 「콜로세움이 서 있는 한 로마도 선다」는 말이 전한다.
BC 27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아누스가 첫 황제가 됐다. 200년의 로마 평화가 시작된다.
이후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100
악숨
홍해를 쥔 아프리카의 제국.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홍해로 나가는 길목에 섰다. 자기 동전을 찍은 아프리카 최초의 나라 축에 든다. 통돌을 깎아 세운 오벨리스크가 가장 큰 것은 33미터였다. 이슬람이 홍해를 쥐면서 고원 안쪽으로 물러났다.
100
모체와 나스카
얼굴을 그대로 빚은 토기, 하늘에서만 보이는 그림.
북쪽의 모체는 사람 얼굴을 사진처럼 빚었고 금세공이 정교했다. 남쪽의 나스카는 사막 바닥의 돌을 걷어 내 수백 미터짜리 선을 그렸다. 두 문화 모두 긴 가뭄과 엘니뇨에 시달리다 흩어졌다.

교역로 3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예수

인물 · 30 · 가장 낮은 데서 시작한 이야기

갈릴리에서 3년을 가르치다 처형됐다. 남긴 글은 없고 제자들의 기억만 남았는데, 그 기억이 서구 2,000년의 뼈대가 됐다.

【그때 그 자리】 로마가 지배하던 유대. 헤롯이 왕이었고 그 뒤 총독이 다스렸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기다렸다. 로마를 몰아내고 다윗의 왕국을 되살릴 왕을 기다린 것이다.

【왜 그렇게 됐나】 갈릴리 나사렛의 목수 집안에서 자랐다. 서른쯤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가르치기 시작했다.

3년쯤이다. 그동안 한 말이 복음서에 남았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저희 것임이요.」 「원수를 사랑하라.」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율법을 지키는 것보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쳤고, 세리와 창녀와 함께 밥을 먹었다.

【어떻게 흘렀나】 유대 지도층이 그를 위험하게 보았다. 성전에서 환전상의 상을 뒤엎은 일이 결정적이었다 — 성전 경제를 건드린 것이다.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졌다. 죄목은 「유대인의 왕」을 자처했다는 것, 곧 반역이다. 십자가는 반역자와 노예에게 쓰던 형벌이었다.

제자들이 흩어졌다. 그런데 사흘 뒤 부활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흩어졌던 이들이 돌아와 목숨을 걸고 그것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바울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예수를 직접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처음에는 박해하던 사람이다.

그가 유대인만의 종교가 아니라고 선언했다.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되고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 순간 지중해 전체로 갈 수 있게 됐다.

【남은 것】 300년 뒤 박해하던 로마가 그것을 국교로 삼는다. 지금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그 이름을 부른다.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를 나눠 보는 연구가 19세기부터 이어졌다. 그가 실재했다는 데는 학계에 이견이 거의 없다 — 타키투스와 요세푸스 같은 비기독교 사료에도 나온다.

가르친 기간이 3년이고, 남긴 글이 한 줄도 없으며, 서른셋에 처형됐다. 그 이야기가 2천 년을 갔다.

지도에서 보기: BC 1년의 세계 · 같은 시대: 광무제 김수로왕 바울 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