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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교황과 황제가 성직자 임명권을 두고 다퉜다. 성지 회복을 내건 원정이 시작되며 유럽이 처음으로 바깥을 향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호족 연합으로 선 왕조가 과거제와 관료제로 중앙집권을 다졌다. 거란·여진과 부딪히며 북방 경계를 지켰다.
왜인구 압력과 흘수 얕은 롱십이 결합했다. 강을 거슬러 내륙까지 들이닥칠 수 있는 배가 결정적이었다.
결과약탈로 시작해 정착과 건국으로 끝났다. 노르망디·러시아·아이슬란드가 이들의 손에서 생겼고, 북아메리카에도 콜럼버스보다 500년 먼저 닿았다.
키예프 루스의 전성기다. 성 소피아 성당을 짓고 도서관을 두었으며 최초의 성문법 루스카야 프라우다를 정리했다.
열여덟에 이미 이름난 의사였다. 그가 정리한 의학 백과가 유럽 의대에서 600년간 교과서로 쓰였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이슬람 세계에 들여온 사람이기도 하다.
실험으로 광학을 다시 쓰다
귀주에서 거란의 10만 대군을 거의 전멸시켰다. 이후 백 년의 평화가 왔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인물 · 1036 · 러시아 최초의 법전
키예프 루스의 전성기다. 성 소피아 성당을 짓고 도서관을 두었으며 최초의 성문법 루스카야 프라우다를 정리했다.
【그때 그 자리】 11세기 키예프 루스다. 아버지 블라디미르 1세가 988년 정교회를 받아들여 나라를 기독교화했다.
아버지가 죽자 형제들이 싸웠다. 형 스뱌토폴크가 동생 둘을 죽였다 — 그 둘 보리스와 글렙이 저항하지 않고 죽어 러시아 최초의 성인이 된다.
야로슬라프는 노브고로드에서 군대를 얻어 내려왔다. 4년을 싸워 이겼다.
다리를 절었다. 유해를 조사해 보니 고관절에 이상이 있었다 — 「현자」라는 별명 말고 「절름발이」라는 기록도 있다.
【왜 그렇게 됐나】 「루스카야 프라브다(루스의 법)」를 엮었다. 동슬라브 최초의 성문법전이다.
혈족 복수를 제한했다. 죽은 사람을 대신해 복수할 수 있는 사람의 범위를 정하고, 그 대신 벌금으로 갚는 길을 열었다.
신분에 따라 목숨값이 달랐다. 자유민과 노예와 관리가 각각 다른 액수였다.
사형 조항이 거의 없다. 대부분 벌금이다.
【어떻게 흘렀나】 키예프에 성 소피아 대성당을 지었다. 콘스탄티노플의 하기아 소피아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그 안에 도서관을 두고 그리스어 책을 슬라브어로 옮기게 했다. 학교를 세웠다.
혼인으로 유럽과 이었다. 딸 셋이 프랑스·헝가리·노르웨이 왕비가 됐다.
그 가운데 안나가 프랑스의 앙리 1세와 혼인했다. 프랑스 왕실 문서에 그의 서명이 남아 있다 — 키릴 문자로 「안나 레지나」라 적었다. 당시 프랑스 귀족 대부분은 글을 쓰지 못해 십자만 그렸다.
【그래서】 1054년 죽었다. 나라를 아들들에게 나눠 주고, 맏이를 중심으로 화목하라 유언했다.
그 유언이 지켜지지 않았다. 분열이 이어지다 1240년 몽골에게 키예프가 함락된다.
【남은 것】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가 모두 키예프 루스를 자기 뿌리로 삼는다. 그래서 야로슬라프를 세 나라가 함께 기린다.
동시에 「누구의 역사인가」를 두고 다투는 인물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지폐 2흐리브냐에 그의 얼굴이 있다. 러시아 야로슬라블 시의 이름이 그에게서 왔다.
그의 유해는 2차 대전 중 사라졌다. 미국으로 옮겨졌다는 설이 있으나 확인되지 않았다.
지도에서 보기: 10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이븐 시나 이븐 알하이삼 강감찬 무라사키 시키부 정복왕 윌리엄 왕안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