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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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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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문명의 새벽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도시와 문자가 나타났다. 관개 농업이 잉여를 만들고 신전과 왕궁이 그것을 관리했다.

한반도

선사

빗살무늬토기와 간석기의 시대. 아직 국가라 부를 정치체가 없다.

전쟁 1건

사르곤의 정복BC 2334 – BC 2279
아카드 vs 수메르 도시국가

우루크의 루갈자게시가 수메르를 통합하려 하자, 키시에서 일어난 사르곤이 먼저 그를 쳤다.

우루크 함락34차례의 전투

결과메소포타미아 전역이 처음으로 한 왕 아래 들어갔다. 사르곤은 5,400명을 상시 먹인다고 새겼는데, 기록에 남은 최초의 상비군이다.

55년 · 최초의 제국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1명

사르곤정치BC 2334 · 최초의 제국을 세운 사람
BC 2334 – BC 2279 재위

정원사의 양자로 자라 왕의 잔 시중을 들다 스스로 왕이 됐다. 수메르 도시들을 하나의 왕 아래 묶고 정복지에 자기 사람을 총독으로 보냈다.

  • 34번의 전투로 수메르 통일
  • 상비군과 총독 제도를 처음 만듦
  • 도량형과 문자를 하나로

그 무렵의 사건

BC 2334
사르곤의 정복
정원사의 아들이 최초의 제국을 세웠다.
버려져 강에 떠내려온 것을 정원사가 길렀다는 탄생 설화가 전한다 — 모세 이야기보다 천 년 앞선다. 34번의 전투로 수메르 전역을 묶고 상비군을 두었으며, 정복지에 자기 사람을 총독으로 보내는 통치 방식을 처음 만들었다.
BC 2300
딜문의 중계무역
바레인이 인더스와 메소포타미아를 이었다.
수메르 문서에 「해 뜨는 곳의 땅」으로 나오는 딜문이 오늘날 바레인이다. 인더스의 홍옥수와 상아, 오만의 구리가 여기를 거쳐 수메르로 갔다. 청동기 세계가 이미 대양을 건너 이어져 있었다는 증거다.
BC 2380
우루카기나 개혁
기록에 남은 최초의 개혁, 그리고 최초의 「자유」.
라가시의 왕 우루카기나가 사제와 관리의 수탈을 금하고 과부와 고아를 보호하는 법을 폈다. 이때 쓰인 아마기(ama-gi)가 문자로 남은 최초의 「자유」라는 말이다 — 원뜻은 「어머니에게 돌아감」, 곧 빚의 탕감이었다.
BC 2285
엔헤두안나
이름이 남은 최초의 저자는 여성이었다.
사르곤의 딸이자 우르의 대사제. 여신 이난나에게 바친 찬가에 자기 이름과 심경을 적어 넣었다 — 「나는 엔헤두안나, 내가 이 노래를 낳았다」. 익명의 서기관 시대에 저자라는 개념이 여기서 시작된다.

교역로

해당 없음

사르곤

인물 · BC 2334 · 제국이라는 것을 처음 만든 사람

정원사의 양자로 자라 왕의 잔 시중을 들다 스스로 왕이 됐다. 수메르 도시들을 하나의 왕 아래 묶고 정복지에 자기 사람을 총독으로 보냈다.

【그때 그 자리】 BC 24세기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의 도시국가들이 서로 싸우던 때다.

출신이 낮았다. 갈대 바구니에 담겨 강에 버려졌다가 물 긷는 사람에게 건져졌고, 정원사로 자라 키시 왕의 술 따르는 신하가 됐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모세와 사르곤 가운데 어느 쪽이 먼저인가는 논쟁거리다.

【왜 그렇게 됐나】 키시 왕을 몰아내고 우루크의 루갈자게시를 꺾었다. 수메르의 도시들을 차례로 무너뜨렸다.

그전에도 정복은 있었다. 사르곤이 다른 것은 정복한 뒤에 한 일이다.

각 도시의 성벽을 헐고, 자기 사람을 총독으로 앉히고, 아카드어를 공용어로 삼고, 도량형을 통일했다. 딸 엔헤두안나를 우르의 최고 여사제로 보내 종교까지 묶었다.

【어떻게 흘렀나】 페르시아만에서 지중해까지 닿았다고 비문에 적혀 있다. 「위쪽 바다와 아래쪽 바다를 다 씻었다」는 표현이 나온다.

56년을 다스렸다고 전한다. 아카드 제국이다 — 역사상 첫 제국으로 흔히 꼽힌다.

【그래서】 손자 나람신 때 절정에 이르렀다가 그 뒤 무너졌다. 구티족의 침입과 가뭄이 겹쳤다는 것이 유력한 설명이다.

정작 수도 아카드의 위치를 아직 모른다. 메소포타미아 최대의 미해결 문제 가운데 하나다.

【남은 것】 딸 엔헤두안나가 남긴 찬가가 인류 역사상 이름이 알려진 최초의 저자의 글로 꼽힌다.

「사르곤」은 「진정한 왕」이라는 뜻이다. 왕위를 빼앗은 사람이 스스로 붙인 이름이다. 1,500년 뒤 아시리아의 사르곤 2세가 그 이름을 다시 가져다 쓴다.

지도에서 보기: BC 30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