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지도에 표시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틀린 데나 빠진 데를 알려주시면 확인하고 고칩니다.
이 브라우저에만 저장됩니다. 서버로 아무것도 보내지 않습니다.
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라틴 유럽·비잔틴·이슬람이 지중해를 나눠 가졌다. 카롤루스의 제국은 곧 쪼개졌고 바이킹과 마자르가 유럽을 휘저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당이 무너지고 송이 섰다.
호족 연합으로 선 왕조가 과거제와 관료제로 중앙집권을 다졌다. 거란·여진과 부딪히며 북방 경계를 지켰다.
왜인구 압력과 흘수 얕은 롱십이 결합했다. 강을 거슬러 내륙까지 들이닥칠 수 있는 배가 결정적이었다.
결과약탈로 시작해 정착과 건국으로 끝났다. 노르망디·러시아·아이슬란드가 이들의 손에서 생겼고, 북아메리카에도 콜럼버스보다 500년 먼저 닿았다.
여러 종교를 알아본 끝에 비잔티움의 정교회를 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선택으로 러시아가 서유럽이 아니라 콘스탄티노폴리스 쪽 문화권에 들어갔다.
궁정 여성으로 한자가 아니라 히라가나로 썼다. 남자들이 한문을 쓰는 동안 여성이 자기 말로 문학을 만들었다. 세계 최초의 장편소설로 꼽히기도 한다.
마자르의 약탈을 끝내고 황제 대관을 받았다. 주교를 제후로 삼아 세속 귀족을 견제한 방식이 이후 제국의 특징이 된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인물 · 988 · 정교회를 고른 대공
여러 종교를 알아본 끝에 비잔티움의 정교회를 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선택으로 러시아가 서유럽이 아니라 콘스탄티노폴리스 쪽 문화권에 들어갔다.
【그때 그 자리】 10세기 키예프 루스. 슬라브 부족들이 바랑기아(바이킹) 출신 지배층 아래 묶여 있었다.
형들과 다투다 스칸디나비아로 달아났고, 용병을 모아 돌아와 형을 죽이고 980년 대공이 됐다.
처음에는 슬라브 신들을 섬겼다. 페룬의 목상을 세우고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왜 그렇게 됐나】 하나의 나라를 만들려면 하나의 믿음이 필요했다. 부족마다 다른 신을 섬기고 있었다.
여러 종교를 알아보게 사절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루스 원초 연대기」에 실려 있다.
이슬람은 술을 금해서 안 된다 했다 — 「루스의 즐거움은 마시는 데 있다」. 유대교는 나라를 잃은 것을 보고 물리쳤다. 서방 교회는 「아름다움이 없다」 했다.
콘스탄티노플의 하기아 소피아에 간 사절이 돌아와 말했다. 「우리가 하늘에 있는지 땅에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흘렀나】 988년 세례를 받고 비잔티움 황제의 여동생 안나와 혼인했다. 키예프 사람들을 드네프르강에 들어가게 해 한꺼번에 세례를 주었다.
이 선택이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의 방향을 정했다. 라틴이 아니라 그리스 쪽, 로마가 아니라 콘스탄티노플 쪽이다.
그리스어 성경을 슬라브어로 옮긴 키릴 문자가 함께 들어왔다. 지금 러시아 문자다.
【그래서】 콘스탄티노플이 1453년에 무너지자 모스크바가 「제3의 로마」를 자처한다. 그 논리의 뿌리가 988년에 있다.
【남은 것】 성인으로 시성됐다. 러시아정교회와 우크라이나정교회 모두 그를 시조로 삼는다.
그래서 지금도 다툰다. 키예프 루스가 누구의 역사인가를 두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각자 그를 자기 뿌리라 한다.
2016년 모스크바 크렘린 앞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우크라이나가 반발했다 — 그가 세례를 받은 곳이 키이우이기 때문이다.
지도에서 보기: 9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무라사키 시키부 오토 1세 광종 강감찬 이븐 알하이삼 이븐 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