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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바닷길을 열어 아메리카를 유럽 경제에 편입시켰다. 인쇄술이 종교개혁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들었다.
성리학을 국시로 삼은 새 왕조. 훈민정음과 측우기의 시대이자 사림과 훈구가 다투던 때다.
왜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한 잉글랜드 왕과, 대륙에 남은 잉글랜드 영지를 거두려는 프랑스 왕이 부딪혔다. 플랑드르의 모직 이권도 걸려 있었다.
결과116년 만에 프랑스가 대륙에서 잉글랜드를 몰아냈다. 양국 모두 국민 의식이 생겨났다.
왜오스만이 발칸과 아나톨리아를 모두 차지하자 이 도시는 고립된 섬이 됐다. 메흐메트 2세가 거대 대포를 준비했다.
결과1123년 버틴 성벽이 뚫리고 동로마가 끝났다. 지도에서 로마의 마지막 색이 사라진다.
왜백년전쟁 패배로 귀족들이 프랑스 영지를 잃고 국내로 돌아왔다. 헨리 6세의 정신 질환이 권력 공백을 만들었다.
결과보즈워스에서 리처드 3세가 전사하고 튜더 왕조가 열렸다. 대귀족이 서로를 소모시킨 끝에 왕권이 오히려 강해졌다.
스물한 살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했다. 1123년 버틴 성벽이 그의 대포에 뚫렸다.
서로 죽이던 다섯 부족을 하나의 연맹으로 묶었다. 만장일치로 정하고 전쟁은 함께 결정한다는 규칙을 조개구슬 띠에 새겨 전했다. 글자 없이 헌법을 남긴 것이다.
백성이 쓸 문자를 만들었다. 측우기와 자격루, 농사직설도 이 시대다.
찬카족이 쳐들어왔을 때 아버지와 형은 달아났고 그는 남아 막았다. 그 뒤 90년 만에 에콰도르에서 칠레까지 4천 킬로미터를 아우르는 나라를 만들었다.
티무르의 손자인데 별을 봤다. 반지름 40미터 육분의로 항성 1,018개의 자리를 재고 1년의 길이를 365일 6시간 10분 8초로 계산했다. 오차가 1분 이내다.
어머니가 관기였다. 세종이 신분을 넘어 썼다. 스스로 시각을 알리는 물시계와 비의 양을 재는 그릇을 만들었다.
18년을 영의정으로 있었다. 양녕대군 폐위에 반대해 유배됐다가 세종이 다시 불렀다. 반대했던 사람을 쓴 것이다.
열일곱에 군을 이끌고 오를레앙의 포위를 풀었다. 2년 뒤 화형당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인물 · 1453 · 오스만 술탄
스물한 살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했다. 1123년 버틴 성벽이 그의 대포에 뚫렸다.
【그때 그 자리】
오스만은 1300년 무렵 아나톨리아의 작은 세력으로 시작해 100년 만에 발칸을 장악했다.
그런데 1402년 앙카라에서 티무르에게 대패했다. 술탄 바예지드 1세가 사로잡혔고 제국이 10년 넘게 분열됐다.
메흐메트의 아버지 무라트 2세가 이를 수습했다. 그는 특이하게도 두 번 자리에서 물러났다. 1444년 열두 살 아들에게 물려주고 은퇴했다가, 십자군이 오자 돌아와 바르나에서 이겼다.
소년 술탄은 대신들에게 무시당했다. 이 경험이 그를 만들었다.
【왜 그렇게 됐나】
1451년 열아홉에 다시 즉위했다. 그는 곧바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목표로 삼았다.
이유가 있었다. 오스만 영토가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는데 그 한가운데 이 도시가 남아 있었다. 지리적으로 몸통 가운데 박힌 가시였다.
그리고 정통성 문제가 있었다. 로마의 계승자가 되려면 로마의 도시를 가져야 했다.
이 도시는 1,100년 동안 스무 번 넘게 포위됐지만 함락된 적이 거의 없었다. 테오도시우스 성벽 때문이다.
【어떻게 흘렀나】
그는 준비를 다르게 했다.
헝가리 기술자 우르반을 고용해 거대한 대포를 만들었다. 포신 8미터에 500킬로그램 돌을 쏘았다. 우르반은 원래 비잔티움 황제에게 먼저 갔다가 봉급을 줄 돈이 없어 거절당했다.
보스포루스 해협 좁은 곳에 루멜리 히사르 요새를 넉 달 만에 지어 흑해에서 오는 보급을 끊었다.
1453년 4월 포위가 시작됐다. 골든혼 입구에 쇠사슬이 걸려 배가 못 들어갔다.
그는 배를 육지로 옮겼다. 기름칠한 통나무 위로 함선 70여 척을 언덕 너머로 끌어 골든혼 안쪽에 띄웠다. 쇠사슬이 무의미해졌다.
5월 29일 새벽 함락됐다.
【그래서】
그가 함락 뒤에 한 일이 더 중요하다.
도시를 비워 두지 않았다. 각지에서 사람을 옮겨 오고 세금을 면제해 정착을 유도했다.
그리스 정교회 총대주교를 다시 세우고 자치를 인정했다. 아르메니아 교회와 유대인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밀레트 제도의 틀이다.
1492년 에스파냐에서 쫓겨난 유대인을 대거 받아들였다.
스스로를 로마의 계승자, 카이사르라 칭했다.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웠고 이탈리아 화가 젠틸레 벨리니를 불러 자기 초상을 그리게 했다. 이슬람에서 인물 초상이 흔치 않던 때다.
법전을 정리하고 행정을 체계화했다. 정복자이자 법을 세운 자로 불린다.
【남은 것】
그의 정복으로 그리스 학자들이 필사본을 들고 이탈리아로 갔다. 르네상스의 재료가 됐다.
동시에 오스만이 동방 무역로를 쥐면서 유럽이 바닷길을 찾기 시작했다. 39년 뒤 콜럼버스가 떠난다.
중세의 끝을 1453년으로 잡는 교과서가 많은 이유가 여기 있다.
평가가 갈린다. 유럽에서는 오래 정복자이자 위협으로 그려졌다. 튀르키예에서는 정복자 파티흐로 기려진다.
확실한 것은 스물한 살이 1,100년 버틴 성벽을 넘는 방법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남들이 성벽을 어떻게 넘을까 생각할 때 그는 배를 산으로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