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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제국을 넷으로 나눠 통치했고 콘스탄티누스가 다시 합쳤다. 수도가 동쪽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겨가고, 박해받던 기독교가 국교가 되어간다.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왜황제가 군대에 의해 세워지고 죽는 일이 반복됐다. 은화의 은 함량이 5%까지 떨어지며 물가가 폭등했다.
결과50년간 황제가 26명 바뀌고 제국이 셋으로 갈라졌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사두정치로 겨우 봉합했지만 제국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졌다.
노예 출신 병사에서 황제가 됐다. 혼자 다스리기엔 제국이 너무 커졌다고 보고 넷으로 쪼갠 뒤, 스스로 물러나 양배추를 길렀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인물 · 284 · 제국을 넷으로 나눈 황제
노예 출신 병사에서 황제가 됐다. 혼자 다스리기엔 제국이 너무 커졌다고 보고 넷으로 쪼갠 뒤, 스스로 물러나 양배추를 길렀다.
【그때 그 자리】 3세기의 로마는 50년 동안 황제가 스무 명 넘게 바뀌었다. 군인이 황제를 세우고 죽이기를 반복했고, 국경은 게르만과 사산조에 뚫렸으며, 화폐 가치가 폭락했다.
「3세기의 위기」다. 제국이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왜 그렇게 됐나】 달마티아 출신의 하급 병사에서 올라온 사람이다. 285년 황제가 됐다.
그가 본 문제는 하나였다 — 한 사람이 다스리기에 제국이 너무 크다.
동방과 서방에 각각 정제(아우구스투스)를 두고, 그 밑에 부제(카이사르)를 둘씩 두었다. 넷이 다스리는 사두정치다.
【어떻게 흘렀나】 행정 구역을 잘게 쪼갰다. 속주 수를 두 배 이상 늘리고 군사권과 행정권을 분리했다. 반란을 일으키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세금을 사람과 땅 단위로 다시 매겼고(카피타티오-유가티오), 화폐를 개혁했으며, 301년 최고가격령을 내려 물가를 잡으려 했다. 이건 실패했다 — 물건이 시장에서 사라졌다.
황제를 신격화했다. 자주색 옷에 보석을 두르고, 알현할 때 무릎을 꿇고 옷자락에 입 맞추게 했다. 로마의 원수(프린켑스)가 동방식 전제군주(도미누스)가 된 것이다.
303년 기독교를 대대적으로 박해했다. 교회를 헐고 경전을 불태우고 성직자를 잡았다. 로마사 최대의 박해다.
【그래서】 305년 스스로 물러났다. 로마 황제가 살아서 퇴위한 첫 경우다. 고향 스팔라툼(지금의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에 궁을 짓고 채소를 길렀다.
동료 막시미아누스가 돌아오라 하자 「내가 기른 양배추를 보면 그런 말을 못 할 것」이라 했다고 전한다.
【남은 것】 사두정치는 그가 물러나자마자 무너졌다. 서로 싸우다 콘스탄티누스가 통일한다.
그러나 그의 행정 개혁과 전제화는 남았다. 그가 박해한 기독교는 10년 뒤 공인되고 80년 뒤 국교가 된다.
스플리트의 궁전은 그대로 도시가 됐다. 지금도 사람이 그 안에서 살고 장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