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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로마가 지중해를 장악했지만 그 부가 공화정을 무너뜨렸다. 그라쿠스 형제의 토지 개혁이 유혈로 끝나고, 군벌들이 사병을 거느리며 내전이 반복됐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히스파니아의 은광을 노린 로마가 내륙 부족과 부딪쳤다. 부족들은 정면 대결 대신 매복과 기습으로 맞섰다.
결과누만티아는 8개월 포위 끝에 주민이 스스로 도시를 불태우고 자결했다. 로마가 「게릴라전」이라는 문제를 처음 만난 전쟁이다.
정복으로 부자가 된 귀족이 농지를 독점하자 자영농이 사라졌다. 형제가 차례로 토지 개혁을 시도했다가 차례로 살해됐다.
흉노를 협공할 동맹을 찾아 서역으로 떠났다가 10년을 포로로 지냈다. 탈출해 임무를 마치고 13년 만에 돌아왔다.
54년을 다스리며 흉노를 밀어내고 서역으로 길을 열었다. 유교를 국가의 학문으로 세운 것도 그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인물 · BC 133 · 땅을 나누자 하고 죽은 형제
정복으로 부자가 된 귀족이 농지를 독점하자 자영농이 사라졌다. 형제가 차례로 토지 개혁을 시도했다가 차례로 살해됐다.
【그때 그 자리】 BC 2세기 로마. 포에니 전쟁에서 이겼는데 안이 무너지고 있었다.
오래 전장에 나가 있는 동안 자영농의 땅이 황폐해졌다. 돌아와 보니 빚만 남아 팔 수밖에 없었다. 그 땅을 귀족이 사들여 노예를 부리는 대농장(라티푼디움)을 만들었다.
자영농이 사라지면 군대가 사라진다. 로마는 재산이 있는 시민만 병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됐나】 BC 133년 형 티베리우스가 호민관이 됐다. 「이탈리아의 들짐승도 굴이 있는데, 로마를 위해 싸우고 죽는 사람들에게는 공기와 햇빛 말고 아무것도 없다.」
공유지를 한 사람이 500유게라(약 125헥타르) 넘게 갖지 못하게 하고, 남는 땅을 가난한 시민에게 나누는 법을 냈다.
원로원이 막았다. 티베리우스는 절차를 무시하고 민회에서 통과시켰고, 재선을 노리다 그해 원로원 의원들에게 몽둥이로 맞아 죽었다. 300명이 함께 죽어 티베르강에 던져졌다.
【어떻게 흘렀나】 10년 뒤 동생 가이우스가 호민관이 됐다.
형보다 넓게 갔다. 곡물을 싼값에 공급하는 곡물법, 기사 계급에게 재판권을 주어 원로원을 견제하는 법, 이탈리아 동맹시에 시민권을 주는 법.
특히 마지막이 원로원을 자극했다. BC 121년 원로원 최종 권고가 내려졌고, 가이우스는 쫓기다 노예에게 자기를 죽이라 했다. 지지자 3천이 처형됐다.
【그래서】 두 형제의 죽음이 로마 공화정의 성격을 바꿨다.
그전까지 정치는 말과 표결이었다. 이후로는 폭력이 정치의 수단이 됐다. 마리우스와 술라,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내전이 그 연장선에 있다.
【남은 것】 어머니 코르넬리아가 남긴 이야기가 유명하다. 어떤 부인이 보석을 자랑하자 아들 둘을 가리키며 「이 아이들이 나의 보석입니다」 했다.
개혁이 옳았는가는 지금도 논쟁이다. 다만 그들이 지적한 문제 — 자영농의 몰락 — 는 실재했고, 해결되지 않은 채 공화정이 무너진다.
지도에서 보기: BC 2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장건 한 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