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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산업화한 열강이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나눠 가졌다. 동맹 체제가 굳어지며 국지 분쟁이 전면전으로 번질 구조가 만들어졌다.
황제국을 선포하고 근대화를 시도했지만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잃었다.
왜동학농민운동 진압을 명분으로 청과 일본이 동시에 조선에 파병했다. 일본은 철수를 거부하고 조선의 지배권을 걸었다.
결과일본이 청을 꺾었다. 조선에 대한 청의 종주권이 끝났다.
왜전라도 고부 군수의 수탈에 항의하며 봉기한 농민군이 동학(민중 종교)을 매개로 전국적으로 규합했다.
결과농민군이 전주성까지 점령하자 조선 정부가 청에 파병을 요청했고, 톈진 조약에 따라 일본도 군대를 보내며 청일전쟁의 도화선이 됐다. 이후 일본군에 의해 우금치 등에서 농민군이 진압됐다.
왜300년 넘게 이어진 스페인의 식민 지배에 맞서 호세 리살 등의 사상적 영향을 받은 필리핀인들이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결과미국-스페인 전쟁이 겹치면서 스페인은 결국 필리핀을 미국에 넘겼는데, 필리핀인들은 스페인 대신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곧이어 필리핀-미국 전쟁을 벌이게 된다.
왜이탈리아가 조약 문구를 자기들 유리하게 해석해 보호령을 주장하자 메넬리크가 거부했다.
결과에티오피아가 이겼다. 아프리카가 유럽 군대를 정면에서 꺾은 드문 예이고, 그래서 에티오피아만 식민 지배를 면했다. 이 소식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민족운동에 크게 울렸다.
왜수단에서 일어난 마흐디 운동이 13년간 독립을 유지하고 있었다.
결과다섯 시간에 수단 쪽 1만이 죽고 영국 쪽 48명이 죽었다. 기관총이 전장에서 무엇을 하는지 처음으로 분명히 보인 날이다. 처칠이 스물셋에 여기 참전했다.
왜쿠바 독립전쟁에 미국 여론이 개입을 원했고, 아바나 항의 군함 메인호 폭발이 선전포고의 구실이 됐다.
결과「멋진 작은 전쟁」은 넉 달 만에 끝났다. 미국은 필리핀·괌·푸에르토리코를 얻고 쿠바를 보호국으로 삼아 태평양 제국이 됐다. 필리핀에서는 곧 독립군과의 새 전쟁이 시작됐다.
왜트란스발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영국계 이주민이 몰렸고, 영국이 이들의 참정권을 명분으로 보어 공화국을 압박했다.
결과영국이 남아프리카의 보어 공화국들을 병합했다.
왜미국-스페인 전쟁 뒤 미국이 필리핀을 매입하자, 이미 독립을 선포했던 필리핀 혁명 세력이 이에 맞섰다.
결과아기날도 등 독립 지도부가 붙잡히거나 항복하며 정규전은 끝났지만, 이후로도 저항이 이어졌다. 필리핀 민간인 사망자가 수십만 명에 달했다는 추산도 있다.
왜기독교 선교와 외세 침탈에 분노한 산둥의 비밀결사 「의화단」이 「부청멸양」을 외치며 교회와 철도를 부수자 서태후가 이를 이용해 열강에 선전포고했다.
결과55일 공사관 포위 끝에 연합군이 베이징을 점령하고 서태후는 시안으로 달아났다. 청은 4억 5천만 냥의 배상금과 외국군 주둔을 받아들였고, 러시아는 만주를 점령해 러일전쟁의 씨앗이 됐다.
어린 나이에 즉위해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세력 사이에서 통치했다. 을미사변 후 아관파천을 거쳐 대한제국을 선포했으나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기고 강제 퇴위당했다.
이탈리아의 침공을 아드와에서 격퇴했다. 아프리카가 유럽 군대를 정면에서 이긴 드문 예이고, 그래서 에티오피아만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
헛간 실험실에서 광석을 정제해 새 원소를 분리했다. 서로 다른 두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유일한 사람.
갑신정변 실패 후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귀국해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를 조직, 자주독립과 근대 개혁을 이끄는 여론을 일으켰다.
친러 정책으로 일본을 견제하려 하자, 조선 침탈에 방해가 된다고 본 일본 낭인들이 경복궁을 습격해 그를 시해했다(을미사변).
아버지가 고부군수의 수탈에 항의하다 맞아 죽었다. 키가 작아 녹두장군이라 불렸다. 우금치에서 기관총 앞에 무너졌다.
흑체복사 문제를 풀려고 에너지가 최소 단위로만 오간다고 가정했다. 그렇게 양자역학이 시작됐다.
꿈은 억압된 소원의 실현이고 사람은 스스로 모르는 힘에 이끌린다. 그의 이론은 심리학과 문학, 일상의 말까지 바꿨다.
1903년 12월 17일 키티호크 모래언덕에서 12초, 36m. 자전거 가게를 하던 두 형제가 하늘을 열었다.
노예제를 없애고 관료제와 학교와 철도를 들였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땅 일부를 내주며 균형을 잡았다. 동남아시아에서 식민지가 되지 않은 유일한 나라다.
드비어스로 다이아몬드를 독점하고 케이프 식민지 총리가 됐으며 자기 이름을 딴 로디지아를 만들었다. 「할 수만 있다면 별도 병합하겠다」고 했다.
넉 달 사이 논문 네 편으로 물리학을 바꿨다. 1919년 일식 관측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에디슨의 직류에 맞서 교류 모터와 송전을 만들어 오늘의 전력망을 결정했다. 무선 전력의 꿈을 좇다 가난하게 죽었다.
역사는 나와 남의 싸움이라고 썼다. 을지문덕전을 써서, 우리에게도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일 자체가 힘이 된다고 봤다.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재판에서 동양평화론을 남겼다.
백조목 플라스크로 미생물이 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증명했다. 최초로 광견병 백신을 사람에게 썼다.
조슈의 하급 무사에서 4번 총리가 됐다. 대일본제국 헌법을 기초했고, 을사늑약을 강요한 뒤 하얼빈에서 안중근에게 저격당했다.
위에서 빠르게 바꾸려 했다. 일본의 힘을 빌린 것이 화근이었다. 사흘 만에 끝났고 10년 뒤 상하이에서 암살됐다.
남부 농민들을 이끌고 빼앗긴 공유지를 되찾으려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약속은 미뤄졌고 그는 끝내 타협하지 않았다. 매복에 걸려 죽었다.
원자핵을 발견하다
기독교 도덕을 「노예의 도덕」이라 불렀고 위버멘시와 영원회귀를 말했다. 44세에 광기에 빠졌고 그의 책은 20세기 사상을 뒤흔들었다.
결핵균과 콜레라균을 찾다
대륙이 움직인다고 말한 사람
삼민주의를 내걸고 열 번 봉기해 열 번 실패했지만 신해혁명으로 2천 년 제정을 끝냈다. 국민당과 공산당 모두 그를 국부로 받든다.
당장 싸우는 것보다 사람을 기르는 것이 먼저라고 봤다. 미국에서 동포를 조직하고 학교를 세웠다.
전자가 정해진 궤도만 돈다는 원자모형으로 양자역학의 문을 열었다.
모델 T를 조립라인에서 93분에 한 대씩 만들어 값을 세 배 낮췄다. 노동자에게 하루 5달러를 주어 자기 차를 사게 했다.
압전 효과를 발견하다
1,093건의 특허. 멘로파크 연구소에서 발명을 산업으로 만들었고, 뉴욕에 세계 최초의 발전소를 세워 밤을 밝혔다.
제국을 무너뜨리고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를 세웠다.
18세에 즉위해 산업혁명과 제국 팽창의 시대를 살았다. 인도 여제가 됐고 유럽 왕실의 할머니가 됐다.
라코타족을 비롯한 여러 부족을 규합해 미군에 맞섰다. 1876년 리틀빅혼 전투에서 커스터 중령의 기병대를 전멸시켰으나, 결국 1890년 체포 과정에서 사살됐다.
열일곱에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를 이끌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숨졌다.
3·1운동 뒤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를 이끌었다. 광복군을 조직했다.
민족자결을 말해 3·1운동에 불을 붙였다. 국제연맹을 만들었으나 정작 미국 상원이 가입을 거부했다.
북로군정서를 이끌고 청산리 일대에서 일본군과 맞서 독립군 최대의 승리를 거뒀다. 이후 만주에서 무장 투쟁을 이어가다 암살당했다.
포수 출신으로 대한독립군을 조직해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다. 훗날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해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로마 진군」으로 권력을 잡은 첫 파시스트 독재자. 히틀러의 본보기이자 나중엔 그의 꼭두각시가 됐고, 파르티잔에게 처형돼 거꾸로 매달렸다.
세 번의 전쟁으로 독일을 통일했다. 이후 20년간 유럽의 균형을 관리했다.
제1차 세계대전 갈리폴리 전투의 영웅으로 명성을 얻은 뒤, 튀르크 독립전쟁을 이끌어 그리스와 연합국의 분할 시도를 막아냈다. 1923년 술탄정을 폐지하고 튀르키예 공화국을 세워 초대 대통령이 됐다.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인물 · 1897 · 대한제국을 선포한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초대 황제
어린 나이에 즉위해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세력 사이에서 통치했다. 을미사변 후 아관파천을 거쳐 대한제국을 선포했으나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기고 강제 퇴위당했다.
고종은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세력 사이에서 통치하다, 을미사변과 아관파천을 거쳐 대한제국을 선포했으나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잃고 결국 강제 퇴위당했다.
12살에 왕위에 올라 초기에는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섭정했고, 성년이 된 뒤에는 왕비 명성황후 세력과 함께 개화 정책을 추진했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등 격동을 거치며 청과 일본, 러시아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썼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왕비가 시해되는 충격을 겪은 그는 이듬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다가(아관파천), 1897년 환궁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올랐다. 광무개혁을 통해 근대화를 꾀했으나 열강의 압박은 갈수록 거세졌다.
1905년 을사늑약에 끝까지 서명을 거부했지만 조약 체결을 막지는 못했고, 1907년 그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헤이그에 특사를 보냈다가 오히려 이를 구실로 일본에 의해 강제 퇴위당했다. 아들 순종에게 왕위를 넘긴 뒤 태황제로 물러나 있다가 1919년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독살설은 3·1운동이 촉발되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88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메넬리크 2세 마리 퀴리 서재필 명성황후 전봉준 막스 플랑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