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륭제

3000
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 왼쪽 · 오른쪽 ▶
지도에 표시
주요 국가
오른쪽 게이지를 끌거나 키보드 ↑↓로 5천 년이 흐릅니다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주요 공격
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절대왕정과 계몽

유럽 대부분이 절대군주의 궁정 정치로 움직였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전쟁이 반복됐고, 그 아래 살롱과 백과전서에서 왕권을 의심하는 사상이 자랐다.

한반도

조선 후기

세도정치와 삼정 문란이 겹쳤다. 서양 선박이 연안에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문을 닫아걸었다.

전쟁 3건

청의 준가르 정벌1755 – 1758
청 vs 준가르 칸국

몽골계 유목 제국 준가르 칸국은 오랫동안 청과 중앙아시아 패권을 다퉜다. 준가르 내부의 왕위 계승 다툼을 틈타 청이 대대적인 원정에 나섰다.

일리 정벌 1755아무르사나의 반란 진압 1757-58

결과청은 정복지의 준가르인을 조직적으로 학살했다 — 인구의 상당수가 죽거나 도주했다는 기록이 있어 현대 학자들은 이를 집단학살로 규정하기도 한다.

3년 · 준가르 칸국 소멸, 신장(新疆, '새 영토') 편입
7년전쟁1756 – 1763
영국·프로이센 vs 프랑스·오스트리아·러시아

슐레지엔을 되찾으려는 오스트리아가 오랜 적 프랑스와 손잡으며 외교 관계가 뒤집혔다. 동시에 영국과 프랑스는 북아메리카와 인도에서 이미 충돌하고 있었다.

로스바흐 1757플라시 1757퀘벡 1759쿠너스도르프 1759

결과유럽·아메리카·인도에서 동시에 벌어진 사실상 최초의 세계대전. 영국이 프랑스를 밀어내고 해양 패권을 잡았다.

7년 · 유럽·북아메리카·인도에서 동시에
플라시 전투1757
영국 동인도회사 vs 벵골 태수

회사가 나라와 싸웠다. 클라이브의 병력은 3천, 벵골은 5만이었다.

플라시

결과실은 싸움보다 매수였다. 벵골 사령관 미르 자파르가 등을 돌렸다. 이 하루로 회사가 벵골의 징세권을 얻었고, 회사가 나라를 다스리는 구조가 여기서 시작된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19명

건륭제정치1760 · 청의 최대 판도와 쇠퇴의 씨앗을 함께 남긴 황제
1711 – 1799, 재위 1735 – 1796

준가르를 멸하고 신장을 얻어 청의 영토를 최대로 넓혔다. 「사고전서」를 편찬했으나 만년의 부패와 매카트니 사절 거절이 몰락을 예고했다.

  • 십전무공 — 준가르 멸망, 신장 병합(1759)
  • 「사고전서」 편찬과 문자옥
  • 매카트니 사절단 거절(1793)
볼테르사상1760 · 종교적 광신과 싸운 계몽의 상징
1694 – 1778

「당신의 말에 반대하지만 말할 권리는 목숨 걸고 지키겠다」— 그의 이름과 함께 전해지는 이 정신이 표현의 자유의 표어가 됐다.

  • 「철학 서한」「캉디드」「관용론」
  • 칼라스 사건 — 억울한 개신교도 명예 회복
  • 바스티유 투옥, 영국·프로이센 망명
린네과학1758 · 식물학자
1707 – 1778

생물 분류 체계를 세우다

  • 이명법 확립
  • 자연의 체계 1758
  • 현대 생물 분류의 기초
예카테리나 대제정치1762 · 러시아를 유럽 열강으로 키운 여제
1729 – 1796, 재위 1762 – 1796

독일 출신 공주로 시집와 쿠데타로 남편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제위에 올랐다. 34년 재위 동안 영토를 크게 넓히고 계몽사상을 받아들였다.

  • 쿠데타로 남편 표트르 3세를 폐위
  • 오스만·폴란드로부터 영토 확장
  • 계몽 군주를 자처했으나 농노제는 오히려 강화
루소사상1762 · 「사회계약론」으로 혁명에 불을 붙인 사상가
1712 – 1778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주권은 인민에게 있다는 그의 말이 프랑스 혁명의 구호가 됐다.

  • 「사회계약론」「에밀」(1762)
  • 일반의지·인민주권 사상
  • 「고백록」 — 근대 자서전의 시작
프리드리히 대왕정치1757 · 프로이센을 강국으로 올린 계몽 군주
1712 – 1786, 재위 1740 – 1786

슐레지엔을 빼앗고 7년전쟁에서 유럽 전체를 상대로 버텼다. 플루트를 불고 볼테르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국가의 제1 종복」을 자처했다.

  • 슐레지엔 전쟁으로 오스트리아에서 영토 탈취
  • 7년전쟁 — 로이텐·로스바흐 승리
  • 고문 폐지, 종교 관용, 감자 보급
제임스 쿡탐험1770 · 태평양을 지도에 올린 항해가
1728 – 1779

세 차례 항해로 태평양의 해안선을 그렸다. 감귤로 괴혈병을 막아 긴 항해를 가능하게 했다. 그가 그린 지도가 곧 식민의 지도가 됐다.

  • 뉴질랜드와 호주 동해안 측량
  • 괴혈병 예방
  • 하와이에서 살해
마리아 테레지아정치1745 · 16명의 자녀를 낳고 합스부르크를 지킨 여제
1717 – 1780, 재위 1740 – 1780

여자라는 이유로 유럽이 상속을 부정하자 헝가리 귀족 앞에 아기를 안고 나서 군대를 얻었다. 40년 동안 제국을 개혁했다.

  •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에서 제국 수호
  • 의무교육·행정 개혁, 상비군 정비
  • 마리 앙투아네트 등 자녀 정략혼
워싱턴정치1776 · 대륙군 총사령관
1732 – 1799

독립을 이끌고 왕이 되기를 거절했다. 두 번의 임기 뒤 스스로 물러났다.

  • 대륙군 총사령관
  • 요크타운 승리
  • 두 번의 임기 뒤 스스로 물러남
정조정치1776 · 조선 22대 왕
1752 – 1800

규장각을 세우고 수원 화성을 쌓았다. 탕평으로 붕당을 눌렀다.

  • 규장각 설치
  • 수원 화성 축조
  • 탕평과 신해통공
애덤 스미스사상1776 · 「국부론」으로 경제학을 세운 철학자
1723 – 1790

「보이지 않는 손」— 각자가 자기 이익을 좇을 때 사회 전체가 부유해진다. 분업과 자유무역을 설명한 이 책이 자본주의의 경전이 됐다.

  • 「도덕감정론」(1759)
  • 「국부론」(1776)
  • 분업·자유시장·보이지 않는 손
제퍼슨정치1776 · 독립선언문을 쓴 미국 3대 대통령
1743 – 1826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썼으면서 노예 600명을 소유했다. 루이지애나를 사들여 나라를 두 배로 넓혔다.

  • 독립선언문 기초(1776)
  • 버지니아 종교자유법
  • 루이지애나 매입(1803), 루이스·클라크 원정
벤저민 프랭클린과학1776 · 번개를 잡은 과학자이자 미국 건국의 아버지
1706 – 1790

인쇄공에서 시작해 피뢰침을 발명하고 프랑스를 독립전쟁의 동맹으로 끌어들였다. 독립선언과 헌법에 모두 서명한 유일한 인물 중 하나다.

  • 연 실험으로 번개의 전기 증명(1752), 피뢰침
  • 독립선언 기초위원, 프랑스 동맹 체결(1778)
  •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
제임스 와트과학1776 · 증기기관을 개량해 산업혁명의 동력을 만든 기술자
1736 – 1819

분리 응축기로 증기기관의 효율을 세 배 올렸고 회전 운동으로 바꿔 공장과 기차를 움직였다. 힘의 단위 「와트」가 그의 이름이다.

  • 분리 응축기 특허(1769)
  • 볼턴과 회전식 증기기관 상용화(1776–)
  • 마력(馬力) 단위 정의
김홍도예술1780 · 조선의 화가
1745 – ?

임금의 초상을 그리는 화원이면서 씨름하고 서당에서 우는 아이를 그렸다. 그림의 주인공이 왕에서 사람으로 내려온 순간이다.

  • 단원풍속도첩 — 씨름·서당·타작
  • 정조의 어진을 그림
  • 금강산 실경산수
박지원사상1780 · 북학파의 문장가
1737 – 1805

청에 다녀와 열하일기를 썼다. 오랑캐라 부르던 나라가 실제로는 더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적었다.

  • 열하일기
  • 양반전·허생전 — 양반을 웃음거리로 삼음
  • 수레와 벽돌을 쓰자고 주장
칸트사상1781 · 「순수이성비판」으로 근대 철학을 뒤집은 사상가
1724 – 1804

평생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우리의 틀로 본다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었다.

  • 「순수이성비판」(1781)
  • 「실천이성비판」 — 정언명령
  • 「영구평화론」 — 국제연맹의 사상적 뿌리
오일러과학1736 · 수학자
1707 – 1783

역사상 가장 많은 논문을 쓴 수학자

  • 쾨니히스베르크 다리 문제 해결
  • 그래프 이론의 시작
  • 현대 수학 표기법 다수 고안
모차르트예술1786 · 35년의 생애에 600곡을 남긴 천재
1756 – 1791

다섯 살에 작곡하고 여덟 살에 교향곡을 썼다. 「피가로의 결혼」「돈 조반니」「마술피리」와 미완의 「레퀴엠」을 남기고 빈에서 빈곤 속에 죽었다.

  • 유럽 순회 신동 연주(1762–1766)
  • 「피가로의 결혼」(1786)「돈 조반니」「마술피리」
  • 「레퀴엠」 미완성 작

그 무렵의 사건

1755
리스본 대지진
만성절 아침 지진·쓰나미·화재가 리스본을 지웠다. 「신은 왜 허락했는가」가 계몽사상의 질문이 됐다.
11월 1일 미사 시간에 규모 8.5로 추정되는 지진이 덮쳤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강가로 피하자 쓰나미가 왔고 촛불이 도시를 닷새 동안 태웠다. 인구 20만 중 3만에서 5만이 죽었다. 재상 폼발은 「죽은 자를 묻고 산 자를 먹이라」며 격자형 내진 도시를 다시 세웠고, 볼테르는 「캉디드」로 낙관론을 비웃었다. 근대 지진학의 출발점이다.
1769
산업혁명
와트의 증기기관 특허와 아크라이트의 방적기가 같은 해에 나왔다. 기계가 사람의 손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석탄과 철이 풍부한 영국 중부에서 면직물 공장이 강가에서 도시로 옮겨 왔다. 증기기관이 방적기와 직조기를 돌리고 곧 철도를 끌었다. 인구가 농촌에서 맨체스터·버밍엄으로 몰렸고 아동 노동과 슬럼, 그리고 중산층이 함께 생겼다. 이 변화는 100년 안에 유럽과 미국, 일본으로 번져 인류의 생활수준을 처음으로 지속적으로 끌어올렸다.
1750
균역법 시행
영조는 백성이 부담하던 군포를 절반으로 줄이는 균역법을 시행해 군역의 폐단을 완화했다.
조선의 양인 남성은 군역 대신 군포(베 2필)를 바쳐야 했는데, 군적이 문란해지면서 이미 죽은 사람이나 갓난아이에게까지 군포를 매기는 백골징포·황구첨정 같은 폐단이 만연했다. 영조는 1750년 균역법을 시행해 군포 부담을 종전의 절반인 1필로 줄였다. 이로 인해 줄어든 국가 재정은 지주에게 걷는 결작(토지에 매기는 세금)과 어업세·소금세 등 잡세로 메우도록 했다. 균역법은 백성의 부담을 다소 덜어주었지만 근본적인 군적 문란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해, 조선 후기까지 군포 관련 폐단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1776
미국 독립선언
7월 4일 필라델피아에서 13개 식민지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차 세금과 대표 없는 과세에 반발한 식민지는 1775년 렉싱턴에서 총을 들었다. 제퍼슨이 쓴 선언문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됐고 생명·자유·행복 추구의 권리를 가지며 정부가 이를 어기면 갈아치울 수 있다고 했다. 서명자들은 반역죄로 교수형을 각오했다. 8년 전쟁 뒤 독립이 인정됐고, 이 문서는 프랑스 혁명과 이후 모든 독립선언의 본보기가 됐다.
1782
차크리 왕조 성립
1782년, 라마 1세가 방콕을 수도로 삼아 차크리 왕조를 열었다. 이 왕조는 지금까지 태국을 통치하고 있다.
태국(당시 시암)은 이 왕조 아래 동남아시아에서 식민지가 되지 않고 독립을 유지한 유일한 나라가 됐다 — 영국령과 프랑스령 사이에서 완충국 역할을 하며 외교적으로 줄타기를 한 결과였다.
1789
프랑스 혁명
바스티유가 함락되고 왕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국민'이라는 새 정치 단위가 생겼다. 나폴레옹이 이를 총검에 실어 유럽에 퍼뜨린다.

교역로 2개

희망봉 항로1500 – 1900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오간 것후추와 면직물, 그리고 나중엔 차와 아편. 지중해를 거치지 않는 길이 베네치아와 오스만을 밀어냈다.
거점리스본 · 카나리아 · 희망봉 · 모잠비크 · 고아 · 말라카
대서양 삼각무역1600 – 1850

유럽의 공산품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 유럽. 세 대륙이 하나의 경제로 묶였다.

오간 것유럽의 총기·직물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1,200만 명이 대서양을 건넜다.
거점리버풀 · 리스본 · 기니만 · 카리브 · 버지니아

건륭제

인물 · 1760 · 청의 최대 판도와 쇠퇴의 씨앗을 함께 남긴 황제

준가르를 멸하고 신장을 얻어 청의 영토를 최대로 넓혔다. 「사고전서」를 편찬했으나 만년의 부패와 매카트니 사절 거절이 몰락을 예고했다.

준가르를 멸하고 신장을 얻어 청의 영토를 최대로 넓혔다. 「사고전서」를 편찬했으나 만년의 부패와 매카트니 사절 거절이 몰락을 예고했다.

옹정제의 넷째 아들로 할아버지 강희제의 총애를 받으며 자랐다. 즉위 후 준가르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위구르 지역까지 병합해 「새 강역(신장)」이라 이름 붙였다.

3만 6천 권의 「사고전서」를 만들면서 반청 서적 수천 종을 불태웠고, 열 번의 전쟁을 「십전무공」이라 자찬했다. 미얀마·베트남 원정은 실패였고 백련교 반란이 만년에 터졌다.

영국의 매카트니가 통상을 청하자 「우리는 부족한 것이 없다」며 물리쳤다. 총신 화신의 부패를 방치한 채 할아버지보다 오래 다스리지 않겠다며 퇴위했고, 재산 몰수된 화신의 부는 국고 10년치였다.

지도에서 보기: 1715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볼테르 린네 예카테리나 대제 루소 프리드리히 대왕 제임스 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