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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50년 동안 황제가 스무 명 넘게 바뀌었다. 군대가 황제를 세우고 죽였으며 은화의 은 함량이 5퍼센트 아래로 떨어졌다. 국경이 동시에 뚫렸다.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왜화북을 평정한 조조가 남쪽까지 삼키려 내려왔다. 손권과 유비가 살아남기 위해 손을 잡았다.
결과화공으로 조조가 물러났다. 중국이 셋으로 갈라지는 형세가 굳어졌다.
황건적 진압으로 이름을 얻고 헌제를 옹립해 명분을 쥐었다. 둔전제로 군량을 자급한 것이 다른 군벌과의 결정적 차이였다.
국력이 위의 5분의 1인 촉을 이끌고 다섯 번 북벌했다.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지지 않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해석이 많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지명 · 209 · 고구려의 산성 도읍, 관구검에게 함락되다
고구려의 산성 도읍. 244년 관구검에게 함락
지금의 중국 지안(集安) 부근 산 위에 자리한 고구려의 산성이다. 평지에 있던 국내성과 짝을 이뤄, 평소에는 국내성에서 지내다 위급할 때 이 산성으로 옮겨 방어하는 체제였던 것으로 본다.
209년 산상왕이 이곳으로 도읍을 옮겼다고 「삼국사기」는 전하며, 이후로도 국내성과 함께 고구려 초기의 핵심 거점으로 쓰였다.
244~245년 위나라 장수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공해 동천왕을 크게 격파하고 이 성을 함락했다 — 왕이 옥저 방면으로 피란했을 정도로 큰 타격이었다. 관구검은 자신의 승전을 기려 인근 바위에 글을 새겼는데(관구검기공비), 그 파편이 20세기에 발견돼 이 침공의 실재를 뒷받침하는 물증이 됐다.
고구려는 이후 국력을 회복해 이 일대를 되찾았고, 산성 도읍 체제 자체는 이어지다가 3세기 말~4세기 초 다시 정비된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