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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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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몽골의 세기

유라시아 대부분이 한 왕조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역참으로 동서가 이어져 사람과 물자와 역병이 함께 흘렀다.

한반도

원 간섭기

몽골과 강화한 뒤 원의 부마국이 됐다. 공민왕이 반원 개혁을 시도했지만 왕조는 이미 기울었다.

전쟁 2건

겐코의 난1331 – 1333
고다이고 천황 vs 가마쿠라 막부

몽골 침입을 막고도 나눠 줄 땅이 없어 고케닌의 불만이 쌓여 있었다.

가사기산 1331가마쿠라 함락 1333

결과토벌하러 간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편을 바꾸면서 막부가 무너졌다. 호조 일족 800여 명이 집단 자결했고, 곧 남북조 60년의 분열이 이어진다.

2년 · 150년 막부의 붕괴
백년전쟁1337 – 1453
잉글랜드 vs 프랑스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한 잉글랜드 왕과, 대륙에 남은 잉글랜드 영지를 거두려는 프랑스 왕이 부딪혔다. 플랑드르의 모직 이권도 걸려 있었다.

크레시 1346푸아티에 1356아쟁쿠르 1415오를레앙 1429카스티용 1453

결과116년 만에 프랑스가 대륙에서 잉글랜드를 몰아냈다. 양국 모두 국민 의식이 생겨났다.

116년 · 흑사병과 겹쳐 양국 인구가 크게 줄었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4명

만사 무사정치1324 · 금을 뿌리며 순례한 왕
1280 무렵 – 1337 무렵

말리 제국의 왕으로 메카 순례에 수행원 6만과 금 실은 낙타 수백 마리를 데려갔다. 카이로에 금을 너무 많이 뿌려 그 지역 금값이 10년 넘게 회복되지 않았다.

  • 1324년 메카 순례
  • 팀북투에 학자와 건축가를 데려옴
  • 1375년 카탈루냐 지도에 금덩이를 든 모습으로 그려짐
이븐 바투타탐험1350 · 30년을 걸어 12만 km를 간 사람
AD 1304 – AD 1369

메카 순례로 시작해 인도·중국·아프리카까지 돌았다. 마르코 폴로보다 세 배 멀리 갔다.

  • 아프리카·중동·인도·중국·이베리아를 순회
  • 델리 술탄국의 법관으로 일함
  • 「리흘라」 — 14세기 세계의 목격담
가자 마다정치1350 · 섬들을 하나로 묶겠다 한 재상
? – 1364

마자파힛의 재상으로 군도를 통일하기 전에는 향신료를 먹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지금 인도네시아가 국가 이념의 뿌리로 그를 든다.

  • 팔라파 맹세
  • 자바에서 말라카까지
  • 지금 인도네시아 대학과 화폐에 이름이 남았다
단테예술1320 · 지옥을 라틴어가 아닌 말로 썼다
AD 1265 – AD 1321

정쟁에 밀려 피렌체에서 추방된 뒤 돌아가지 못했다. 학자만 읽는 라틴어 대신 토스카나 방언으로 써서, 그 말이 이탈리아어가 됐다.

  • 「신곡」 — 지옥·연옥·천국 100곡
  • 속어로 쓴 것이 국어를 만듦
  • 죽을 때까지 망명 — 유골은 라벤나에

그 무렵의 사건

1347
흑사병
3년 만에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노동력이 귀해지며 농노제가 흔들린다.
노동력이 귀해져 농노제가 흔들리고 임금이 올랐다. 중세 질서가 여기서 금이 간다.
1324
말리 제국의 전성기
14세기, 서아프리카의 말리 제국은 황금과 소금 무역으로 번영을 누리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손꼽히는 부유하고 강력한 제국으로 성장했다.
황제 만사 무사가 1324년 메카 순례길에 어마어마한 금을 뿌리듯 쓴 일화는 오늘날까지도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개인의 사례로 회자된다. 그가 지나간 카이로 등지에서는 이 대량의 금 유입으로 물가가 한동안 폭등했을 정도였다. 제국의 중심지 팀북투는 이슬람 학문의 중심지로도 이름을 떨쳐, 서아프리카 곳곳에서 학자와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이후 내부 계승 다툼과 외부 세력의 압박으로 15~16세기에 걸쳐 서서히 쇠퇴했다.
1350
아유타야
프랑스 사절이 파리만큼 크다고 적었다.
강 세 줄기가 만나는 섬에 세운 도시로 400년을 갔다. 중국·일본·페르시아·포르투갈 상인이 각자의 구역에 살았다. 1767년 미얀마의 침공으로 불타 사람들이 남쪽으로 내려가 방콕을 세운다.
1356
공민왕의 반원 개혁
고려 공민왕은 원나라의 간섭이 약해진 틈을 타 친원 세력을 몰아내고 빼앗겼던 영토를 되찾는 등 자주적인 개혁을 펼쳤다.
그는 원나라 연호 사용을 중단하고, 원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기철 등 친원 권문세족을 숙청했다. 원이 함경도 일대에 설치했던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공격해 100년 만에 그 땅을 되찾았고, 몽골식 풍습(변발·호복)도 금지했다. 신진 사대부를 등용해 권문세족을 견제하려 했으나, 개혁을 뒷받침하던 승려 신돈이 실각하고 공민왕 자신도 시해당하면서 개혁은 완결되지 못한 채 끝났다. 그럼에도 그의 개혁은 이후 신진 사대부가 성장해 조선 건국으로 이어지는 흐름의 중요한 발판이 됐다.
1356
한자동맹
뤼베크를 중심으로 북유럽 상업 도시들이 맺은 동맹. 발트해와 북해 무역을 200년간 지배했다.
청어·모피·밀랍·곡물을 실은 코그선이 노브고로드에서 런던까지 오갔다. 도시들은 공동 창고와 특권을 지켰고 필요하면 함대를 모아 덴마크 왕과 싸워 이겼다. 1356년 뤼베크에서 첫 총회가 열려 동맹이 제도로 자리 잡았다. 영토 국가가 커지고 대서양 무역이 열리면서 쇠퇴했으나, 오늘의 독일 항공사 이름에 그 자취가 남았다.
1300
짐바브웨의 번성과 쇠퇴
모르타르 없이 돌만 쌓아 사하라 이남 최대의 석조 도시를 세웠다.
쇼나족이 세운 도시로, 중국 도자기와 페르시아 유리구슬이 나올 만큼 먼 곳과 교역했다. 20세기 초 백인 식민 당국은 「아프리카인이 이런 걸 지었을 리 없다」며 페니키아인이나 아랍인의 것이라 주장했다 — 1929년 고고학자 캐턴톰프슨의 발굴로 완전한 아프리카 기원임이 확인됐다. 왜 1450년 무렵 버려졌는지는 아직도 논쟁 중이다 — 교역로가 해안으로 옮겨갔다는 설, 삼림 파괴와 지력 소진이라는 설, 소빙하기 가뭄이라는 설이 나란히 있다.

교역로 3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함피

지명 · 1336 · 탈리코타 전투 뒤 6개월간 조직적으로 파괴되다

비자야나가르의 도읍. 폐허가 남았다

인도 남부 데칸고원, 퉁가바드라강 유역의 바위 지대에 자리했다. 14세기 초 비자야나가르 제국이 이곳을 도읍으로 삼으며 크게 번성했다.

16세기 초에는 인구 수십만에 이르는 세계적인 대도시로, 남인도 최대 세력이자 이슬람 술탄국들에 맞서는 힌두 왕국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1565년 탈리코타 전투에서 데칸의 이슬람 술탄국 연합군에 크게 패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승리한 연합군은 이후 약 6개월에 걸쳐 도시를 체계적으로 약탈하고 파괴했다고 전한다 — 단발적 약탈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친 조직적 파괴였다는 점이 이 사건을 특히 참혹한 사례로 기억되게 한다.

이후 함피는 재건되지 못하고 완전히 버려졌으며, 지금은 파괴된 사원과 궁전 잔해가 넓은 유적지로 남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돼 있다.

지도에서 보기: 13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테노치티틀란 난징 시안 바르샤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