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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알렉산드로스가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죽자 부하 장군들이 제국을 나눠 가졌다. 셀레우코스·프톨레마이오스·안티고노스 왕조가 서로 싸우는 동안 서쪽에서 로마가 올라왔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1차전에서 잃은 것을 에스파냐에서 메우던 카르타고를 로마가 견제했다. 한니발이 로마 동맹시 사군툼을 치면서 터졌다.
결과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어 칸나이에서 로마군을 궤멸시켰지만, 스키피오가 본토를 쳐서 끝냈다.
한니발을 이탈리아에서 끌어내려 카르타고 본토를 쳤다. 자마에서 그를 꺾었다.
정장(亭長)이던 사내가 항우를 꺾고 400년 한 제국의 문을 열었다. 「사람을 쓸 줄 알았다」는 것이 스스로 꼽은 승인이었다.
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세상을 덮었으나, 마지막 전투에서 사면초가에 갇혔다. 비극적 영웅의 전형이 됐다.
부력을 알아내고 지렛대의 원리를 밝혔다. 시라쿠사 공성 때 만든 기계들이 로마 함대를 여러 번 막았다.
아홉 살에 로마를 미워하겠다고 맹세했다고 전한다. 15년간 이탈리아 안에서 싸우며 로마를 여러 번 궤멸시켰다.
흩어진 전국을 하나로 묶고 문자와 도량형을 통일했다. '황제'라는 말이 여기서 시작된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지명 · BC 202 · 한·수·당의 도읍. 실크로드의 동쪽 끝. 지금의 시안
【그때 그 자리】
관중 분지는 사방이 산과 관문으로 막혀 있고 안은 넓은 평야다. 밖에서 들어오려면 몇 개의 관문을 지나야 하고, 안에서는 먹고살 수 있다. 그래서 이 땅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말이 오래 있었다.
주가 여기서 일어났고 진의 함양이 여기 있었다. 기원전 202년 유방이 한을 세우며 함양 근처에 새 도성을 짓고 장안이라 했다. 길이 평안하다는 뜻이다.
【왜 그렇게 됐나】
한의 장안은 인구 25만 안팎으로 당대 세계에서 로마와 함께 가장 큰 도시였다. 무제 때 이곳에서 장건이 서역으로 떠났고, 그 길이 실크로드가 됐다. 장안이 그 동쪽 끝점이었다.
후한이 낙양으로 옮기고 위진남북조의 혼란기에 여러 번 파괴됐다.
【어떻게 흘렀나】
582년 수 문제가 옛 도시 남동쪽에 완전히 새로 지었다. 이것이 당의 장안이 된다.
설계가 놀랍다. 동서 9.7킬로미터, 남북 8.6킬로미터의 직사각형에 성벽을 두르고, 안을 바둑판처럼 나눴다. 남북으로 열한 개, 동서로 열네 개의 큰길이 나 있고, 그 사이가 108개의 방이라는 구역으로 나뉘었다. 각 방에 담과 문이 있어 밤이면 닫혔다. 통행금지를 알리는 북이 울렸다.
북쪽 한가운데 황궁이 있고 그 앞으로 폭 150미터의 주작대로가 남문까지 뻗었다. 도시 자체가 질서를 눈에 보이게 만든 구조물이었다.
인구가 100만을 넘었다. 그 가운데 외국인이 수만이었다. 페르시아인과 소그드인과 아랍인과 신라인과 일본인이 살았다. 서시에서는 서역 상인이 물건을 팔고 호선무를 추는 무희가 있었다. 조로아스터교 사원과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사원과 마니교 사원이 함께 있었다. 781년에 세워진 대진경교유행중국비가 지금도 남아 있다.
당의 과거에 급제한 신라 사람이 여럿이었다. 최치원이 그중 하나다.
【그래서】
755년 안사의 난으로 함락됐다. 이후 여러 차례 짓밟혔고 907년 당이 망하면서 도성의 지위를 잃었다. 이후 중국의 중심은 동쪽과 남쪽으로 옮겨간다.
【남은 것】
장안의 설계가 동아시아의 표준이 됐다. 발해의 상경용천부, 일본의 헤이조쿄와 헤이안쿄가 이 도시를 본떠 지어졌다. 지금 교토의 바둑판 거리가 그 흔적이다. 신라의 금성도 일부 영향을 받았다는 견해가 있다.
한국어에도 남았다. 서울을 뜻하던 옛말이 아니라, 번화한 곳을 이르는 말로 장안이 쓰인다. 장안의 화제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1,200년 전 다른 나라 수도의 이름이 지금 우리말 관용구에 살아 있다.
지금의 시안 시내에 대안탑과 성벽 일부가 남아 있다. 도시 규모는 당대의 6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