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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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유라시아 대부분이 한 왕조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역참으로 동서가 이어져 사람과 물자와 역병이 함께 흘렀다.
몽골과 강화한 뒤 원의 부마국이 됐다. 공민왕이 반원 개혁을 시도했지만 왕조는 이미 기울었다.
왜몽골 침입을 막고도 나눠 줄 땅이 없어 고케닌의 불만이 쌓여 있었다.
결과토벌하러 간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편을 바꾸면서 막부가 무너졌다. 호조 일족 800여 명이 집단 자결했고, 곧 남북조 60년의 분열이 이어진다.
왜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한 잉글랜드 왕과, 대륙에 남은 잉글랜드 영지를 거두려는 프랑스 왕이 부딪혔다. 플랑드르의 모직 이권도 걸려 있었다.
결과116년 만에 프랑스가 대륙에서 잉글랜드를 몰아냈다. 양국 모두 국민 의식이 생겨났다.
말리 제국의 왕으로 메카 순례에 수행원 6만과 금 실은 낙타 수백 마리를 데려갔다. 카이로에 금을 너무 많이 뿌려 그 지역 금값이 10년 넘게 회복되지 않았다.
메카 순례로 시작해 인도·중국·아프리카까지 돌았다. 마르코 폴로보다 세 배 멀리 갔다.
마자파힛의 재상으로 군도를 통일하기 전에는 향신료를 먹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지금 인도네시아가 국가 이념의 뿌리로 그를 든다.
정쟁에 밀려 피렌체에서 추방된 뒤 돌아가지 못했다. 학자만 읽는 라틴어 대신 토스카나 방언으로 써서, 그 말이 이탈리아어가 됐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지명 · 1336 · 탈리코타 전투 뒤 6개월간 조직적으로 파괴되다
비자야나가르의 도읍. 폐허가 남았다
인도 남부 데칸고원, 퉁가바드라강 유역의 바위 지대에 자리했다. 14세기 초 비자야나가르 제국이 이곳을 도읍으로 삼으며 크게 번성했다.
16세기 초에는 인구 수십만에 이르는 세계적인 대도시로, 남인도 최대 세력이자 이슬람 술탄국들에 맞서는 힌두 왕국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1565년 탈리코타 전투에서 데칸의 이슬람 술탄국 연합군에 크게 패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승리한 연합군은 이후 약 6개월에 걸쳐 도시를 체계적으로 약탈하고 파괴했다고 전한다 — 단발적 약탈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친 조직적 파괴였다는 점이 이 사건을 특히 참혹한 사례로 기억되게 한다.
이후 함피는 재건되지 못하고 완전히 버려졌으며, 지금은 파괴된 사원과 궁전 잔해가 넓은 유적지로 남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