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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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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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주요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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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청동기 제국들

히타이트·이집트 신왕국·바빌로니아가 사신과 군대를 주고받았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해당 없음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해당 없음

그 무렵의 사건

BC 1700
선형문자 A
아직 아무도 읽지 못하는 글.
미노아인이 쓴 문자로 점토판 1,400여 점이 남았다. 이를 빌려 쓴 미케네의 선형문자 B는 1952년 해독됐지만, 원본인 A는 지금까지 읽히지 않는다. 어떤 언어인지조차 모른다.
BC 1700
파버티 포인트
농사도 짓지 않으면서 거대한 흙둑을 쌓았다.
루이지애나에 반원 여섯 겹의 흙둑이 있다. 흙 75만 세제곱미터를 사람이 바구니로 날라 쌓았다. 사냥과 채집만으로 살던 사람들이 이런 것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건축에는 농경이 필요하다는 통념이 여기서도 깨진다.
BC 1750
인더스의 쇠퇴
도시를 비우고 사람들이 동쪽으로 갔다.
가가르-하크라 강의 수량이 줄면서 도시가 유지되지 않았다. 침략의 흔적은 없다 — 서서히 떠났다. 아리아인의 침입설은 오래 주장됐으나 지금은 기후와 하천 변화가 주된 설명이다.
BC 1650
힉소스의 지배
이집트가 처음으로 이민족 왕을 받았다.
「이방의 통치자들」이라는 뜻의 힉소스가 나일 삼각주를 차지했다. 침략이라기보다 오래 이주해 살던 아시아계가 권력을 잡은 쪽에 가깝다. 이들이 들여온 전차·복합궁·청동 무기가 100년 뒤 이집트 신왕국의 무기가 된다.

교역로

해당 없음

하투샤

지명 · BC 1700 · 불타기 전에 이미 비어 있던 수도

히타이트의 도읍. 불타고 비워졌다

아나톨리아 중부 산악 지대, 방어에 유리한 험한 지형에 자리 잡았다. BC 1700년 무렵부터 히타이트 왕국의 도읍으로 커졌다.

카데시 전투(BC 1274년 무렵)를 이끈 무와탈리 2세를 비롯해, 한때 이집트와 맞먹는 세력을 이 도시에서 지휘했다. 왕궁·신전·거대한 성벽과 사자문 등 유적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BC 1200년 무렵 「청동기 붕괴」로 불리는 동지중해 전역의 연쇄 몰락과 함께 히타이트 왕국도 무너졌다. 발굴 결과 도시가 불에 탄 흔적은 있지만, 정작 그 시점에는 귀중품이나 문서고 대부분이 이미 옮겨진 뒤였고 주민도 상당수 빠져나간 상태였다는 것이 최근 연구의 결론이다 — 외적의 급습이 아니라 왕실이 계획적으로 도읍을 포기한 뒤, 남은 빈 도시에 불이 났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붕괴 원인 자체도 단일하지 않다 — 「바다 민족」의 침입, 가뭄과 기근, 내부 반란 등이 겹쳤다는 것이 지금의 통설이며, 어느 하나만으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지도에서 보기: BC 20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미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