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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서쪽에는 프랑크·서고트·동고트 왕국이 들어섰고 동쪽 로마만 제국으로 남았다. 유스티니아누스가 옛 영토를 되찾으려 했지만 역병과 재정 파탄이 뒤따랐다.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해당 없음
소수점 일곱 자리의 원주율
열다섯에 작은 부족의 왕이 되어 갈리아를 통합했다. 다른 게르만 왕들이 아리우스파를 택할 때 홀로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스물셋에 쓴 책에서 지구가 자전한다고 했다. 원주율을 3.1416으로 계산했고, 일식과 월식이 그림자 때문임을 밝혔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인질로 자라 로마식 교육을 받았다. 이탈리아를 33년 다스리며 로마 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지명 · 482 · 키예프 루스의 도읍
드니프로강 유역, 동슬라브족의 교역로가 지나는 자리에 있다. 9세기 무렵부터 도시로 성장한 것으로 보이며, 스칸디나비아 출신 바랑기아인(루스)이 이 지역 슬라브족과 결합하며 세력을 키웠다는 것이 통설이다(다만 루스의 기원을 둘러싼 「노르만설」과 이를 반박하는 「슬라브 기원설」 사이의 논쟁은 지금도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988년 블라디미르 대공이 비잔티움 정교회를 받아들이며 국교로 삼았고, 이를 계기로 키예프는 동슬라브 세계의 정치·종교적 중심지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11~12세기를 거치며 여러 공국으로 분열돼 힘이 약해졌고, 1240년 몽골(킵차크 칸국)의 침입으로 크게 파괴됐다. 이후 정치적 중심은 모스크바 등 다른 도시로 옮겨 갔지만, 키예프는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 세 나라 모두가 자신들 역사의 기원으로 여기는 상징적 도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