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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히타이트·이집트 신왕국·바빌로니아가 사신과 군대를 주고받았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해당 없음
누비아로 네 번 원정해 제2폭포까지 밀고 요새를 여덟 개 지었다. 지방 호족의 권한을 회수해 중앙집권을 다졌고, 초상에 지친 표정을 그대로 새기게 했다.
해당 없음
지명 · BC 1900 · 미노아의 궁전
【그때 그 자리】
크레타섬은 에게해 남쪽에 있다. 그리스 본토와 이집트와 서아시아 사이에 놓여, 배가 오가는 길목이다.
기원전 2천 년기 초 여기서 유럽 최초의 문명이 일어났다. 발굴자 아서 에번스가 전설 속 왕 미노스의 이름을 따 미노아 문명이라 불렀다.
【왜 그렇게 됐나】
크노소스가 그 중심이다. 궁전 유적의 면적이 2만 제곱미터가 넘고 방이 1,300개가 넘는다.
구조가 복잡하다. 중앙 뜰을 두고 방과 복도와 계단이 여러 층으로 얽혀 있다. 이 복잡함이 미궁 전설의 바탕이 됐을 것으로 본다. 미노타우로스가 갇힌 라비린토스 이야기다. 라브리스는 미노아에서 신성하게 여긴 쌍날 도끼를 뜻하는데, 궁전 곳곳에 이 문양이 새겨져 있다.
기술이 앞섰다. 상하수도가 있고, 채광용 수직 통로로 아래층까지 빛과 바람이 들었다. 수세식에 가까운 변소가 있었다.
벽화가 밝다. 돌고래와 백합과 푸른 새, 그리고 황소를 뛰어넘는 젊은이들이 그려져 있다. 다른 고대 문명의 벽화가 대개 왕의 정복과 사냥을 그린 것과 대비된다.
성벽이 없다. 바다가 성벽 역할을 했다는 설명이 오래 통용됐다. 해군력으로 주변을 통제했다는 것이다.
여성이 자주 등장한다. 뱀을 든 여신상이 유명하고, 벽화에서 여성이 앞자리에 그려진 경우가 많다. 이를 근거로 여성의 지위가 높았거나 여신 중심의 종교였다는 해석이 있다. 다만 확정된 것은 아니다.
【어떻게 흘렀나】
글자가 두 가지 나왔다. 선문자 A와 선문자 B다.
선문자 B는 1952년 마이클 벤트리스가 해독했다. 놀랍게도 그리스어였다. 건축가였던 그는 암호 해독하듯 접근해 이를 밝혔다. 이로써 기원전 15세기 이후 크레타를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 세력이 지배했음이 드러났다.
선문자 A는 아직 해독되지 않았다. 미노아인 자신의 언어를 적은 것인데, 어떤 언어인지 모른다.
기원전 1600년대 무렵 북쪽 테라섬에서 거대한 화산 폭발이 있었다. 화산재와 쓰나미가 크레타를 덮쳤다. 이것이 미노아 쇠퇴의 원인이라는 설이 오래 통용됐으나, 폭발 시기와 붕괴 시기 사이에 간격이 있어 직접 원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타격을 입은 뒤 미케네가 들어왔다는 설명이 지금 우세하다.
기원전 1400년 무렵 궁전이 불탔다.
【그래서】
아서 에번스가 1900년부터 발굴했다. 그는 무너진 기둥과 벽을 콘크리트로 복원하고 벽화를 상상으로 채워 넣었다. 지금 관광객이 보는 붉은 기둥 상당수가 그의 복원이다.
이 복원은 지금 비판받는다. 근거가 부족한 부분이 많고, 원래 상태를 되돌릴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그린 미노아의 평화롭고 여성적인 이미지에도 20세기 초의 취향이 반영됐다는 지적이 있다.
【남은 것】
유럽 최초의 문명이 그리스 본토가 아니라 섬에서, 정복이 아니라 바다 무역으로 일어났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미노타우로스와 미궁,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의 이야기가 모두 이 섬을 배경으로 한다. 아테네가 크레타에 젊은이를 조공으로 바쳤다는 전설은, 한때 크레타가 에게해를 지배했던 기억의 흔적으로 읽힌다.
선문자 A가 해독되면 이 문명이 자기를 뭐라 불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미노아라는 이름은 3,500년 뒤 영국인이 붙인 것이다.
지도에서 보기: BC 20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