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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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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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주요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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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청동기 제국들

히타이트·이집트 신왕국·바빌로니아가 사신과 군대를 주고받았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해당 없음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1명

함무라비정치BC 1792 · 법을 돌에 새긴 왕
BC 1792 – BC 1750 재위

작은 도시 바빌론을 물려받아 40년에 걸쳐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했다. 정복보다 법과 운하로 더 오래 기억된다.

  • 282조 법전을 돌기둥에 새겨 공개
  • 「눈에는 눈」 — 복수의 상한을 정함
  • 운하를 파고 곡물 창고를 관리

그 무렵의 사건

BC 1792
함무라비 법전
왕이 아니라 글이 다스린다.
2.25m 검은 돌기둥에 282조를 새겨 광장에 세웠다. 누구나 읽을 수 있게 — 실제로는 대부분 문맹이었지만, 법이 왕의 기분 밖에 있다는 선언이었다. 신분에 따라 형벌이 다른 점에서 한계도 분명하다.
BC 1750
인더스의 쇠퇴
도시를 비우고 사람들이 동쪽으로 갔다.
가가르-하크라 강의 수량이 줄면서 도시가 유지되지 않았다. 침략의 흔적은 없다 — 서서히 떠났다. 아리아인의 침입설은 오래 주장됐으나 지금은 기후와 하천 변화가 주된 설명이다.

교역로

해당 없음

카데시

지명 · BC 1800 · 전차 수천 대가 부딪친 청동기의 결전

전차 5,000대가 부딪친 시리아의 성

시리아 오론테스강 유역, 이집트와 히타이트 두 강대국의 세력권이 맞닿는 자리였다. BC 1800년 무렵부터 요충지 도시로 기록에 등장한다.

BC 1274년(연대는 학설에 따라 몇 년씩 오간다) 이집트의 람세스 2세와 히타이트의 무와탈리 2세가 이 도시를 두고 크게 맞붙었다 — 「카데시 전투」다. 양측 전차 병력을 합쳐 5천~6천 대에 이르렀다는 추산이 있어, 인류사에서 가장 큰 전차전 중 하나로 꼽힌다.

람세스 2세는 이집트 신전 곳곳에 이 전투를 「위대한 승리」로 새겨 놓았지만, 히타이트 쪽 기록은 오히려 자신들의 승리로 적는다. 실제로는 이집트군이 기습을 받아 위기에 몰렸다가 간신히 버틴 무승부에 가까웠다는 것이 지금의 통설이다 — 승전 기록을 자국 입장에서 과장하는 것은 고대 왕조 비문에서 흔한 일이다.

이 전투가 도시 자체를 파괴하지는 않았지만, 이후 두 제국은 BC 1259년 인류 최초로 남은 형태의 평화조약(카데시 조약)을 맺었다. 조약 점토판 사본이 튀르키예 보아즈칼레(옛 하투샤)에서, 이집트 쪽 신전 부조가 카르나크에서 각각 확인돼 서로 대조할 수 있는 드문 사례다.

지도에서 보기: BC 20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