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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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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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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헬레니즘 왕국들

알렉산드로스가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죽자 부하 장군들이 제국을 나눠 가졌다. 셀레우코스·프톨레마이오스·안티고노스 왕조가 서로 싸우는 동안 서쪽에서 로마가 올라왔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1건

제2차 포에니 전쟁BC 218 – BC 201
로마 vs 카르타고 (한니발)

1차전에서 잃은 것을 에스파냐에서 메우던 카르타고를 로마가 견제했다. 한니발이 로마 동맹시 사군툼을 치면서 터졌다.

트라시메노 BC 217칸나이 BC 216메타우루스 BC 207자마 BC 202

결과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어 칸나이에서 로마군을 궤멸시켰지만, 스키피오가 본토를 쳐서 끝냈다.

17년 · 칸나이 하루에 로마군 5만이 죽었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6명

스키피오장군BC 202 · 로마 집정관
BC 236 – BC 183

한니발을 이탈리아에서 끌어내려 카르타고 본토를 쳤다. 자마에서 그를 꺾었다.

  • 에스파냐에서 카르타고를 몰아냄
  • 본토를 쳐 한니발을 불러들임
  • 자마에서 한니발을 꺾음
유방정치BC 202 · 농민 출신으로 한나라를 세운 고조
BC 256 – BC 195, 재위 BC 202 – BC 195

정장(亭長)이던 사내가 항우를 꺾고 400년 한 제국의 문을 열었다. 「사람을 쓸 줄 알았다」는 것이 스스로 꼽은 승인이었다.

  • 진 멸망 후 초한전쟁에서 항우 격파
  • 한(漢) 건국, 장안 도읍
  • 군국제로 봉건과 군현을 절충
항우장군BC 206 · 초한전쟁에서 진 서초패왕
BC 232 – BC 202

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세상을 덮었으나, 마지막 전투에서 사면초가에 갇혔다. 비극적 영웅의 전형이 됐다.

  • 거록 전투에서 진군 주력 격파
  • 함양 점령, 서초패왕 자칭
  • 해하 전투 패배 후 오강에서 자결
아르키메데스과학BC 212 · 목욕탕에서 뛰어나온 사람
BC 287 – BC 212

부력을 알아내고 지렛대의 원리를 밝혔다. 시라쿠사 공성 때 만든 기계들이 로마 함대를 여러 번 막았다.

  • 부력의 원리 — 「유레카」
  • 지렛대와 도르래 · 나선 양수기
  • 「내 원을 밟지 마라」 — 계산 중에 살해됨
한니발장군BC 216 · 코끼리로 알프스를 넘은 사람
BC 247 – BC 183

아홉 살에 로마를 미워하겠다고 맹세했다고 전한다. 15년간 이탈리아 안에서 싸우며 로마를 여러 번 궤멸시켰다.

  • 알프스 도하 — 코끼리 37마리와 함께
  • 칸나이 BC 216 — 포위섬멸의 교과서
  • 자마에서 패한 뒤 망명지에서 자결
진시황정치BC 221 · 최초의 황제
BC 259 – BC 210

흩어진 전국을 하나로 묶고 문자와 도량형을 통일했다. '황제'라는 말이 여기서 시작된다.

  • 전국을 통일해 최초의 황제가 됨 BC 221
  • 문자·도량형·화폐를 하나로
  • 만리장성 연결과 병마용

그 무렵의 사건

BC 194
위만조선 성립
연나라 출신 위만이 고조선 준왕에게 몸을 의탁했다가, 세력을 키워 준왕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됐다.
중국이 전국시대 혼란과 진·한 교체기의 격변을 겪던 시기, 연나라 사람 위만은 무리 천여 명을 이끌고 고조선으로 망명해 왔다. 준왕은 그를 믿고 서쪽 변경을 지키는 자리를 맡겼는데, 위만은 그 병력을 발판 삼아 도읍 왕검성을 기습해 준왕을 내쫓고 왕위를 차지했다(기원전 194년 무렵). 쫓겨난 준왕은 뱃길로 남쪽으로 내려가 한(韓)의 땅에 자리 잡았다고 전한다. 위만은 나라 이름을 그대로 「조선」이라 했지만, 그 이전 단군·기자 계통과는 다른 새 왕조라는 뜻에서 오늘날 역사학계는 이를 「위만조선」이라 구분해 부른다. 위만조선은 이후 손자 우거왕 대에 이르러 한 무제의 침공으로 멸망했다(기원전 108년).
BC 214
만리장성 연결
진시황이 흉노를 막으려 전국시대 각국의 장성을 이어 붙였다. 지금 남은 벽돌 장성은 대부분 명나라 것이다.
몽염 장군이 30만 병력과 죄수로 10년 동안 흙을 다져 쌓았다. 「맹강녀」 전설처럼 수많은 사람이 공사 중 죽었다. 한·북위·수를 거쳐 명나라가 몽골을 막으려 벽돌과 돌로 6천 km를 다시 세운 것이 오늘 관광객이 오르는 바다링이다. 달에서 보인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장성은 국경이라기보다 농경과 유목의 경계 그 자체였다.
BC 221
진의 중국 통일
시황제가 처음으로 중국을 하나로 묶었다.
군현제와 문자 통일이 이후 2천 년 중국의 틀이 됐다.
BC 146
카르타고와 코린토스
같은 해에 두 도시가 지워졌다.
로마가 카르타고를 불태우고 몇 달 뒤 코린토스도 파괴했다. 지중해 서쪽과 동쪽의 마지막 경쟁자가 함께 사라진 해로, 로마의 지중해 지배가 여기서 확정된다.
BC 138
장건의 서역행
한 사람이 길을 열어 실크로드가 됐다.
한 무제가 흉노를 협공할 동맹을 찾아 장건을 보냈다. 13년 만에 돌아온 그는 동맹은 못 구했지만 서역의 나라들을 보고했고, 그 정보가 실크로드 교역의 시작이 됐다.

교역로 1개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장안

지명 · BC 202 · 한·수·당의 도읍. 실크로드의 동쪽 끝. 지금의 시안

【그때 그 자리】

관중 분지는 사방이 산과 관문으로 막혀 있고 안은 넓은 평야다. 밖에서 들어오려면 몇 개의 관문을 지나야 하고, 안에서는 먹고살 수 있다. 그래서 이 땅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말이 오래 있었다.

주가 여기서 일어났고 진의 함양이 여기 있었다. 기원전 202년 유방이 한을 세우며 함양 근처에 새 도성을 짓고 장안이라 했다. 길이 평안하다는 뜻이다.

【왜 그렇게 됐나】

한의 장안은 인구 25만 안팎으로 당대 세계에서 로마와 함께 가장 큰 도시였다. 무제 때 이곳에서 장건이 서역으로 떠났고, 그 길이 실크로드가 됐다. 장안이 그 동쪽 끝점이었다.

후한이 낙양으로 옮기고 위진남북조의 혼란기에 여러 번 파괴됐다.

【어떻게 흘렀나】

582년 수 문제가 옛 도시 남동쪽에 완전히 새로 지었다. 이것이 당의 장안이 된다.

설계가 놀랍다. 동서 9.7킬로미터, 남북 8.6킬로미터의 직사각형에 성벽을 두르고, 안을 바둑판처럼 나눴다. 남북으로 열한 개, 동서로 열네 개의 큰길이 나 있고, 그 사이가 108개의 방이라는 구역으로 나뉘었다. 각 방에 담과 문이 있어 밤이면 닫혔다. 통행금지를 알리는 북이 울렸다.

북쪽 한가운데 황궁이 있고 그 앞으로 폭 150미터의 주작대로가 남문까지 뻗었다. 도시 자체가 질서를 눈에 보이게 만든 구조물이었다.

인구가 100만을 넘었다. 그 가운데 외국인이 수만이었다. 페르시아인과 소그드인과 아랍인과 신라인과 일본인이 살았다. 서시에서는 서역 상인이 물건을 팔고 호선무를 추는 무희가 있었다. 조로아스터교 사원과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사원과 마니교 사원이 함께 있었다. 781년에 세워진 대진경교유행중국비가 지금도 남아 있다.

당의 과거에 급제한 신라 사람이 여럿이었다. 최치원이 그중 하나다.

【그래서】

755년 안사의 난으로 함락됐다. 이후 여러 차례 짓밟혔고 907년 당이 망하면서 도성의 지위를 잃었다. 이후 중국의 중심은 동쪽과 남쪽으로 옮겨간다.

【남은 것】

장안의 설계가 동아시아의 표준이 됐다. 발해의 상경용천부, 일본의 헤이조쿄와 헤이안쿄가 이 도시를 본떠 지어졌다. 지금 교토의 바둑판 거리가 그 흔적이다. 신라의 금성도 일부 영향을 받았다는 견해가 있다.

한국어에도 남았다. 서울을 뜻하던 옛말이 아니라, 번화한 곳을 이르는 말로 장안이 쓰인다. 장안의 화제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1,200년 전 다른 나라 수도의 이름이 지금 우리말 관용구에 살아 있다.

지금의 시안 시내에 대안탑과 성벽 일부가 남아 있다. 도시 규모는 당대의 6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지도에서 보기: BC 3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서량 익주 하북 허창 형주 화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