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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바닷길을 열어 아메리카를 유럽 경제에 편입시켰다. 인쇄술이 종교개혁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들었다.
성리학을 국시로 삼은 새 왕조. 훈민정음과 측우기의 시대이자 사림과 훈구가 다투던 때다.
왜백년전쟁 패배로 귀족들이 프랑스 영지를 잃고 국내로 돌아왔다. 헨리 6세의 정신 질환이 권력 공백을 만들었다.
결과보즈워스에서 리처드 3세가 전사하고 튜더 왕조가 열렸다. 대귀족이 서로를 소모시킨 끝에 왕권이 오히려 강해졌다.
스물한 살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했다. 1123년 버틴 성벽이 그의 대포에 뚫렸다.
서로 죽이던 다섯 부족을 하나의 연맹으로 묶었다. 만장일치로 정하고 전쟁은 함께 결정한다는 규칙을 조개구슬 띠에 새겨 전했다. 글자 없이 헌법을 남긴 것이다.
백성이 쓸 문자를 만들었다. 측우기와 자격루, 농사직설도 이 시대다.
찬카족이 쳐들어왔을 때 아버지와 형은 달아났고 그는 남아 막았다. 그 뒤 90년 만에 에콰도르에서 칠레까지 4천 킬로미터를 아우르는 나라를 만들었다.
티무르의 손자인데 별을 봤다. 반지름 40미터 육분의로 항성 1,018개의 자리를 재고 1년의 길이를 365일 6시간 10분 8초로 계산했다. 오차가 1분 이내다.
어머니가 관기였다. 세종이 신분을 넘어 썼다. 스스로 시각을 알리는 물시계와 비의 양을 재는 그릇을 만들었다.
18년을 영의정으로 있었다. 양녕대군 폐위에 반대해 유배됐다가 세종이 다시 불렀다. 반대했던 사람을 쓴 것이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지명 · 1457 · 도쿠가와 막부의 도읍. 지금의 도쿄
【그때 그 자리】
16세기 말까지 에도는 습지에 자리 잡은 작은 성읍이었다. 일본의 중심은 교토와 오사카였다.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간토 지방으로 옮기라고 했다. 명목은 영지를 넓혀 주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그를 중앙에서 떼어 놓으려는 조치였다.
이에야스는 그 습지를 골랐다. 그리고 물길을 돌리고 매립해 도시를 만들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됐나】
1600년 세키가하라에서 이겨 1603년 쇼군이 됐다. 그는 수도를 교토로 옮기지 않았다.
천황은 교토에 두고 자기는 에도에 있었다. 권위와 권력을 공간적으로 분리한 것이다. 이 구조가 265년간 이어진다.
【어떻게 흘렀나】
에도가 커진 결정적인 제도가 참근교대다.
전국의 다이묘들에게 1년은 에도에, 1년은 자기 영지에 머물게 했다. 그리고 처자는 에도에 상시 거주하게 했다. 사실상 인질이다.
효과가 여러 겹이었다. 다이묘가 반란을 준비할 여유가 없어졌다. 오가는 비용이 막대해 재정이 소모됐다. 행렬이 지나는 길에 숙박업과 상업이 발달했다. 각지의 사람과 물자와 정보가 에도로 모였다.
18세기 초 에도 인구가 100만을 넘었다. 당시 런던이 60만, 파리가 50만이었다. 세계 최대 도시였다.
이만한 사람이 모여 살려면 문제가 생긴다. 상수도를 놓았다. 다마가와 상수는 43킬로미터를 끌어왔다. 분뇨는 근교 농가가 돈을 주고 사 갔다. 도시의 배설물이 농촌의 비료가 되고 그 농산물이 도시로 들어오는 순환이 만들어졌다. 같은 시기 유럽 도시가 오물을 거리에 버리던 것과 대비된다.
화재가 잦았다. 목조 건물이 빽빽해 큰불이 나면 도시가 통째로 탔다. 1657년 메이레키 대화재로 10만 명이 죽었다. 화재와 싸움은 에도의 꽃이라는 말이 생겼다.
상인 문화가 자랐다. 우키요에와 가부키와 하이쿠가 이 도시에서 나왔다. 대여 서점이 있어 서민이 책을 빌려 읽었다. 문해율이 남성 40퍼센트를 넘었다.
조선통신사가 열두 차례 왔다. 부산에서 에도까지 왕복 여덟 달에서 열 달이 걸렸다. 500명 안팎의 행렬이었다.
【그래서】
1853년 페리의 흑선이 에도만에 나타났다. 1868년 막부가 무너지고 천황이 교토에서 여기로 옮겨 왔다. 이름이 도쿄, 동쪽의 수도가 됐다.
【남은 것】
265년간 큰 전쟁이 없었다. 일본사에서 이만큼 긴 평화가 없었다. 이 기간에 인구가 늘고 상업이 발달하고 교육이 퍼졌다.
메이지 유신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던 바탕이 여기 있다는 평가가 많다. 문해율이 높고 상업 조직과 물류망이 이미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에도성은 지금 황궁이다. 도시의 물길과 도로 상당수가 그때 그은 선을 따른다. 인구 3,700만의 도쿄권이 습지를 메워 만든 도시 위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