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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히타이트·이집트 신왕국·바빌로니아가 사신과 군대를 주고받았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힉소스를 몰아낸 이집트가 국경을 시리아 밖으로 밀어내려 했다. 완충지대를 만들어 두 번 다시 침입당하지 않겠다는 발상이었다.
결과투트모세 3세가 17차례 원정해 이집트 최대 판도를 만들었다. 나중에는 두 나라가 공주를 주고받는 동맹으로 돌아섰다.
해당 없음
해당 없음
지명 · BC 1400 · 민주정이 시작된 도시
【그때 그 자리】
아티카 반도의 도시다. 아크로폴리스라는 바위 언덕이 한가운데 솟아 있어 방어에 유리했고, 은이 나는 라우리온 광산이 가까웠으며, 피레우스라는 좋은 항구가 있었다.
땅은 척박했다. 곡물이 부족해 흑해와 이집트에서 수입해야 했다. 대신 올리브와 포도가 잘 자랐다. 올리브유와 도자기를 팔고 곡물을 사 오는 구조였다.
먹고사는 것이 바다에 달려 있으니 해군이 필요했고, 해군에는 노 젓는 사람이 필요했다.
【왜 그렇게 됐나】
기원전 594년 솔론의 개혁으로 빚 때문에 노예가 되는 일이 금지됐다. 기원전 508년 클레이스테네스가 부족 편성을 혈연에서 지역으로 바꿔 귀족의 기반을 흩었다.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해전이 결정적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가 은광 수익으로 함대를 만들었고, 시민들이 도시를 비우고 배에 올랐다. 페르시아가 아테네를 불태웠지만 사람은 없었다.
이겼다. 그리고 노를 저은 하층 시민들이 발언권을 요구했다. 나라를 지킨 것이 자기들이었기 때문이다. 민주정이 이후 크게 확대된다.
【어떻게 흘렀나】
페리클레스 시대 50년이 절정이다.
델로스 동맹의 금고를 아테네로 옮기고 그 돈으로 파르테논을 지었다. 동맹이 제국이 된 것이다. 이 신전은 15년 만에 완성됐다. 기둥이 살짝 배부르게 깎여 있고 바닥이 미세하게 볼록하다. 사람의 눈에 곧게 보이도록 일부러 휘게 만든 것이다.
같은 시기에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가 비극을 썼다.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시민 수천 명이 함께 봤다. 연극이 시민 교육이자 정치 토론의 자리였다.
소크라테스가 광장에서 물었고,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가 역사를 썼으며, 히포크라테스가 의학을 신에게서 떼어냈다.
이 모든 것이 한 세대 안에 한 도시에서 일어났다. 인구는 25만 안팎이었고 그중 시민은 3만에서 4만이었다.
기원전 431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시작됐다. 역병으로 인구의 4분의 1이 죽고 페리클레스도 죽었다. 시칠리아 원정에서 함대를 잃고 기원전 404년 항복했다.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가 시민 배심 재판으로 사형됐다.
【그래서】
기원전 338년 마케도니아에 굴복하며 정치적 독립을 잃었다. 이후 로마 시대에는 학문 도시로 남아 로마 귀족 자제들이 유학을 왔다. 529년 유스티니아누스가 철학 학교들을 닫았다.
【남은 것】
민주주의라는 말이 여기서 왔다. 데모스와 크라토스, 민중의 힘이다.
다만 이 민주정은 성인 남성 자유민만의 것이었다. 여성과 노예와 외국인 거류민은 제외됐다. 노예 노동이 있었기에 시민이 하루 종일 정치에 쓸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 무너졌다. 아테네를 파멸시킨 결정들은 모두 시민이 투표로 정했다. 그래서 이후 2천 년 동안 민주정은 좋은 말이 아니었다. 이 말이 긍정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이후다.
파르테논은 오랫동안 온전했다. 1687년 오스만이 화약고로 쓰던 중 베네치아 포탄이 명중해 폭발했다. 19세기 초 엘긴 백작이 조각의 상당 부분을 뜯어 영국으로 가져갔다. 그리스가 지금도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지도에서 보기: BC 15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