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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도시와 문자가 나타났다. 관개 농업이 잉여를 만들고 신전과 왕궁이 그것을 관리했다.
빗살무늬토기와 간석기의 시대. 아직 국가라 부를 정치체가 없다.
해당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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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 BC 4200 · 엘람의 도읍, 몽골에 지워지다
엘람의 도읍
자그로스산맥 기슭, 카룬강과 케르하강 사이 기름진 평야에 자리 잡았다. BC 4200년 무렵부터 사람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고 본다 — 메소포타미아 저지대와 이란 고원을 잇는 길목이라 처음부터 교역이 오갔다.
엘람 문명의 중심 도읍으로 2천 년 넘게 이어졌다. 수메르·아카드와 번갈아 싸우고 조공을 주고받으며 컸다. BC 12세기 엘람 왕 슈트루크나훈테가 바빌론을 쳐서 함무라비 법전 석비를 전리품으로 이 도시에 가져다 놓았다 — 그 석비가 1901년 프랑스 발굴대에 의해 다시 이곳에서 발견됐다.
BC 6세기 아케메네스 페르시아가 엘람을 흡수하면서 수사는 제국의 네 도읍 중 하나가 됐다(나머지는 페르세폴리스·엑바타나·바빌론). 다리우스 1세가 왕궁을 크게 다시 지었고, 겨울마다 왕이 이곳에 머물렀다고 전한다 — 페르세폴리스가 의례용 수도였다면 수사는 실제 행정이 돌아가는 곳에 가까웠다는 것이 통설이다.
알렉산드로스가 BC 331년 이곳을 접수했고, 이후 셀레우코스·파르티아·사산 왕조를 거치며 지방 도시로 이어졌다. 이슬람 정복 이후에도 한동안 명맥을 이었다.
1218년 몽골군이 호라즘 원정 중 이 일대를 휩쓸며 도시가 크게 파괴됐다고 기록된다. 이미 오래전에 정치적 중심으로서의 위상은 잃은 뒤였지만, 이때를 도시가 사실상 끝난 시점으로 본다. 지금은 이란 슈시(Shush)라는 소읍이 그 자리에 남아 있고, 유적은 발굴로 드러난 언덕(텔) 형태로 남았다.
지도에서 보기: BC 30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