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지도에 표시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틀린 데나 빠진 데를 알려주시면 확인하고 고칩니다.
이 브라우저에만 저장됩니다. 서버로 아무것도 보내지 않습니다.
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도시와 문자가 나타났다. 관개 농업이 잉여를 만들고 신전과 왕궁이 그것을 관리했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우루크의 루갈자게시가 수메르를 통합하려 하자, 키시에서 일어난 사르곤이 먼저 그를 쳤다.
결과메소포타미아 전역이 처음으로 한 왕 아래 들어갔다. 사르곤은 5,400명을 상시 먹인다고 새겼는데, 기록에 남은 최초의 상비군이다.
해당 없음
해당 없음
지명 · BC 2300 · 유프라테스강가에 선 메소포타미아의 중심. 함무라비와 네부카드네자르의 도시다
【그때 그 자리】
유프라테스강 중류의 도시다. 처음에는 우루크나 우르 같은 오래된 도시에 비해 보잘것없었다.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가 여기를 근거로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했다. 282개 조항을 새긴 돌기둥을 광장에 세웠다. 이 도시가 처음 중심이 된 때다.
이후 히타이트와 아시리아에 차례로 짓밟혔다. 기원전 689년 아시리아의 센나케립은 도시를 헐고 운하 물을 끌어 덮어 버렸다.
【왜 그렇게 됐나】
기원전 626년 나보폴라사르가 아시리아에서 독립하고, 기원전 612년 메디아와 손잡고 니네베를 무너뜨렸다. 아시리아가 200년 넘게 공포로 다스린 서아시아가 무너진 것이다.
그 아들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43년을 다스리며 바빌론을 다시 지었다.
【어떻게 흘렀나】
도시가 사방 몇 킬로미터에 이르렀다. 이중 성벽이 둘러쌌고, 헤로도토스는 그 위로 사두마차가 지날 수 있었다고 적었다. 과장이 섞였겠지만 규모가 컸던 것은 발굴로 확인된다.
이슈타르 문이 유명하다. 푸른 유약 벽돌에 용과 황소를 부조로 붙였다. 지금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에 복원돼 있다.
공중정원은 고대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데, 바빌론에서 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니네베의 정원을 혼동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천문학이 여기서 크게 발전했다. 사제들이 밤하늘을 수백 년간 기록했다. 행성의 운행을 계산해 일식을 예측했다. 황도를 열둘로 나눈 것이 이들이고, 그것이 지금의 별자리와 점성술로 이어진다. 일주일이 7일인 것도 해와 달과 다섯 행성에서 왔다는 설명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기원전 586년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유대인 지배층을 끌고 왔다. 바빌론 유수다. 50년간 이어졌다.
이 사건이 유대교를 바꿨다. 성전이 없는 곳에서 신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라는 문제가 생겼고, 그 답으로 회당과 경전 중심의 신앙이 자리 잡았다. 구약성서의 상당 부분이 이 시기에 정리됐다. 나라를 잃고 오히려 종교가 단단해진 것이다.
【그래서】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가 거의 싸움 없이 들어왔다. 성직자들이 문을 열어 줬다는 기록이 있다. 마지막 왕 나보니두스가 마르두크 대신 다른 신을 앞세워 사제들의 반발을 샀기 때문이다.
키루스는 유대인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성전을 다시 짓게 했다. 그래서 구약이 그를 기름부음 받은 자라 부른다.
기원전 331년 알렉산드로스가 들어왔고 여기서 죽었다. 이후 셀레우코스가 새 도시를 세우면서 사람이 빠져나갔다.
【남은 것】
성경이 이 도시를 타락의 상징으로 그렸다. 바벨탑과 요한계시록의 큰 바빌론이 그것이다. 유수를 겪은 쪽의 기록이다.
그러나 남긴 것은 다르다. 60진법과 황도 12궁과 천문 관측 기록이 그리스로 갔고, 프톨레마이오스가 그 자료를 썼다.
1980년대 사담 후세인이 유적 위에 궁전을 짓고 벽돌에 자기 이름을 새겼다. 네부카드네자르를 잇는다는 뜻이었다. 2003년 이후 미군 기지가 유적 위에 세워져 추가 훼손이 있었다.
지도에서 보기: BC 30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