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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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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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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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세 개의 세계

라틴 유럽·비잔틴·이슬람이 지중해를 나눠 가졌다. 카롤루스의 제국은 곧 쪼개졌고 바이킹과 마자르가 유럽을 휘저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당이 무너지고 송이 섰다.

한반도

남북국시대

신라가 당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통일했고 북쪽에는 발해가 섰다. 신라 말 호족이 일어나며 후삼국으로 갈라진다.

전쟁 1건

안사의 난755 – 763
당 vs 안녹산·사사명

절도사가 변방 병력을 독점하면서 중앙보다 강해졌다. 양귀비 일족과의 갈등이 도화선이 됐다.

장안 함락 756낙양 공방

결과8년 만에 진압했지만 당은 회복하지 못했다. 인구 조사 인원이 5,300만에서 1,700만으로 줄었고, 이후 150년간 절도사가 사실상 독립한다.

8년 · 당의 등뼈가 부러졌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4명

압둘 라흐만 1세정치756 · 몰살을 피해 도망친 왕자
731 – 788

아바스가 우마이야 일족을 몰살할 때 혼자 살아 다섯 해를 도피해 이베리아에 닿았다. 거기서 코르도바에 나라를 세웠고 300년을 갔다.

  • 5년의 도피
  • 코르도바 후우마이야 건국
  • 코르도바 대모스크 착공
두보예술760 · 안사의 난의 고통을 시로 남긴 시성(詩聖)
712 – 770

「나라는 부서졌으나 산하는 남았다」— 이백이 하늘의 시인이라면 두보는 땅의 시인이었다.

  • 「춘망」「석호리」 등 사회시
  • 안사의 난 중 유랑과 성도 초당 생활
  • 율시의 완성자
이백예술750 · 술과 달의 시인
AD 701 – AD 762

관직에는 오래 붙어 있지 못하고 평생을 떠돌았다. 즉흥으로 지은 시 1,000여 편이 남았다.

  • 당시(唐詩)의 정점 — 「시선」이라 불림
  • 안사의 난에 휘말려 유배
  •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죽었다는 전설
카를 마르텔장군732 · 망치라 불린 사람
AD 688 – AD 741

궁재로서 왕보다 실권을 쥐었다. 투르에서 우마이야 기병을 보병 방진으로 막아냈다.

  • 투르-푸아티에 전투 732
  • 교회 재산으로 기병을 육성
  • 카롤루스 대제의 할아버지

그 무렵의 사건

800
카롤루스의 대관
교황이 프랑크 왕에게 황제관을 씌웠다. 서유럽이 로마의 후계를 자처하기 시작한다.
서유럽이 로마의 후계를 자처하기 시작했다. 교황과 황제의 오랜 다툼도 여기서 싹튼다.
800
절벽 위의 마을
푸에블로 사람들이 벼랑에 집을 지었다.
콜로라도의 절벽 아래 오목한 곳에 돌집을 층층이 올렸다. 사다리를 걷으면 아무도 못 들어온다. 13세기 말 큰 가뭄이 오자 사람들이 모두 떠났고, 후손이 오늘의 호피와 주니다.
700
스리위자야의 번성
땅이 아니라 바닷길을 지배해 부를 쌓은 나라였다.
수마트라 팔렘방을 중심으로 말라카 해협을 장악해 인도와 중국을 잇는 배들에게 통행세를 물렸다. 7세기 중국 승려 의정은 이곳에 승려 1천 명이 공부하는 불교 학문 중심지가 있다고 기록했다. 농사보다 무역에 기댄 「바다의 나라」였던 셈이다. 1025년 인도 남부의 촐라 왕조가 함대를 보내 왕도를 약탈했다 — 남아시아 해군력이 동남아시아까지 미친 드문 사례다. 이후 항구에 토사가 쌓이고 다른 항구들이 크며 서서히 저물었다.
698
발해 건국
고구려 유민과 말갈이 만주에 세운 나라. 스스로 고구려를 잇는다고 밝혔다.
고구려 유민이 만주에 세운 나라. 스스로 고구려를 잇는다고 밝혔다.
818
발해의 전성기(해동성국)
발해는 선왕 때에 이르러 옛 고구려와 부여의 영토 대부분을 아우르는 최대 영역을 이루며 전성기를 맞아, 중국으로부터 '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라는 뜻의 해동성국이라 불렸다.
발해는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세운 나라로, 스스로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식을 분명히 했다. 9세기 선왕 때에 이르러 만주 대부분과 연해주, 한반도 북부에 걸친 최대 영토를 확보하고 지방 행정 제도를 5경 15부 62주로 정비해 안정적인 통치 체제를 갖췄다. 당시 당나라를 비롯한 주변국들은 발해의 융성함을 인정해 '해동성국'이라 부르며 대등한 이웃 나라로 대우했다.

교역로 3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동래

지명 · 757 ·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고 답한 성

송상현이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고 답한 성

지금의 부산 동래구 일대에 자리한 조선 시대의 군사 요충지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757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동래」라는 이름이 붙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부산진성에 이어 일본군이 곧바로 이곳을 공격했다. 동래부사 송상현은 항복을 요구하며 「길을 내달라」는 일본 측에 「싸워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戰死易假道難)」고 답했다고 전한다.

성은 하루 만에 함락됐고 송상현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다 전사했다 — 임진왜란 초기 조선 관군의 저항 의지를 보여 주는 상징적 일화로 꼽힌다.

이후로도 동래는 왜관(일본과의 공식 교역 창구)이 설치되는 등 대일 관계의 최전선 역할을 조선 후기 내내 이어 갔다.

지도에서 보기: 7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상경용천부 바그다드 아틸 툴라 교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