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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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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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청동기의 붕괴

해양 민족의 이동과 함께 여러 왕국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1건

목야 전투BC 1046
주 vs 상

상 주왕의 폭정에 제후들이 등을 돌렸다. 주 무왕이 「하늘의 명」을 내세워 800 제후를 모았다.

목야 BC 1046

결과상의 병력이 훨씬 많았으나 전선의 노예병이 창을 거꾸로 돌렸다. 주왕은 스스로 불에 뛰어들었고, 천명 사상이 여기서 태어났다.

하루 만에 왕조가 바뀌었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해당 없음

그 무렵의 사건

BC 1046
목야 전투
천명이 옮겨간다는 논리가 태어났다.
주 무왕이 상 주왕을 쳤다. 주는 「하늘이 덕 없는 왕에게서 명을 거둬 갔다」는 천명 사상으로 왕조 교체를 정당화했고, 이 논리가 이후 3,000년 동아시아 정치의 문법이 된다.
BC 1050
페니키아 알파벳
서기관의 독점이 22자로 깨졌다.
쐐기문자는 수백 자, 상형문자도 수백 자였다. 페니키아인은 자음 22자로 줄였고, 상인이라면 며칠이면 배웠다. 그리스인이 여기에 모음을 더해 오늘날 우리가 쓰는 알파벳이 됐다.
BC 1000
다윗의 예루살렘
작은 산성 마을이 수도가 됐다.
다윗이 여부스족의 성을 빼앗아 도읍으로 삼았다. 남북 지파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지였다는 점이 선택의 이유로 꼽힌다. 3,000년 뒤에도 같은 이유로 다투는 땅이 됐다.
BC 1000
고조선이 모습을 드러내다
「삼국유사」는 단군의 건국을 BC 2333년으로 적었다. 고고학으로 실체가 잡히는 것은 비파형동검이 나오는 BC 10세기 무렵이다. 지도는 유물이 말하는 쪽을 따라 그렸다.
flag
BC 1000
노크 문화
사하라 이남에서 가장 이른 철.
나이지리아 중부에서 실물 크기에 가까운 테라코타 두상이 나온다. 눈이 삼각형이고 표정이 뚜렷하다. 같은 층에서 제철 유적이 나와, 이 지역이 청동을 건너뛰고 철로 갔음을 보여 준다.

교역로

해당 없음

낙양

지명 · BC 1046 · 불타고도 다시 선 중원의 도읍

주·후한·서진·북위의 도읍

황하 남쪽 지류인 뤄허(낙수) 유역, 중원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았다. BC 11세기 무렵 서주가 이곳에 「성주」를 세운 것을 시작으로, 이후 동주·후한·조위·서진·북위 등 여러 왕조가 도읍으로 삼았다 — 「구조고도(九朝古都)」라 불릴 만큼 도읍의 역사가 길다.

AD 190년 동탁이 낙양을 버리고 장안으로 천도하면서, 후한 황실의 궁궐과 민가를 불태우고 주민을 강제로 옮기게 했다고 「삼국지」·「후한서」는 전한다. 이 방화로 도시가 한동안 폐허가 됐다.

그러나 낙양은 이후로도 여러 차례 재건돼 도읍 기능을 되찾았다 — 조위와 서진이 다시 이곳에 도읍했고, 북위도 494년 이곳으로 천도했다. 정치적 중심으로서의 지위가 완전히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는 점이 낙양의 특징이다.

불교 최초 전래지로 알려진 백마사가 이곳에 있으며, 룽먼 석굴 등 인근의 불교 유적도 이 도시가 여러 왕조의 수도였던 시기에 만들어졌다.

지도에서 보기: BC 15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