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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흑사병 이후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지자 노동력이 귀해지고 농노제가 흔들렸다. 몽골 질서가 무너진 자리에 오스만과 명이 들어섰다.

한반도

조선 전기

성리학을 국시로 삼은 새 왕조. 훈민정음과 측우기의 시대이자 사림과 훈구가 다투던 때다.

전쟁 1건

백년전쟁1337 – 1453
잉글랜드 vs 프랑스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한 잉글랜드 왕과, 대륙에 남은 잉글랜드 영지를 거두려는 프랑스 왕이 부딪혔다. 플랑드르의 모직 이권도 걸려 있었다.

크레시 1346푸아티에 1356아쟁쿠르 1415오를레앙 1429카스티용 1453

결과116년 만에 프랑스가 대륙에서 잉글랜드를 몰아냈다. 양국 모두 국민 의식이 생겨났다.

116년 · 흑사병과 겹쳐 양국 인구가 크게 줄었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13명

얀 후스사상1415 · 루터보다 100년 앞선 사람
1372 무렵 – 1415

프라하에서 면벌부와 교회의 부를 비판했다. 안전을 보장받고 공의회에 갔다가 화형당했다. 그를 따르던 이들이 일어나 15년을 싸웠다.

  • 교회 비판 — 루터보다 102년 앞섬
  • 1415년 콘스탄츠에서 화형
  • 후스 전쟁 — 농민이 수레로 진을 쳐 기사단을 깼다
영락제정치1421 · 베이징 천도와 정화 원정을 명한 명의 3대 황제
1360 – 1424, 재위 1402 – 1424

조카의 제위를 빼앗고 자금성을 지었다. 정화의 대함대를 인도양으로 보내고 몽골 원정에 다섯 번 나섰다.

  • 정난의 변으로 즉위(1402)
  • 베이징 천도, 자금성 완공(1421)
  • 정화의 남해 원정, 「영락대전」 편찬
정화탐험1405 · 일곱 차례 인도양을 항해한 명의 환관 제독
1371 – 1433 무렵

콜럼버스보다 90년 앞서 수백 척의 대함대로 동아프리카까지 갔다. 그러나 명은 항해를 멈추고 배를 태웠다.

  • 남해 원정 7회(1405–1433)
  • 말라카·캘리컷·호르무즈·말린디 방문
  • 기린을 베이징에 데려옴
티무르장군1400 · 사마르칸트의 정복자
1336 – 1405

칭기즈 칸의 혈통이 아니어서 칸을 칭하지 못하고 사위라 했다. 35년을 정복만 했다. 1402년 오스만의 술탄을 사로잡아, 결과적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가 50년을 더 살았다.

  • 앙카라에서 오스만 술탄 생포
  • 사마르칸트를 세계의 중심으로
  • 5대손 바부르가 무굴을 세운다
잔 다르크장군1429 · 오를레앙의 처녀
1412 – 1431

열일곱에 군을 이끌고 오를레앙의 포위를 풀었다. 2년 뒤 화형당했다.

  • 오를레앙 포위를 풂 1429
  • 샤를 7세의 대관식을 성사
  • 루앙에서 화형
황희정치1431 · 조선의 재상
1363 – 1452

18년을 영의정으로 있었다. 양녕대군 폐위에 반대해 유배됐다가 세종이 다시 불렀다. 반대했던 사람을 쓴 것이다.

  • 영의정 18년
  • 세종의 치세를 실무로 떠받침
  •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
정도전사상1394 · 조선을 설계한 사람
1342 – 1398

이성계를 찾아가 새 나라를 함께 그렸다. 한양의 궁궐과 사대문 이름을 유교의 덕목에서 따 지었다. 왕이 아니라 재상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썼다.

  • 조선경국전 — 나라의 설계도
  • 한양 천도와 경복궁·사대문 작명
  • 재상 중심 정치론
  • 1398년 이방원에게 살해
이성계정치1392 · 조선 태조
1335 – 1408

위화도에서 회군해 고려를 대신할 왕조를 세웠다. 성리학을 국시로 삼았다.

  • 황산대첩으로 왜구 격퇴
  • 위화도 회군 1388
  • 조선 건국 1392
정몽주사상1392 · 고려를 지키려 한 사람
1337 – 1392

성리학을 세운 신진사대부이면서 고려를 고쳐 쓰자는 쪽에 섰다. 선죽교에서 죽었다. 고려는 석 달 뒤 끝났다.

  • 동방 이학의 조종으로 불림
  • 단심가 — 이 몸이 죽고 죽어
  • 1392년 선죽교에서 피살
장영실과학1434 · 관노 출신의 기술자
1390 무렵 – ?

어머니가 관기였다. 세종이 신분을 넘어 썼다. 스스로 시각을 알리는 물시계와 비의 양을 재는 그릇을 만들었다.

  • 자격루 — 스스로 치는 물시계
  • 측우기 — 세계 최초의 정량 강우 측정
  • 혼천의·앙부일구
  • 임금의 가마가 부서져 파직된 뒤 기록이 끊긴다
울루그 베그과학1437 · 천문대를 세운 정복자의 손자
1394 – 1449

티무르의 손자인데 별을 봤다. 반지름 40미터 육분의로 항성 1,018개의 자리를 재고 1년의 길이를 365일 6시간 10분 8초로 계산했다. 오차가 1분 이내다.

  • 사마르칸트 천문대
  • 항성 목록 1,018개
  • 종교 세력의 반발로 아들에게 살해
최영장군1388 · 고려의 마지막 기둥
1316 – 1388

왜구와 홍건적을 물리친 명장. 요동 정벌을 주장했으나 위화도에서 군대가 돌아오면서 처형됐다.

  •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 홍산에서 왜구 대파
  • 요동 정벌 주장, 위화도 회군으로 실각
파차쿠텍정치1438 · 세상을 뒤집는 자
1418 무렵 – 1471 무렵

찬카족이 쳐들어왔을 때 아버지와 형은 달아났고 그는 남아 막았다. 그 뒤 90년 만에 에콰도르에서 칠레까지 4천 킬로미터를 아우르는 나라를 만들었다.

  • 쿠스코를 다시 설계
  • 4만 킬로미터 도로망
  • 마추픽추를 지은 것으로 본다

그 무렵의 사건

1420
사마르칸트 천문대
1년의 길이를 1분 오차로 계산했다.
울루그 베그가 반지름 40미터의 육분의를 지어 별을 쟀다. 항성 1,018개의 자리를 담은 목록은 이후 200년간 가장 정확한 것이었다. 그가 살해된 뒤 천문대는 헐렸고 20세기에 땅속에서 다시 발견됐다.
1405
정화의 남해 원정
영락제의 명으로 환관 정화가 300척의 대함대를 이끌고 인도양으로 떠났다.
첫 항해에 2만 7천 명이 탔고 배 중에는 길이 100m가 넘는 보선도 있었다 —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아호는 그 10분의 1이었다. 참파·자바·말라카·실론·캘리컷을 거쳐 이후 항해는 호르무즈와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닿았고, 기린이 베이징에 왔다. 28년간 일곱 차례 뒤 명은 바다에서 물러났고 기록을 태웠다. 정복이 아닌 위세의 항해였다는 점이 유럽의 대항해와 다르다.
1398
왕자의 난
조선 건국 직후, 이방원(태종)은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거쳐 형제와 정도전 세력을 제거하고 왕위에 올랐다.
태조 이성계는 막내아들 방석을 세자로 삼았는데, 정도전이 재상 중심의 정치를 구상하며 이를 뒷받침했다. 개국 공신이면서도 후계에서 밀려난 다섯째 아들 이방원은 1398년 사병을 동원해 정도전과 세자 방석을 살해했다(1차 왕자의 난). 이 일로 태조는 실의에 빠져 둘째 아들 방과(정종)에게 왕위를 넘겼다. 이후 넷째 형 방간이 왕위를 노리고 이방원과 충돌하자, 이방원은 다시 이를 진압했다(1400년, 2차 왕자의 난). 결국 정종이 왕위를 물려주면서 이방원이 태종으로 즉위했고, 그는 곧이어 사병을 혁파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개혁을 밀어붙였다.
1392
조선 건국
이성계가 고려를 대신해 새 왕조를 세우고 성리학을 국시로 삼았다.
성리학이 국시가 되며 불교 중심의 고려 질서가 뒤집혔다.
1436
피렌체 르네상스
브루넬레스키의 돔이 완성됐다. 메디치의 돈과 고전의 재발견이 미술과 학문을 다시 태어나게 했다.
1436년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거대한 돔이 발판 없이 벽돌을 쌓는 새 공법으로 완성됐다. 같은 도시에서 마사초는 원근법으로 그렸고, 도나텔로는 천 년 만에 나체 청동상을 만들었으며, 브루니는 키케로를 본떠 시민의 삶을 찬미했다. 은행가 코시모 데 메디치는 플라톤 전집 번역과 도서관에 돈을 댔다. 보티첼리와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가 이 도시에서 자란다.
1388
위화도 회군
명나라 요동을 정벌하러 파견됐던 이성계는 압록강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려 개경으로 진격, 권력을 장악했다.
우왕과 최영은 명나라가 철령 이북 땅을 요구하자 이에 반발해 요동 정벌을 강행했다. 그러나 이성계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를 수 없다는 등 4가지 이유(4불가론)를 들어 정벌에 반대했음에도 출정 명령을 받아 군대를 이끌고 나섰다. 그는 압록강 하류의 위화도에 이르러 장마로 강물이 불어난 것을 구실 삼아 군대를 돌려 개경으로 진격했다(1388년). 이 군사 반란으로 최영을 제거하고 우왕을 폐위시킨 이성계는 고려의 실권을 완전히 장악했고, 4년 뒤 스스로 왕위에 올라 조선을 세웠다.

교역로 2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경상도

지명 · 1413 · 부산에 상륙한 일본군이 처음 지난 곳

한반도 동남부, 낙동강 유역을 아우르는 넓은 지역이다. 신라·가야의 옛 터전이며, 조선 시대 8도 중 하나로 편성됐다.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일본군은 부산진성·동래성을 시작으로 이 지역을 통해 상륙해 곧바로 북상했다 — 조선이 전쟁을 가장 먼저 맞닥뜨린 지역이다.

동시에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이 지역 남해안(한산도 등)에서 여러 차례 일본 수군을 격파해, 일본군의 서해 진출과 보급로를 크게 흔들었다 — 육상에서는 가장 먼저 뚫린 지역이었지만, 바다에서는 오히려 전쟁의 흐름을 바꾼 승전이 집중된 지역이기도 하다.

지도에서 보기: 14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전라도 함경도 베이징 오키나와 한양 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