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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유럽 대부분이 절대군주의 궁정 정치로 움직였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전쟁이 반복됐고, 그 아래 살롱과 백과전서에서 왕권을 의심하는 사상이 자랐다.
세도정치와 삼정 문란이 겹쳤다. 서양 선박이 연안에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문을 닫아걸었다.
왜발트해 패권을 쥔 스웨덴을 러시아·덴마크·폴란드가 함께 노렸다. 젊은 표트르에게는 바다로 나가는 항구가 절실했다.
결과러시아가 스웨덴을 꺾고 발트해의 강자가 됐다. 표트르 대제의 제국이 여기서 시작된다.
라이프치히 교회의 음악 감독으로 매주 칸타타를 썼다. 살아서는 오르간 연주자로 유명했고 죽은 뒤 백 년 만에 「음악의 아버지」가 됐다.
역사상 가장 많은 논문을 쓴 수학자
흩어진 아칸족 도시들을 쿠마시를 중심으로 통합했다.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황금 의자가 지금도 왕권의 상징이다.
직접 서유럽에서 조선술을 배워왔다. 늪지에 새 수도를 세우고 바다로 나갔다.
여자라는 이유로 유럽이 상속을 부정하자 헝가리 귀족 앞에 아기를 안고 나서 군대를 얻었다. 40년 동안 제국을 개혁했다.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유럽의 공산품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 유럽. 세 대륙이 하나의 경제로 묶였다.
나라의 멸망 · 1721 · 인구 200만이 발트해를 쥐었던 100년
칼 12세는 초반에 연전연승했으나 러시아 내륙 깊이 들어갔다가 폴타바에서 궤멸했다. 니스타드 조약으로 발트해 동안을 잃으며 북유럽의 패권이 러시아로 넘어갔다. 표트르 대제가 그 자리에 제국을 선포한다.
【그때 그 자리】 17세기 발트해는 스웨덴의 호수였다.
핀란드·에스토니아·라트비아·독일 북부 일부가 스웨덴 것이었다.
인구는 200만이 안 됐다. 프랑스의 10분의 1이다.
그런데 유럽의 강대국이었다.
【왜 그렇게 됐나】 구스타브 2세 아돌프가 만들었다.
1611년 열일곱에 즉위했다.
군을 뜯어고쳤다.
대포를 가볍게 만들었다. 「연대포」라 불린 3파운드 포는 사람 몇이 끌 수 있었다. 보병과 함께 움직였다.
대열을 얕게 폈다. 그전까지 열 줄 넘게 세우던 것을 여섯 줄로 줄였다. 화력이 넓게 퍼진다.
기병에게 총을 쏘고 물러나는 대신 검을 들고 돌격하게 했다.
그리고 징병제를 폈다. 교구별로 병력을 할당했다. 유럽에서 이른 사례다.
용병에 기대지 않는 국민군에 가까웠다.
1630년 30년 전쟁에 뛰어들었다.
1631년 브라이텐펠트에서 황제군을 깼다. 개신교 진영이 처음으로 크게 이긴 전투다.
「북방의 사자」라 불렸다.
1632년 뤼첸에서 전사했다.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적진에 들어갔다.
【어떻게 흘렀나】 그래도 제국은 유지됐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독일 북부에 영토를 얻었다.
구리와 철이 있었다. 유럽 구리의 상당 부분이 스웨덴에서 나왔다.
팔룬 광산이 국가 재정의 큰 부분을 댔다.
그런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인구가 적었다. 전쟁을 계속하려면 사람이 모자랐다.
그리고 주변이 다 적이었다. 덴마크·폴란드·러시아·프로이센이다.
【그래서】 1700년 대북방전쟁이 났다.
러시아·덴마크·폴란드가 동시에 쳤다.
열여덟 살 카를 12세가 초반에 압도했다.
나르바에서 4만을 8천으로 깼다.
그런데 폴란드에서 6년을 보냈다.
그사이 표트르가 군대를 다시 만들었다.
1708년 러시아로 들어갔다가 겨울에 갇혔다. 300년 만의 혹한이었다.
1709년 폴타바에서 궤멸했다.
1721년 니스타드 조약으로 발트 연안을 거의 다 잃었다.
【남은 것】 스웨덴이 강대국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올라가려 하지 않았다.
1814년 이후 200년 넘게 전쟁을 하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평화를 유지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중립을 국시로 삼았다.
2024년 나토에 가입하며 그 정책이 바뀌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다.
카를 12세는 1718년 노르웨이 원정 중 참호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적의 탄인지 자기편의 암살인지 지금도 논쟁이다. 유해를 여러 번 발굴해 조사했다.
볼테르가 그의 전기를 썼다. 재능과 용기를 낭비한 사례로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