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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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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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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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전제군주정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제국을 넷으로 나눠 통치했고 콘스탄티누스가 다시 합쳤다. 수도가 동쪽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겨가고, 박해받던 기독교가 국교가 되어간다.

한반도

삼국의 각축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전쟁 2건

팔왕의 난과 영가의 난291 – 316
서진 황족 vs 흉노·갈

황후 가씨의 전횡에서 시작해 사마씨 황족 여덟이 서로를 쳤다. 각자 이민족 기병을 용병으로 끌어들인 것이 화근이었다.

낙양 함락 311장안 함락 316

결과황제 둘이 잇달아 포로가 되어 살해됐다. 화북이 130년간 오호십육국의 혼란에 들어갔고, 귀족들은 강남으로 피난해 동진을 세웠다.

25년 · 화북 상실
콘스탄티누스의 내전306 – 324
콘스탄티누스 vs 막센티우스·리키니우스

사두정치가 후계 문제로 무너지자 여섯 명이 황제를 자칭했다.

밀비우스 다리 312크리소폴리스 324

결과밀비우스 다리에서 이긴 뒤 기독교를 공인했고, 최종 승리로 제국을 다시 한 사람 아래 두었다. 수도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겨 제국의 무게중심을 동쪽으로 옮겼다.

18년 · 기독교 공인과 천도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2명

콘스탄티누스정치313 · 로마 황제
272 – 337

기독교를 공인하고 수도를 동쪽으로 옮겼다. 제국의 무게 중심이 바뀌었다.

  •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 공인
  • 니케아 공의회 소집
  • 콘스탄티노폴리스 건설
에자나정치330 · 악숨을 기독교 나라로 만든 왕
320 무렵 – 360 무렵

로마와 페르시아와 함께 당대 4대 강국으로 꼽히던 나라다. 홍해 무역을 쥐었고, 로마보다 앞서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축에 든다.

  • 기독교 공인
  • 자체 화폐를 찍은 아프리카 최초의 나라
  • 오벨리스크 — 한 덩이 돌로 24미터

그 무렵의 사건

313
밀라노 칙령
기독교가 공인됐다. 박해받던 종교가 제국의 종교가 된다.
박해받던 종교가 공인됐고, 80년 뒤 국교가 된다.
325
니케아 공의회
콘스탄티누스가 소집한 첫 세계 공의회. 예수가 신과 「동일 본질」이라는 신조가 정해졌다.
아리우스는 아들이 아버지보다 낮다고 했고 알렉산드리아 주교들은 반대했다. 황제는 제국의 통일을 위해 300여 명의 주교를 니케아에 모아 결론을 강요했다. 여기서 나온 니케아 신조는 지금도 대부분의 교회가 외우고, 부활절 날짜도 이때 정해졌다. 종교 문제를 황제가 결정하는 선례가 함께 생겼다.
330
콘스탄티노폴리스
제국의 중심이 동쪽으로 옮겨갔다. 이 도시는 1123년을 더 버틴다.
제국의 무게 중심이 동쪽으로 옮겨갔다. 이 도시는 1,123년을 더 버틴다.
300
바누아투의 사람들
한 섬에 100개가 넘는 말이 있다.
작은 섬무리에 서로 통하지 않는 언어가 100가지 넘게 산다. 인구 대비 세계에서 가장 언어가 많은 곳이다. 산과 바다가 마을을 갈라놓았고, 각 마을이 오래 따로 살았다는 뜻이다. 로이 마타의 무덤에는 마흔 명이 함께 묻혀 있었다.
300
야마토 정권
3세기 후반부터 7세기까지, 오늘날 나라·오사카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야마토 정권이 일본 열도의 여러 지역 세력을 통합하며 고대 일본 국가의 기틀을 놓았다.
이 시기 곳곳에 거대한 열쇠구멍 모양의 무덤('전방후원분')이 세워졌는데, 그 규모는 지배자의 권력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보여준다. 야마토 정권은 한반도의 백제·가야 등과 활발히 교류하며 유교·불교와 한자, 여러 선진 기술을 받아들였다. 6~7세기에는 쇼토쿠 태자가 불교를 진흥하고 중국식 관료제 요소를 도입하는 등 국가 체제를 정비했으며, 이후 다이카 개신(645년)을 거치며 천황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 고대국가 체제로 발전해 나갔다.
372
고구려 불교 수용
소수림왕이 불교를 받아들이고 태학을 세웠다.
왕권 강화의 이념이 들어왔다. 백제·신라가 뒤이어 받아들인다.

교역로 4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서진

나라의 멸망 · 316 · 황제가 포로가 되어 잔치 시중을 들었다

팔왕의 난으로 황족끼리 20년을 싸우며 군사력을 소진했다. 그 틈에 이주해 살던 흉노가 봉기해 낙양과 장안을 차례로 함락했다 — 영가의 난. 회제와 민제가 잇따라 끌려가 굴욕을 당하고 살해됐고, 화북은 130년의 혼란으로 들어갔다.

【그때 그 자리】

220년 후한이 끝나고 위·촉·오가 갈렸다. 위가 가장 컸다.

그런데 위의 실권이 사마씨에게 넘어갔다. 사마의가 249년 정변으로 조씨 종실을 눌렀고, 아들 사마사와 사마소가 이었다. 263년 촉을 멸망시켰다.

265년 사마염이 위 황제에게 자리를 넘겨받아 진을 세웠다. 조비가 헌제에게 한 것과 같은 방식이다.

280년 오를 멸망시켜 60년 만에 중국을 통일했다.

【왜 그렇게 됐나】

통일은 했는데 그 뒤가 문제였다.

사마염은 위가 종실을 약하게 두었다가 신하에게 나라를 빼앗겼다고 봤다. 그래서 자기 일족 27명을 왕으로 봉하고 군사권을 줬다.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한 조치가 정반대의 재앙을 불렀다.

또 하나의 문제가 후계였다. 태자 사마충은 지적 장애가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백성이 굶는다는 보고에 왜 고기죽을 먹지 않느냐고 물었다는 일화가 사서에 실려 있다.

【어떻게 흘렀나】

290년 사마염이 죽고 사마충이 즉위했다. 황후 가남풍이 실권을 쥐었다.

291년부터 팔왕의 난이 시작됐다. 여덟 명의 종실 왕이 16년간 서로 죽였다. 각자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내전에서 왕들이 이민족 용병을 끌어들였다. 흉노와 선비와 갈과 저와 강이다. 후한 이후 이들이 이미 중국 북부에 대거 이주해 살고 있었다.

싸움이 끝났을 때 중국의 정규군은 사라지고 이민족 군대만 남아 있었다.

311년 흉노 유총의 군대가 낙양을 함락하고 황제를 붙잡았다. 영가의 난이다. 316년 장안도 무너지고 서진이 끝났다.

【그래서】

황족 사마예가 강남으로 피해 317년 건강에서 동진을 세웠다. 북쪽은 이후 130년간 여러 이민족 왕조가 명멸하는 5호16국 시대가 된다.

이때 북쪽의 귀족과 백성 수백만이 남쪽으로 내려갔다. 중국사 최초의 대규모 남천이다.

이 이동이 강남을 바꿨다. 그전까지 미개척지에 가깝던 양쯔강 이남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이후 중국 경제의 무게중심이 서서히 남쪽으로 옮겨가는 출발점이 여기다.

【남은 것】

서진의 통일은 37년이었다. 그중 안정된 기간은 10년 남짓이다.

이 시기 지식인들은 정치에서 물러나 청담에 빠졌다. 죽림칠현이 그들이다. 세상 이야기를 하면 목숨이 위태로우니 노장과 술과 음악으로 갔다. 도피로 보는 시각과, 그 자체가 저항이었다는 시각이 함께 있다.

고구려에게도 이 혼란이 기회이자 위기였다. 313년 낙랑군을 몰아낸 것은 서진이 무너진 틈을 탄 것이다. 그러나 342년에는 전연에 수도가 함락됐다.

통일을 이룬 왕조가 어떻게 가장 빨리 무너지는가를 보여주는 예로 인용된다. 앞 왕조의 실패를 피하려던 조치가 새로운 실패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지도에서 보기: 3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쿠시 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