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궐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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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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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이슬람의 등장

아라비아에서 일어난 새 종교가 100년 만에 이베리아부터 인더스까지를 하나의 정치권으로 묶었다. 사산조는 사라지고 동로마는 영토의 절반을 잃었다.

한반도

남북국시대

신라가 당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통일했고 북쪽에는 발해가 섰다. 신라 말 호족이 일어나며 후삼국으로 갈라진다.

전쟁

해당 없음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4명

이백예술750 · 술과 달의 시인
AD 701 – AD 762

관직에는 오래 붙어 있지 못하고 평생을 떠돌았다. 즉흥으로 지은 시 1,000여 편이 남았다.

  • 당시(唐詩)의 정점 — 「시선」이라 불림
  • 안사의 난에 휘말려 유배
  •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죽었다는 전설
카를 마르텔장군732 · 망치라 불린 사람
AD 688 – AD 741

궁재로서 왕보다 실권을 쥐었다. 투르에서 우마이야 기병을 보병 방진으로 막아냈다.

  • 투르-푸아티에 전투 732
  • 교회 재산으로 기병을 육성
  • 카롤루스 대제의 할아버지
압둘 라흐만 1세정치756 · 몰살을 피해 도망친 왕자
731 – 788

아바스가 우마이야 일족을 몰살할 때 혼자 살아 다섯 해를 도피해 이베리아에 닿았다. 거기서 코르도바에 나라를 세웠고 300년을 갔다.

  • 5년의 도피
  • 코르도바 후우마이야 건국
  • 코르도바 대모스크 착공
두보예술760 · 안사의 난의 고통을 시로 남긴 시성(詩聖)
712 – 770

「나라는 부서졌으나 산하는 남았다」— 이백이 하늘의 시인이라면 두보는 땅의 시인이었다.

  • 「춘망」「석호리」 등 사회시
  • 안사의 난 중 유랑과 성도 초당 생활
  • 율시의 완성자

그 무렵의 사건

700
스리위자야의 번성
땅이 아니라 바닷길을 지배해 부를 쌓은 나라였다.
수마트라 팔렘방을 중심으로 말라카 해협을 장악해 인도와 중국을 잇는 배들에게 통행세를 물렸다. 7세기 중국 승려 의정은 이곳에 승려 1천 명이 공부하는 불교 학문 중심지가 있다고 기록했다. 농사보다 무역에 기댄 「바다의 나라」였던 셈이다. 1025년 인도 남부의 촐라 왕조가 함대를 보내 왕도를 약탈했다 — 남아시아 해군력이 동남아시아까지 미친 드문 사례다. 이후 항구에 토사가 쌓이고 다른 항구들이 크며 서서히 저물었다.
698
발해 건국
고구려 유민과 말갈이 만주에 세운 나라. 스스로 고구려를 잇는다고 밝혔다.
고구려 유민이 만주에 세운 나라. 스스로 고구려를 잇는다고 밝혔다.
800
카롤루스의 대관
교황이 프랑크 왕에게 황제관을 씌웠다. 서유럽이 로마의 후계를 자처하기 시작한다.
서유럽이 로마의 후계를 자처하기 시작했다. 교황과 황제의 오랜 다툼도 여기서 싹튼다.
800
절벽 위의 마을
푸에블로 사람들이 벼랑에 집을 지었다.
콜로라도의 절벽 아래 오목한 곳에 돌집을 층층이 올렸다. 사다리를 걷으면 아무도 못 들어온다. 13세기 말 큰 가뭄이 오자 사람들이 모두 떠났고, 후손이 오늘의 호피와 주니다.
682
신문왕의 왕권 강화
삼국통일 직후 즉위한 신라 신문왕은 반란을 진압해 진골 귀족 세력을 억누르고, 국학을 세워 왕권 중심의 통치 체제를 확립했다.
신문왕은 즉위 직후 장인이자 유력 진골 귀족이던 김흠돌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한 것을 계기로, 이에 연루된 귀족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했다. 귀족에게 지급하던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지급해 귀족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시켰으며, 유교 경전을 가르치는 국립 교육기관 국학을 세워 왕에게 충성하는 관료를 길러냈다. 지방을 9주 5소경 체제로 정비해 넓어진 영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릴 기반도 마련했다.
676
신라의 삼국통일
당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확보했다. 한반도가 처음으로 하나의 정치권이 됐다.
한반도가 처음으로 하나의 정치권이 됐다. 다만 고구려 땅 대부분을 잃었다.

교역로 3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돌궐 제국

나라의 멸망 · 744 · 글자를 남긴 유목 국가

동서로 갈라진 뒤 부흥했다가 다시 무너졌다. 위구르·카를루크·바스밀 연합이 마지막 카간을 죽이며 끝났다. 오르혼 비문은 튀르크어로 남은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중국의 비단과 말에 속지 말라」는 경고를 새겨놓았다.

【그때 그 자리】 552년 부민 카간이 유연을 무너뜨리고 세웠다.

몽골 초원에서 카스피해까지 뻗었다.

「돌궐」은 「튀르크」의 한자 표기다.

【왜 그렇게 됐나】 583년 동서로 갈렸다.

수가 이간했다. 「원교근공」과 함께 유목민을 다루는 기본 방식이다.

형제와 숙질 사이에 자리를 두고 다투게 만들었다.

동돌궐이 630년 당에게 항복했다.

힐리 카간이 사로잡혀 장안으로 끌려갔다.

당 태종이 「천가한(텡그리 카간)」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초원의 군주를 겸한다는 뜻이다.

50년 동안 당의 지배 아래 있었다.

【어떻게 흘렀나】 682년 다시 일어섰다.

쿠틀룩이 부족을 모아 독립했다. 제2돌궐 제국이다.

그 시기에 비석이 세워졌다.

「오르혼 비문」이다. 몽골 오르혼강 유역에 있다.

빌게 카간과 그 동생 퀼 테긴을 기려 732년과 735년에 세웠다.

돌궐 문자로 새겼다. 룬 문자와 모양이 비슷해 「튀르크 룬 문자」라 부른다.

튀르크계 언어로 된 가장 오래된 문헌이다.

1893년 덴마크 학자 톰센이 해독했다.

【그래서】 그 내용이 특별하다.

유목 국가가 스스로 남긴 기록이다.

대개 유목민에 대해서는 정주 문명의 기록만 남는다. 이것은 반대다.

그리고 자기 반성을 적었다.

「튀르크 벡들이여, 백성들이여, 들으라. (…) 중국인의 달콤한 말과 부드러운 비단에 속아 너희가 많이 죽었다.」

「그들의 달콤한 말과 부드러운 비단에 속은 튀르크 백성들아, 너희가 많이 죽었다.」

「가까이 살면 나쁜 지식을 준다. 좋은 땅에 살라고 하지 않는다.」

왜 나라가 무너졌는지를 자기 말로 설명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백성을 먹였다」는 표현이 반복된다. 유목 군주의 정당성이 무엇이었는지 보여 준다.

【남은 것】 744년 위구르가 돌궐을 무너뜨렸다.

그런데 「돌궐」이라는 이름은 남았다.

튀르크계 사람들이 서쪽으로 이동한다.

셀주크가 되고, 오스만이 되고, 지금의 튀르키예가 된다.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도 그 계통이다.

「튀르크」라는 말이 지금 2억 명 가까이가 쓰는 언어 계통의 이름이다.

오르혼 비문이 그 시작점에 서 있다.

튀르키예에서 그 비문을 국가 정체성의 뿌리로 삼는다. 앙카라에 복제품이 서 있다.

지도에서 보기: 7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우마이야 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