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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서쪽에는 프랑크·서고트·동고트 왕국이 들어섰고 동쪽 로마만 제국으로 남았다. 유스티니아누스가 옛 영토를 되찾으려 했지만 역병과 재정 파탄이 뒤따랐다.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왜유스티니아누스는 제국을 옛 경계로 되돌리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반달·동고트 왕국의 내분이 개입의 빌미가 됐다.
결과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를 되찾았지만 20년 전쟁과 역병으로 국력만 소진했다.
로마법을 집대성하고 하기아 소피아를 세웠다. 옛 영토를 되찾으려다 국력을 소진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나라의 멸망 · 550 · 황금기가 끝난 방식
인도의 고전기를 만든 제국이 알촌 훈족의 연속된 침입에 무너졌다. 침입 자체보다 이를 막느라 쏟아부은 군비가 재정을 파괴했고, 봉신들이 하나씩 독립했다. 0과 십진법, 「샤쿤탈라」가 이 시대의 유산이다.
【그때 그 자리】 AD 320년 무렵 찬드라굽타 1세가 세웠다.
마우리아가 무너진 뒤 500년 만에 북인도가 다시 하나로 묶였다.
「인도의 황금기」라 불린다.
칼리다사의 문학, 아리아바타의 천문, 십진법과 0이 이 시기에 자리 잡았다.
【왜 그렇게 됐나】 다스리는 방식이 마우리아와 달랐다.
마우리아는 중앙집권이었다. 총독을 보내 직접 다스렸다.
굽타는 느슨했다.
정복한 지역의 왕을 그대로 두고 조공을 받았다. 「사만타」라 부르는 봉신 체제다.
혼인으로 묶었다.
행정 비용이 적게 든다. 대신 중앙이 약해지면 곧바로 갈라진다.
그리고 관리에게 봉급 대신 토지를 주기 시작했다.
그 땅이 대를 이어 사유화됐다. 세금이 중앙으로 오지 않게 됐다.
인도 봉건제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어떻게 흘렀나】 5세기 중엽 에프탈이 왔다.
「백훈」이라 불린다. 중앙아시아에서 온 유목 세력이다.
스칸다굽타가 한 번 막아 냈다.
비문에 「대지가 흔들렸다」고 적혀 있다.
막아 내는 데 국고를 다 썼다.
그 시기 화폐를 보면 알 수 있다. 금화의 금 함량이 계속 떨어진다.
6세기 초 에프탈이 다시 와서 서북 인도를 차지했다.
봉신들이 하나씩 독립했다.
550년 무렵 제국이 사실상 끝났다.
【그래서】 에프탈도 곧 무너졌다.
사산조와 돌궐이 협공해 없앴다.
그런데 굽타는 회복되지 않았다.
7세기에 하르샤가 잠시 북인도를 통합했으나 그의 대에 끝났다.
그 뒤 인도가 여러 왕국으로 갈린다. 라지푸트·팔라·프라티하라·라슈트라쿠타다.
500년 뒤 이슬람 세력이 들어올 때 그렇게 갈려 있었다.
【남은 것】 「황금기」라는 말에 조심할 데가 있다.
카스트가 이 시기에 오히려 굳어졌다.
유전자 연구에서 집단 간 혼인이 AD 1세기 무렵부터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지위도 앞선 시대보다 내려갔다는 연구가 있다.
조혼과 사티(과부 순사)에 관한 이른 기록이 이 무렵부터 나온다.
남은 것 가운데 가장 오래 간 것은 숫자다.
십진법 자릿값 체계와 0이 아랍을 거쳐 유럽으로 갔다.
델리의 철기둥이 이 시대의 것이다. 1,600년을 밖에 서 있는데 녹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