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지도에 표시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틀린 데나 빠진 데를 알려주시면 확인하고 고칩니다.
이 브라우저에만 저장됩니다. 서버로 아무것도 보내지 않습니다.
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유라시아 대부분이 한 왕조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역참으로 동서가 이어져 사람과 물자와 역병이 함께 흘렀다.
몽골과 강화한 뒤 원의 부마국이 됐다. 공민왕이 반원 개혁을 시도했지만 왕조는 이미 기울었다.
왜몽골 침입을 막고도 나눠 줄 땅이 없어 고케닌의 불만이 쌓여 있었다.
결과토벌하러 간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편을 바꾸면서 막부가 무너졌다. 호조 일족 800여 명이 집단 자결했고, 곧 남북조 60년의 분열이 이어진다.
말리 제국의 왕으로 메카 순례에 수행원 6만과 금 실은 낙타 수백 마리를 데려갔다. 카이로에 금을 너무 많이 뿌려 그 지역 금값이 10년 넘게 회복되지 않았다.
정쟁에 밀려 피렌체에서 추방된 뒤 돌아가지 못했다. 학자만 읽는 라틴어 대신 토스카나 방언으로 써서, 그 말이 이탈리아어가 됐다.
메카 순례로 시작해 인도·중국·아프리카까지 돌았다. 마르코 폴로보다 세 배 멀리 갔다.
마자파힛의 재상으로 군도를 통일하기 전에는 향신료를 먹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지금 인도네시아가 국가 이념의 뿌리로 그를 든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나라의 멸망 · 1333 · 몽골을 두 번 막고 무너지다
몽골 침입을 막아내고도 나눠 줄 전리품이 없어 고케닌들의 불만이 쌓였다. 고다이고 천황이 거병하자 진압하러 간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편을 바꿨고, 닛타 요시사다가 가마쿠라를 함락했다. 호조 일족 800여 명이 집단 자결했다.
【그때 그 자리】 1185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세웠다.
일본 최초의 무사 정권이다.
천황은 교토에 있고, 실제 권력은 가마쿠라에 있었다.
요리토모가 죽은 뒤 3대에 미나모토 가문이 끊겼다.
처가인 호조씨가 「싯켄(집권)」으로 실권을 쥐었다.
【왜 그렇게 됐나】 무너진 이유가 역설적이다.
이겼기 때문이다.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 몽골이 쳐들어왔다.
규슈에서 막았다. 태풍이 크게 도왔다 — 「신풍(가미카제)」이라 불렸다.
그런데 방어 전쟁이었다.
무사가 목숨을 걸고 싸우면 상을 받는다. 그 상이 땅이다.
정복 전쟁이면 빼앗은 땅을 나눠 준다.
방어 전쟁에는 나눠 줄 땅이 없었다.
「모코 슈라이 에코토바」라는 두루마리가 남아 있다.
다케자키 스에나가라는 무사가 자기 공을 그림으로 그려 가마쿠라까지 가서 인정받으려 한 기록이다.
그렇게까지 해야 겨우 말 한 마리를 받았다.
그런 무사가 수만 명이었다.
【어떻게 흘렀나】 무사들의 살림이 나빠졌다.
분할 상속도 겹쳤다. 대를 이을 때마다 땅이 잘게 쪼개졌다.
빚을 지고 땅을 팔았다.
막부가 1297년 「도쿠세이레이(덕정령)」를 냈다. 빚을 무효로 하고 판 땅을 돌려받게 한 것이다.
일시적으로 도움이 됐다. 그런데 그 뒤 아무도 무사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사정이 더 나빠졌다.
그리고 몽골이 다시 올까 봐 규슈 방비를 계속 유지했다. 그 비용을 무사들이 댔다.
【그래서】 1331년 고다이고 천황이 거병했다.
겐코의 난이다.
실패하고 오키섬으로 유배됐다.
그런데 지방에서 저항이 이어졌다. 구스노키 마사시게가 지하야성에서 막부 대군을 몇 달 묶었다.
1333년 막부가 아시카가 다카우지를 진압군으로 보냈다.
그가 도중에 배신했다.
동시에 닛타 요시사다가 가마쿠라를 쳤다.
호조 다카토키와 일족 수백 명이 도쇼지에서 자결했다.
148년 만이다.
【남은 것】 고다이고의 친정은 3년도 못 갔다.
무사보다 조정 귀족을 우대해 다시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1336년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무로마치 막부를 열었다.
막부라는 형태 자체는 이어졌다. 1868년까지 683년이다.
무사에게 줄 땅이 없어 무너진 정권을, 무사에게 땅을 주지 않은 조정이 이어받았다가 다시 잃었다.
가마쿠라에 지금 대불이 있다. 원래 있던 건물이 15세기 쓰나미에 쓸려 가고 불상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