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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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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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원수정과 로마 평화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고 속주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한반도

삼국의 성립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전쟁

해당 없음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4명

프톨레마이오스과학150 · 천문학자·지리학자
AD 100 무렵 – AD 170 무렵

1400년을 지배한 우주 모형

  • 알마게스트 저술
  • 주전원으로 행성 역행을 설명
  • 코페르니쿠스 이전까지의 정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사상170 · 막사에서 일기를 쓴 황제
AD 121 – AD 180

재위 내내 전쟁과 역병에 시달렸다. 다뉴브 전선의 천막에서 자기에게 하는 말을 그리스어로 적었다.

  • 「명상록」 — 남에게 보이려 쓴 글이 아니다
  • 마르코만니 전쟁을 직접 지휘
  • 오현제의 마지막 — 아들에게 물려준 것이 실책
장형과학132 · 후한의 천문학자
78 – 139

최초의 지진계를 만들다

  • 지동의 발명 132
  • 혼천의 개량
  • 원주율을 정밀 계산
카니슈카정치130 · 불교를 실크로드에 실은 왕
AD 127 – AD 150 재위

쿠샨 제국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인도·중앙아시아·중국을 잇는 교역로를 쥐고 그 길로 불교를 북쪽에 퍼뜨렸다.

  • 간다라 미술 — 그리스식 얼굴의 불상
  • 제4차 불경 결집 후원
  • 불교가 중국에 들어가는 통로를 엶

그 무렵의 사건

165
안토니누스 역병
제국 인구의 10분의 1이 사라졌다.
동방 원정에서 돌아온 군대가 옮겼다. 천연두로 추정되며 15년간 500만 명이 죽었다. 군대와 세수가 함께 줄면서 3세기 위기의 바탕이 됐다.
200
고트족의 이동
발트해에서 흑해까지, 그리고 로마까지.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드네프르 일대에 자리를 잡았다. 4세기에 훈족이 밀려오자 다시 서쪽으로 밀렸고, 그 물결이 도미노처럼 이어져 로마의 국경을 무너뜨린다. 민족대이동은 여기서 시작된다.
105
채륜과 종이의 발명
105년, 후한의 환관 채륜이 나무껍질·삼베·헌 어망 등을 이용한 종이 제조법을 황제에게 보고했다. 이는 이후 인류의 지식 전파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발명이었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는 대나무 조각이나 비단에 글을 썼는데, 대나무는 무겁고 비단은 지나치게 비쌌다. 채륜이 정리한 제조법은 값싼 재료로 가볍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종이를 만들 수 있게 했다. 이 기술은 처음엔 중국 안에서만 비밀리에 전해지다, 8세기 무렵 이슬람 세계로 전파되고(전설에 따르면 탈라스 전투 포로를 통해),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며 점차 전 세계로 퍼졌다. 값싼 종이의 보급은 훗날 인쇄술의 발전과 맞물려 지식이 더 널리, 더 빠르게 퍼지는 밑바탕이 됐다.
100
악숨
홍해를 쥔 아프리카의 제국.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홍해로 나가는 길목에 섰다. 자기 동전을 찍은 아프리카 최초의 나라 축에 든다. 통돌을 깎아 세운 오벨리스크가 가장 큰 것은 33미터였다. 이슬람이 홍해를 쥐면서 고원 안쪽으로 물러났다.
100
모체와 나스카
얼굴을 그대로 빚은 토기, 하늘에서만 보이는 그림.
북쪽의 모체는 사람 얼굴을 사진처럼 빚었고 금세공이 정교했다. 남쪽의 나스카는 사막 바닥의 돌을 걷어 내 수백 미터짜리 선을 그렸다. 두 문화 모두 긴 가뭄과 엘니뇨에 시달리다 흩어졌다.
100
옥에오와 푸난
메콩 삼각주에서 로마 금화가 나왔다.
동남아시아 최초의 큰 나라로 꼽히는 푸난의 항구다. 인도 상인과 중국 사신이 드나들었고, 발굴에서 로마 안토니누스 시대의 금화와 인도 보석과 중국 거울이 함께 나왔다. 운하를 파서 배를 안쪽까지 들였다.

교역로 4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흉노

나라의 멸망 · 155 · 이름이 사라지고 사람이 흩어지다

한 무제와 백 년을 겨룬 초원의 첫 제국. 내부 분열로 남북으로 갈라져 남흉노는 한에 붙고 북흉노는 밀려났다. 선비의 단석괴가 그 자리를 차지했고, 서쪽으로 간 일부가 훗날 훈족과 연결된다는 설이 있다.

【그때 그 자리】 BC 3세기 몽골 초원이다.

묵특 선우가 부족들을 통일했다.

BC 200년 백등산에서 한 고조 유방을 포위했다.

7일 만에 풀어 주었다. 그 뒤 한이 공주와 비단을 보내며 달랬다.

「화친」이라 불렸는데 사실상 조공이었다.

【왜 그렇게 됐나】 무제가 그것을 뒤집었다.

위청과 곽거병이 원정했다. 하서회랑을 얻어 흉노를 서역에서 갈라놓았다.

장건을 서역으로 보내 동맹을 찾았다.

그런데 한도 소모가 컸다. 인구와 재정이 크게 상했다.

무제가 말년에 「윤대의 조」를 내려 원정을 중단했다.

결정적인 것은 안에서 왔다.

BC 60년 무렵 선우 자리를 두고 다툼이 났다. 다섯 명이 동시에 선우를 칭한 때도 있었다.

BC 54년 남북으로 갈렸다.

남흉노의 호한야 선우가 한에 항복했다. 왕소군이 그에게 시집간 것이 이때다.

북흉노는 계속 저항했다.

【어떻게 흘렀나】 AD 48년 다시 남북으로 갈렸다.

남흉노는 한의 국경 안으로 들어와 살았다.

북흉노는 AD 89년 후한의 두헌에게 크게 졌다.

연연산에 승전을 새겼다. 「연연산명」이다.

2017년 몽골에서 그 비문이 실제로 발견됐다. 1,900년 만이다.

북흉노가 서쪽으로 밀려갔다. 그 뒤 기록에서 사라진다.

【그래서】 「흉노가 훈족인가」가 오래된 물음이다.

18세기 드기뉴가 그 가설을 냈다.

이름이 비슷하고 시기가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소그드어 편지에 흉노를 「훈」으로 표기한 것이 발견돼 근거가 됐다.

다만 300년의 공백이 있고, 유전자와 고고학 자료가 단순한 연속을 보여 주지 않는다.

지금은 「일부 집단이 이어졌을 가능성」 정도로 신중하게 본다.

【남은 것】 남흉노는 다른 길을 갔다.

중국 안에 정착해 한족과 섞였다.

그런데 서진이 팔왕의 난으로 흔들리자 일어섰다.

AD 304년 유연이 독립을 선포했다. 나라 이름을 「한(漢)」이라 했다.

자기가 한나라 황실의 외손이라는 논리를 폈다. 조상이 화친으로 받은 공주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그 아들이 311년 낙양을 함락했다. 영가의 난이다.

흉노를 달래려 보낸 공주의 후손이 그 나라를 무너뜨린 셈이다.

「흉노」라는 이름은 5세기에 기록에서 사라진다.

사라진 것은 이름이고, 사람은 흩어져 섞였다.

지도에서 보기: 1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