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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고 속주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해당 없음
1400년을 지배한 우주 모형
재위 내내 전쟁과 역병에 시달렸다. 다뉴브 전선의 천막에서 자기에게 하는 말을 그리스어로 적었다.
최초의 지진계를 만들다
쿠샨 제국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인도·중앙아시아·중국을 잇는 교역로를 쥐고 그 길로 불교를 북쪽에 퍼뜨렸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나라의 멸망 · 155 · 이름이 사라지고 사람이 흩어지다
한 무제와 백 년을 겨룬 초원의 첫 제국. 내부 분열로 남북으로 갈라져 남흉노는 한에 붙고 북흉노는 밀려났다. 선비의 단석괴가 그 자리를 차지했고, 서쪽으로 간 일부가 훗날 훈족과 연결된다는 설이 있다.
【그때 그 자리】 BC 3세기 몽골 초원이다.
묵특 선우가 부족들을 통일했다.
BC 200년 백등산에서 한 고조 유방을 포위했다.
7일 만에 풀어 주었다. 그 뒤 한이 공주와 비단을 보내며 달랬다.
「화친」이라 불렸는데 사실상 조공이었다.
【왜 그렇게 됐나】 무제가 그것을 뒤집었다.
위청과 곽거병이 원정했다. 하서회랑을 얻어 흉노를 서역에서 갈라놓았다.
장건을 서역으로 보내 동맹을 찾았다.
그런데 한도 소모가 컸다. 인구와 재정이 크게 상했다.
무제가 말년에 「윤대의 조」를 내려 원정을 중단했다.
결정적인 것은 안에서 왔다.
BC 60년 무렵 선우 자리를 두고 다툼이 났다. 다섯 명이 동시에 선우를 칭한 때도 있었다.
BC 54년 남북으로 갈렸다.
남흉노의 호한야 선우가 한에 항복했다. 왕소군이 그에게 시집간 것이 이때다.
북흉노는 계속 저항했다.
【어떻게 흘렀나】 AD 48년 다시 남북으로 갈렸다.
남흉노는 한의 국경 안으로 들어와 살았다.
북흉노는 AD 89년 후한의 두헌에게 크게 졌다.
연연산에 승전을 새겼다. 「연연산명」이다.
2017년 몽골에서 그 비문이 실제로 발견됐다. 1,900년 만이다.
북흉노가 서쪽으로 밀려갔다. 그 뒤 기록에서 사라진다.
【그래서】 「흉노가 훈족인가」가 오래된 물음이다.
18세기 드기뉴가 그 가설을 냈다.
이름이 비슷하고 시기가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소그드어 편지에 흉노를 「훈」으로 표기한 것이 발견돼 근거가 됐다.
다만 300년의 공백이 있고, 유전자와 고고학 자료가 단순한 연속을 보여 주지 않는다.
지금은 「일부 집단이 이어졌을 가능성」 정도로 신중하게 본다.
【남은 것】 남흉노는 다른 길을 갔다.
중국 안에 정착해 한족과 섞였다.
그런데 서진이 팔왕의 난으로 흔들리자 일어섰다.
AD 304년 유연이 독립을 선포했다. 나라 이름을 「한(漢)」이라 했다.
자기가 한나라 황실의 외손이라는 논리를 폈다. 조상이 화친으로 받은 공주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그 아들이 311년 낙양을 함락했다. 영가의 난이다.
흉노를 달래려 보낸 공주의 후손이 그 나라를 무너뜨린 셈이다.
「흉노」라는 이름은 5세기에 기록에서 사라진다.
사라진 것은 이름이고, 사람은 흩어져 섞였다.
지도에서 보기: 1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