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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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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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3세기의 위기

50년 동안 황제가 스무 명 넘게 바뀌었다. 군대가 황제를 세우고 죽였으며 은화의 은 함량이 5퍼센트 아래로 떨어졌다. 국경이 동시에 뚫렸다.

한반도

삼국의 성립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전쟁

해당 없음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3명

조조장군208 · 난세를 정면으로 받은 사람
AD 155 – AD 220

황건적 진압으로 이름을 얻고 헌제를 옹립해 명분을 쥐었다. 둔전제로 군량을 자급한 것이 다른 군벌과의 결정적 차이였다.

  • 관도대전에서 원소를 꺾음 200
  • 둔전제 — 병사가 농사를 지어 자급
  • 적벽에서 패해 통일이 60년 미뤄짐
제갈량정치234 · 이길 수 없는 싸움을 계속한 사람
AD 181 – AD 234

국력이 위의 5분의 1인 촉을 이끌고 다섯 번 북벌했다.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지지 않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해석이 많다.

  • 천하삼분지계 — 형세를 셋으로 보다
  • 목우유마와 연노 등 병기 개량
  • 출사표 — 「죽은 뒤에야 그친다」
히미코정치239 · 위지동이전에 남은 여왕
170 무렵 – 248 무렵

야마타이국의 여왕으로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 친위왜왕 칭호와 거울 100장을 받았다. 나라가 어디였는지는 지금도 규슈설과 기나이설로 갈린다.

  • 239년 위에 사신
  • 주술로 다스렸다고 기록됨
  • 야마타이 위치 논쟁은 아직 안 끝났다

그 무렵의 사건

220
삼국의 성립
한 제국이 셋으로 갈라졌다.
조비가 헌제의 선양을 받아 위를 세우자 유비가 촉을, 손권이 오를 세웠다. 400년 통일이 끝나고, 이 60년의 이야기가 1,000년 뒤 「삼국지연의」가 된다.
224
사산 왕조의 등장
페르시아가 400년 만에 돌아왔다.
아르다시르 1세가 파르티아를 무너뜨리고 아케메네스의 후계를 자처했다.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고 로마와 400년을 겨룬다.
212
안토니누스 칙령
제국 안 모든 자유민이 로마 시민이 됐다.
카라칼라가 속주민 전체에게 시민권을 줬다. 명분은 평등, 실제는 세수 — 시민만 내는 상속세를 걷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로마인」의 뜻이 혈통에서 소속으로 바뀐 사건이다.
200
고트족의 이동
발트해에서 흑해까지, 그리고 로마까지.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드네프르 일대에 자리를 잡았다. 4세기에 훈족이 밀려오자 다시 서쪽으로 밀렸고, 그 물결이 도미노처럼 이어져 로마의 국경을 무너뜨린다. 민족대이동은 여기서 시작된다.
165
안토니누스 역병
제국 인구의 10분의 1이 사라졌다.
동방 원정에서 돌아온 군대가 옮겼다. 천연두로 추정되며 15년간 500만 명이 죽었다. 군대와 세수가 함께 줄면서 3세기 위기의 바탕이 됐다.

교역로 4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후한

나라의 멸망 · 220 · 황건적이 일어난 뒤 36년, 조비가 선양을 받았다

환관과 외척의 싸움에 황건적의 난이 겹쳤고, 진압을 맡은 지방관들이 그대로 군벌이 됐다. 동탁이 낙양을 불태운 뒤 헌제는 조조의 손안에 있었다. 조비가 형식적 선양을 받으며 400년 왕조가 끝났다.

【그때 그 자리】

기원후 23년 왕망의 신이 무너졌다. 각지의 반란 세력 가운데 한 황실의 먼 후손 유수가 남았다.

25년 그가 황제가 됐다. 광무제다. 수도를 장안에서 동쪽 낙양으로 옮겨 후한 또는 동한이라 부른다.

그는 전쟁으로 세운 나라를 전쟁으로 유지하지 않았다. 노비를 여러 차례 해방하고, 세금을 낮추고, 군대를 줄였다. 밖으로 나가는 원정을 자제했다.

【왜 그렇게 됐나】

이 나라의 구조적 문제는 호족이었다.

광무제 자신이 호족의 지지로 일어섰다. 그래서 호족의 토지 소유를 건드리기 어려웠다. 대토지를 가진 집안이 소작농을 거느리고 사병을 두었다. 세금을 내는 자영농이 줄고 국가 재정이 약해졌다.

이 문제를 손대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번번이 좌절됐다.

【어떻게 흘렀나】

밖으로는 성과가 있었다. 73년 반초가 서역으로 가 30년간 머물며 50여 나라를 복속시켰다. 그가 보낸 감영은 로마까지 가려다 페르시아만에서 되돌아왔다. 97년의 일이다.

105년 채륜이 종이 만드는 법을 정리해 황제에게 바쳤다. 기록의 값이 무너지는 시작이다.

132년 장형이 후풍지동의라는 지진계를 만들었다. 구리 항아리에 용 여덟 마리를 달아 지진 방향의 용이 구슬을 떨어뜨리게 했다. 실제로 낙양에서 감지되지 않은 먼 곳의 지진을 알아맞혔다는 기록이 있다.

안에서는 무너져 갔다. 어린 황제가 잇달아 즉위하면서 외척이 실권을 쥐고, 황제가 자라면 환관과 손잡아 외척을 제거하고, 그러면 환관이 권력을 쥐는 일이 되풀이됐다.

166년과 169년 당고의 화가 일어났다. 환관을 비판한 관료와 태학생 수백 명이 처형되거나 평생 관직을 못 갖게 됐다. 나라를 걱정한 사람들이 제거된 것이다.

【그래서】

184년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다. 태평도라는 종교 조직이 수십만을 모았다. 창천이 이미 죽었으니 황천이 서야 한다는 구호를 내걸었다.

조정은 진압할 힘이 없어 지방에 군사권을 넘겼다. 이것이 결정적이었다. 진압에 나선 자들이 곧 군벌이 됐다.

189년 동탁이 낙양을 장악하고 황제를 갈아치웠다. 220년 조비가 헌제에게 자리를 넘겨받아 위를 세웠다. 195년이었다.

【남은 것】

이 나라의 마지막 30년이 삼국지의 무대다.

후한이 무너진 방식은 이후 여러 왕조에서 되풀이된다. 외척과 환관이 번갈아 권력을 쥐고, 토지가 소수에게 몰리고, 세금 낼 사람이 줄고, 반란이 나면 진압을 지방에 맡기고, 그 지방 세력이 나라를 나눠 갖는다.

불교가 이 시기에 처음 들어왔다. 67년 백마사가 세워졌다고 전한다.

종이와 지진계와 실크로드의 서쪽 끝을 확인한 여행이 모두 이 왕조의 것이다. 무너지는 나라에서도 만들어지는 것은 있다.

지도에서 보기: 2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