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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라틴 유럽·비잔틴·이슬람이 지중해를 나눠 가졌다. 카롤루스의 제국은 곧 쪼개졌고 바이킹과 마자르가 유럽을 휘저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당이 무너지고 송이 섰다.
신라가 당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통일했고 북쪽에는 발해가 섰다. 신라 말 호족이 일어나며 후삼국으로 갈라진다.
왜인구 압력과 흘수 얕은 롱십이 결합했다. 강을 거슬러 내륙까지 들이닥칠 수 있는 배가 결정적이었다.
결과약탈로 시작해 정착과 건국으로 끝났다. 노르망디·러시아·아이슬란드가 이들의 손에서 생겼고, 북아메리카에도 콜럼버스보다 500년 먼저 닿았다.
당에서 군인으로 성공한 뒤 돌아와 청해진을 세웠다. 신라·당·일본을 잇는 해상 교역을 손에 넣었다.
바그다드 지혜의 집에서 일했다. 알고리즘이 그의 이름에서, 알제브라가 그의 책 제목에서 왔다. 인도 숫자를 정리해 서쪽으로 넘긴 것도 그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나라의 멸망 · 843 · 형제가 제국을 셋으로 나눠 가졌다
샤를마뉴가 통합한 서유럽이 손자 대에 상속으로 쪼개졌다. 베르됭 조약의 세 조각이 각각 프랑스·로타링기아·독일의 씨앗이 됐다. 유럽의 국경 다툼 상당수가 여기서 시작된다.
【그때 그 자리】
476년 서로마가 무너진 뒤 서유럽에 게르만 왕국들이 섰다. 서고트, 동고트, 반달, 부르군트, 그리고 프랑크다.
이 가운데 프랑크가 남았다. 다른 왕국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이유가 종교였다. 다른 게르만 왕국들은 아리우스파 기독교를 받아들였는데, 이는 로마 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것이었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신앙이 달라 융합이 어려웠다.
496년 무렵 클로비스가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로마계 주민과 교회의 지지를 얻었다.
【왜 그렇게 됐나】
메로빙거 왕조가 이어졌으나 왕들이 실권을 잃었다. 궁재가 실질적으로 다스렸다.
732년 카롤루스 마르텔이 투르-푸아티에에서 이슬람 세력을 물리쳤다. 이 승리로 가문의 위상이 올랐다.
751년 그의 아들 피핀이 메로빙거 왕을 폐하고 스스로 왕이 됐다. 교황에게 실권 없는 자와 실권 있는 자 가운데 누가 왕이어야 하느냐고 물어 승인을 받았다.
그 대가로 피핀은 롬바르드족에게서 빼앗은 이탈리아 중부 땅을 교황에게 줬다. 교황령의 시작이다. 교황이 세속 영토를 가진 군주가 된 것이 이때다.
【어떻게 흘렀나】
768년 카롤루스 대제가 즉위했다. 샤를마뉴다.
46년간 50여 차례 원정을 벌였다. 롬바르드를 병합하고, 작센을 30년 넘게 싸워 정복했으며, 바이에른과 아바르를 눌렀다.
작센 정복은 잔혹했다. 개종을 거부한 이들 4,500명을 하루에 처형했다는 기록이 있다.
800년 성탄절 로마에서 교황 레오 3세가 그에게 황제의 관을 씌웠다. 서로마 황제가 324년 만에 다시 생긴 것이다.
이 대관의 의미가 컸다. 동로마 황제만이 로마 황제라는 원칙이 깨졌다. 그리고 황제의 관을 교황이 씌웠다는 사실이 이후 오랜 논쟁을 낳는다. 교황이 황제를 만드는가, 황제가 교황을 보호하는가.
그는 아헨에 궁정을 두고 학자들을 모았다. 앨퀸을 비롯한 이들이 라틴어 문법을 정리하고 고전 필사본을 베꼈다.
이때 만들어진 것이 카롤링거 소문자다. 그전까지 라틴어는 대문자를 띄어쓰기 없이 붙여 썼다. 소문자와 띄어쓰기와 문장부호가 이 시기에 정착했다. 지금 우리가 쓰는 알파벳 소문자의 형태가 여기서 왔다.
고전 라틴 문헌의 상당수가 이때 필사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시기가 없었다면 사라졌을 책이 많다.
【그래서】
814년 그가 죽고 아들 루이가 이었다. 843년 베르됭 조약으로 제국이 셋으로 갈렸다.
서프랑크가 프랑스, 동프랑크가 독일, 중프랑크가 이탈리아와 로렌 지역이 됐다.
이 분할이 지금 유럽의 뼈대다. 프랑스와 독일의 경계, 그리고 두 나라가 오래 다툰 알자스-로렌 문제가 여기서 시작된다.
【남은 것】
962년 오토 1세가 황제가 되면서 신성로마제국이 이어진다. 1806년까지 갔다.
카롤루스는 프랑스에서 샤를마뉴, 독일에서 카를 데어 그로세로 불린다. 두 나라가 각자 자기 시조로 삼는다.
유럽 통합의 상징으로도 쓰인다. 유럽 통합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상 이름이 카를 대제상이다. 아헨에서 준다.
1,200년 전 한 사람이 묶었다가 갈라진 땅을, 지금 다시 묶으려는 시도에 그 이름이 붙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