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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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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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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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세 개의 세계

라틴 유럽·비잔틴·이슬람이 지중해를 나눠 가졌다. 카롤루스의 제국은 곧 쪼개졌고 바이킹과 마자르가 유럽을 휘저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당이 무너지고 송이 섰다.

한반도

남북국시대

신라가 당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통일했고 북쪽에는 발해가 섰다. 신라 말 호족이 일어나며 후삼국으로 갈라진다.

전쟁 1건

바이킹 시대793 – 1066
노르드인 vs 유럽 각지

인구 압력과 흘수 얕은 롱십이 결합했다. 강을 거슬러 내륙까지 들이닥칠 수 있는 배가 결정적이었다.

린디스판 약탈 793파리 포위 885스탬퍼드 브리지 1066

결과약탈로 시작해 정착과 건국으로 끝났다. 노르망디·러시아·아이슬란드가 이들의 손에서 생겼고, 북아메리카에도 콜럼버스보다 500년 먼저 닿았다.

273년 · 유럽 지도를 다시 그렸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2명

장보고장군828 · 바다를 장악한 신라 사람
? – AD 846

당에서 군인으로 성공한 뒤 돌아와 청해진을 세웠다. 신라·당·일본을 잇는 해상 교역을 손에 넣었다.

  • 청해진 설치 828 — 해적을 소탕
  • 신라·당·일본 삼각 무역 장악
  • 왕위 다툼에 개입했다가 암살
알콰리즈미과학820 · 대수학을 세운 사람
780 무렵 – 850 무렵

바그다드 지혜의 집에서 일했다. 알고리즘이 그의 이름에서, 알제브라가 그의 책 제목에서 왔다. 인도 숫자를 정리해 서쪽으로 넘긴 것도 그다.

  • 대수학 — 방정식을 푸는 법
  • 인도 숫자를 아랍에 소개
  • 그의 이름이 알고리즘이 됐다

그 무렵의 사건

850
화약의 발명
9세기 중국 당나라 시기, 불로장생약을 찾던 연금술사들이 우연히 화약을 발명했다. 처음엔 폭죽과 신호탄으로 쓰이다가 점차 무기로 발전했다.
숯·유황·초석(질산칼륨)을 섞어 불로장생의 영약을 만들려던 도교 연금술사들의 실험 기록에는 오히려 이 혼합물이 불이 붙고 폭발한다는, 당시로선 뜻밖의 위험한 발견이 남아 있다. 송나라 시대에 이르러 화약은 화살에 불을 붙이는 무기, 이어 원시적인 폭탄과 화포로 점차 발전했다. 몽골 제국의 서방 원정을 통해, 또는 실크로드 교역로를 통해 이 기술이 이슬람 세계를 거쳐 유럽까지 전해졌고, 이는 훗날 유럽에서 화약 무기가 중세 기사와 성벽 중심의 전쟁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830
지혜의 집
바그다드의 번역 기관. 그리스·인도·페르시아의 책이 아랍어로 옮겨져 유럽으로 되돌아갔다.
칼리파 알마문은 꿈에 아리스토텔레스를 보았다며 번역을 후원했다고 전한다. 후나인 이븐 이스하크 같은 학자들이 갈레노스·유클리드·프톨레마이오스를 옮겼고, 알콰리즈미는 여기서 대수학과 인도 숫자를 정리했다. 이 책들이 톨레도와 시칠리아에서 라틴어로 다시 번역되지 않았다면 12세기 르네상스도 없었다. 1258년 몽골이 바그다드를 함락하며 장서는 티그리스에 버려졌다.
862
슬라브와 바랑기아
북쪽 사람을 불러다 다스리게 했다는 기록.
루스 원초 연대기는 슬라브 부족들이 서로 싸우다 바다 건너 바랑기아인을 불렀다고 적는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나중에 지배를 정당화하려 쓴 것인지는 아직 논쟁 중이다. 그 길이 뒤에 키예프 루스가 된다.
818
발해의 전성기(해동성국)
발해는 선왕 때에 이르러 옛 고구려와 부여의 영토 대부분을 아우르는 최대 영역을 이루며 전성기를 맞아, 중국으로부터 '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라는 뜻의 해동성국이라 불렸다.
발해는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세운 나라로, 스스로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식을 분명히 했다. 9세기 선왕 때에 이르러 만주 대부분과 연해주, 한반도 북부에 걸친 최대 영토를 확보하고 지방 행정 제도를 5경 15부 62주로 정비해 안정적인 통치 체제를 갖췄다. 당시 당나라를 비롯한 주변국들은 발해의 융성함을 인정해 '해동성국'이라 부르며 대등한 이웃 나라로 대우했다.
882
키예프 루스가 서다
바이킹이 강을 타고 내려와 세운 나라.
북에서 내려온 루스가 슬라브 부족들을 묶었다. 드네프르강을 타고 콘스탄티노폴리스와 교역했고, 988년 그곳의 정교회를 받아들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가 모두 자기 뿌리로 삼는다 — 그래서 지금도 다툰다.
800
카롤루스의 대관
교황이 프랑크 왕에게 황제관을 씌웠다. 서유럽이 로마의 후계를 자처하기 시작한다.
서유럽이 로마의 후계를 자처하기 시작했다. 교황과 황제의 오랜 다툼도 여기서 싹튼다.

교역로 3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프랑크 제국

나라의 멸망 · 843 · 형제가 제국을 셋으로 나눠 가졌다

샤를마뉴가 통합한 서유럽이 손자 대에 상속으로 쪼개졌다. 베르됭 조약의 세 조각이 각각 프랑스·로타링기아·독일의 씨앗이 됐다. 유럽의 국경 다툼 상당수가 여기서 시작된다.

【그때 그 자리】

476년 서로마가 무너진 뒤 서유럽에 게르만 왕국들이 섰다. 서고트, 동고트, 반달, 부르군트, 그리고 프랑크다.

이 가운데 프랑크가 남았다. 다른 왕국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이유가 종교였다. 다른 게르만 왕국들은 아리우스파 기독교를 받아들였는데, 이는 로마 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것이었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신앙이 달라 융합이 어려웠다.

496년 무렵 클로비스가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로마계 주민과 교회의 지지를 얻었다.

【왜 그렇게 됐나】

메로빙거 왕조가 이어졌으나 왕들이 실권을 잃었다. 궁재가 실질적으로 다스렸다.

732년 카롤루스 마르텔이 투르-푸아티에에서 이슬람 세력을 물리쳤다. 이 승리로 가문의 위상이 올랐다.

751년 그의 아들 피핀이 메로빙거 왕을 폐하고 스스로 왕이 됐다. 교황에게 실권 없는 자와 실권 있는 자 가운데 누가 왕이어야 하느냐고 물어 승인을 받았다.

그 대가로 피핀은 롬바르드족에게서 빼앗은 이탈리아 중부 땅을 교황에게 줬다. 교황령의 시작이다. 교황이 세속 영토를 가진 군주가 된 것이 이때다.

【어떻게 흘렀나】

768년 카롤루스 대제가 즉위했다. 샤를마뉴다.

46년간 50여 차례 원정을 벌였다. 롬바르드를 병합하고, 작센을 30년 넘게 싸워 정복했으며, 바이에른과 아바르를 눌렀다.

작센 정복은 잔혹했다. 개종을 거부한 이들 4,500명을 하루에 처형했다는 기록이 있다.

800년 성탄절 로마에서 교황 레오 3세가 그에게 황제의 관을 씌웠다. 서로마 황제가 324년 만에 다시 생긴 것이다.

이 대관의 의미가 컸다. 동로마 황제만이 로마 황제라는 원칙이 깨졌다. 그리고 황제의 관을 교황이 씌웠다는 사실이 이후 오랜 논쟁을 낳는다. 교황이 황제를 만드는가, 황제가 교황을 보호하는가.

그는 아헨에 궁정을 두고 학자들을 모았다. 앨퀸을 비롯한 이들이 라틴어 문법을 정리하고 고전 필사본을 베꼈다.

이때 만들어진 것이 카롤링거 소문자다. 그전까지 라틴어는 대문자를 띄어쓰기 없이 붙여 썼다. 소문자와 띄어쓰기와 문장부호가 이 시기에 정착했다. 지금 우리가 쓰는 알파벳 소문자의 형태가 여기서 왔다.

고전 라틴 문헌의 상당수가 이때 필사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시기가 없었다면 사라졌을 책이 많다.

【그래서】

814년 그가 죽고 아들 루이가 이었다. 843년 베르됭 조약으로 제국이 셋으로 갈렸다.

서프랑크가 프랑스, 동프랑크가 독일, 중프랑크가 이탈리아와 로렌 지역이 됐다.

이 분할이 지금 유럽의 뼈대다. 프랑스와 독일의 경계, 그리고 두 나라가 오래 다툰 알자스-로렌 문제가 여기서 시작된다.

【남은 것】

962년 오토 1세가 황제가 되면서 신성로마제국이 이어진다. 1806년까지 갔다.

카롤루스는 프랑스에서 샤를마뉴, 독일에서 카를 데어 그로세로 불린다. 두 나라가 각자 자기 시조로 삼는다.

유럽 통합의 상징으로도 쓰인다. 유럽 통합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상 이름이 카를 대제상이다. 아헨에서 준다.

1,200년 전 한 사람이 묶었다가 갈라진 땅을, 지금 다시 묶으려는 시도에 그 이름이 붙어 있다.

지도에서 보기: 8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위구르 카간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