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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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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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폴리스의 성립

그리스 각지에 도시국가가 섰다. 왕정이 귀족정으로, 다시 참주정과 민주정으로 갈라졌다. 인구가 늘어 흑해와 시칠리아까지 식민시를 세웠다. 같은 무렵 이탈리아에서는 로마가 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운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2건

춘추시대의 패권 다툼BC 770 – BC 476
제·진·초·오·월 등 제후국

주 왕실이 힘을 잃자 제후들이 「왕을 받든다」는 명분으로 서로를 쳤다. 실제로는 패자 자리를 다툰 것이다.

성복 BC 632필 BC 597취리 BC 506

결과170여 나라가 십여 개로 줄었다. 전쟁이 잦아지자 병법과 외교술이 발달했고, 그 혼란 속에서 공자와 제자백가가 나왔다.

294년 · 170국이 십여 국으로
아시리아의 정복전쟁BC 745 – BC 609
신아시리아 vs 근동 전역

철제 무기와 상비군, 공성탑을 갖춘 최초의 군사국가가 근동을 통째로 삼키려 했다.

사마리아 함락 BC 722라기스 공성 BC 701테베 약탈 BC 663니네베 함락 BC 612

결과이집트에서 페르시아만까지 하나로 묶었지만, 정복지 주민을 통째로 옮겨 심는 공포 통치가 사방에 적을 만들었다. 결국 바빌로니아·메디아 연합에 지워졌다.

136년 · 근동 최초의 통합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2명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장군BC 740 · 제국 통치의 틀을 만든 왕
BC 745 – BC 727 재위

정복지를 속주로 바꾸고 주민을 강제 이주시켜 반란의 뿌리를 뽑았다. 잔혹했지만 효율적이었고, 이후 모든 제국이 이 방식을 참고했다.

  • 최초의 상비 직업군 편성
  • 속주·총독 제도와 강제 이주 정책
  • 아시리아를 제국으로 전환
피예정치BC 744 · 이집트를 정복한 누비아 왕
BC 747 – BC 714 재위

남쪽 쿠시의 왕이 북쪽으로 올라가 이집트 전체를 다스렸다. 25왕조를 검은 파라오들이라 부른다. 그들은 이집트를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옛 전통을 되살렸다.

  • 이집트 통일 — 25왕조
  • 수단에 이집트보다 많은 피라미드가 남았다

그 무렵의 사건

BC 700
스텝의 기마민족
말 탄 사람들이 초원 전체를 이었다.
스키타이와 사르마트가 흑해 북쪽 초원을 달렸다. 도시를 세우지 않아 무덤만 남겼는데, 그 안에서 놀랍도록 정교한 금 세공이 나온다. 짐승끼리 물어뜯는 무늬가 중국 북쪽에서 헝가리까지 같은 모양으로 발견된다.
BC 700
스키타이의 초원 지배
흑해 북쪽 초원의 기마 유목민. 황금 장신구와 말 위의 활쏘기로 페르시아와 그리스를 놀라게 했다.
이란계 유목민인 스키타이는 BC 7세기 킴메르인을 몰아내고 초원을 차지했다. 다리우스 1세가 원정했으나 이들은 싸우지 않고 물러나며 우물을 메워 페르시아군을 지치게 했다. 헤로도토스는 적의 두개골로 술잔을 만든다고 적었다. 쿠르간 무덤에서 나온 황금 사슴과 그리핀은 초원 미술의 절정이다. 흉노·훈·몽골로 이어지는 유목 제국의 첫 모델이었다.
BC 753
로마 건국 전승
테베레 강가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됐다고 전한다.
로물루스의 건국 설화는 훗날 로마인의 자기 정체성이 됐다.
BC 776
제1회 올림피아 제전
그리스인이 같은 달력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스인이 처음으로 같은 연대를 공유했다. 이후 4년마다 열려 1,100년을 이어간다.

교역로

해당 없음

이스라엘 왕국

나라의 멸망 · BC 722 · 사라진 열 지파

샬만에세르 5세가 시작하고 사르곤 2세가 끝냈다. 아시리아는 정복지 주민을 통째로 옮겨 심는 정책을 썼고, 끌려간 열 지파는 돌아오지 않았다 — 「잃어버린 열 지파」.

【그때 그 자리】 솔로몬이 죽은 뒤 BC 930년 무렵 왕국이 갈렸다.

북쪽 열 지파가 이스라엘, 남쪽 두 지파가 유다다.

북쪽이 더 컸다. 인구도 땅도 많았다.

수도를 사마리아에 두었다.

【왜 그렇게 됐나】 왕조가 안정되지 못했다.

200년 동안 왕조가 아홉 번 바뀌었다. 암살이 잦았다.

남쪽 유다는 다윗 가문이 계속 이었다. 그 차이가 컸다.

종교도 갈렸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지 못하게 하려고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웠다.

구약이 그것을 「여로보암의 죄」라 부르며 북왕국 멸망의 이유로 든다.

밖에서는 아시리아가 커지고 있었다.

【어떻게 흘렀나】 처음에는 조공을 바쳤다.

「검은 오벨리스크」에 이스라엘 왕 예후가 살마네세르 3세 앞에 엎드린 장면이 새겨져 있다.

성경 밖에서 이스라엘 왕의 모습이 확인되는 유일한 자료다.

BC 8세기에 이집트를 믿고 반란했다.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가 갈릴래아를 가져갔다.

마지막 왕 호세아가 다시 반란했다.

BC 722년 사마리아가 3년 포위 끝에 함락됐다.

사르곤 2세가 자기 비문에 적었다. 「나는 사마리아를 포위해 함락하고 주민 2만 7,290명을 끌어갔다.」

【그래서】 아시리아의 강제 이주 정책이 적용됐다.

주민을 메디아와 메소포타미아 여러 곳으로 흩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다른 곳 사람들을 데려다 채웠다.

땅과 사람을 끊어 놓으면 반란의 뿌리가 사라진다는 계산이다.

흩어진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사라진 열 지파」 이야기가 여기서 나왔다.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를 두고 온갖 주장이 나왔다. 아프가니스탄의 파슈툰, 에티오피아의 베타 이스라엘, 인도의 브네이 메나셰가 자기들을 그 후손이라 한다.

대부분 확인되지 않는다. 현지 주민에 흡수됐다는 것이 학계의 대체적인 견해다.

【남은 것】 남은 사람과 이주해 온 사람이 섞였다.

그들이 사마리아인이 됐다.

유다 사람들이 그들을 혼혈이자 이단으로 여겼다.

그 앙금이 수백 년을 갔다. 신약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가 그 맥락에서 나온다.

지금도 사마리아인 공동체가 800명 남짓 남아 있다. 그리심산에서 유월절 제사를 지낸다.

북왕국이 사라지고 남왕국만 남으면서, 「유다」에서 「유대인」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지도에서 보기: BC 10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