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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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고전기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을 제국으로 바꿨고 스파르타가 이를 꺾었다. 도시국가들이 서로를 소모시키는 사이 북쪽 변방의 마케도니아가 그리스 전체를 장악했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1건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 – BC 404
아테네 델로스 동맹 vs 스파르타 펠로폰네소스 동맹

페르시아를 막으려 만든 델로스 동맹을 아테네가 사실상 제국으로 바꿔버렸다. 아테네의 팽창을 스파르타가 더는 견디지 못했다.

시라쿠사 원정 BC 415–413아이고스포타미 BC 405

결과27년을 싸운 끝에 아테네가 항복했다. 그리스 도시국가 체제가 스스로를 소모시켰다.

27년 · 개전 직후 역병으로 아테네 인구 3분의 1 사망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4명

히포크라테스과학BC 400 · 의학의 아버지
BC 460 무렵 – BC 370 무렵

질병을 신에게서 떼어놓다

  • 병을 자연적 원인으로 설명
  • 임상 관찰법을 체계화
  •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기원
소크라테스사상BC 399 · 묻기만 하다 죽은 사람
BC 470 – BC 399

책을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광장에서 사람을 붙들고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을 뿐인데, 그 물음이 아테네를 불편하게 했다.

  • 문답법 — 답이 아니라 물음을 남김
  •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 독배를 들며 도망을 거부
플라톤사상BC 380 · 이데아를 말한 사람
BC 428 – BC 348

스승의 죽음을 보고 민주정에 회의를 품었다. 아카데미아를 세워 900년간 이어지는 학교를 만들었다.

  • 「국가」 — 철인이 다스려야 한다
  • 동굴의 비유 — 우리가 보는 것은 그림자
  • 아카데미아 설립 — 서양 최초의 대학
묵자사상BC 430 · 겸애와 비공(非攻)을 외친 반전 사상가
BC 470 무렵 – BC 390 무렵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하라, 침략 전쟁을 하지 말라. 유가와 맞선 그의 학파는 방어 기술까지 갖춘 실천 집단이었다.

  • 겸애(兼愛) — 차별 없는 사랑
  • 비공(非攻) — 침략 전쟁 반대, 방어전 지원
  • 절용·절장 — 사치와 후장 비판

그 무렵의 사건

BC 399
소크라테스의 죽음
아테네가 철학자에게 독배를 내렸다.
제자 플라톤이 이 재판을 기록하며 서양 철학이 문서로 남기 시작했다.
BC 390
켈트족의 확산
갈리아의 켈트 전사 브렌누스가 로마를 약탈했다. 「패자에게 화 있으라」— 알프스 북쪽 유럽은 켈트의 땅이었다.
할슈타트와 라텐 문화로 알려진 켈트족은 BC 5세기부터 갈리아·브리타니아·이베리아·아나톨리아까지 퍼졌다. BC 390년 알리아에서 로마군을 깨고 도시를 점령해 금을 받고 물러났다. 저울에 칼을 던지며 한 말이 전한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과 로마화로 대륙의 켈트 언어는 사라졌고 아일랜드·웨일스·브르타뉴에만 남았다. 드루이드와 할로윈의 뿌리가 이들이다.

교역로 1개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아테네 제국

나라의 멸망 · BC 404 · 동맹을 제국으로 만들다 무너진 나라

27년 전쟁의 끝. 시칠리아 원정 실패로 함대를 통째로 잃고, 페르시아 돈으로 함대를 꾸린 스파르타에게 아이고스포타미에서 마지막 배까지 빼앗겼다. 델로스 동맹의 금고는 오래전에 아테네 것이 되어 있었다.

【그때 그 자리】 BC 478년이다. 페르시아 전쟁이 끝났다.

다시 올 페르시아를 막자며 델로스 동맹이 만들어졌다. 200개 가까운 폴리스가 들어왔다.

금고를 델로스섬의 아폴론 신전에 두었다. 회원국은 배를 내거나 돈을 내기로 했다.

아테네가 맹주였다. 함대를 가장 많이 냈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됐나】 배를 내는 것은 번거로웠다. 대부분의 도시가 돈으로 냈다.

그 돈으로 아테네가 배를 만들었다. 해가 갈수록 아테네만 함대를 가졌고 나머지는 무장 해제된 셈이 됐다.

BC 454년 금고를 아테네로 옮겼다. 페르시아의 위협을 이유로 들었다.

동맹에서 나가려는 도시가 나왔다. 낙소스와 타소스가 탈퇴를 시도했다가 함대에 포위돼 성벽을 헐고 배를 빼앗겼다.

「동맹」의 뜻이 바뀐 순간이다.

【어떻게 흘렀나】 페리클레스가 그 돈으로 파르테논을 지었다.

회원국이 항의했다. 플루타르코스가 그 논쟁을 적었다 — 「그리스가 강요당해 낸 돈으로 도시를 금과 보석으로 치장한다면,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오만이다.」

아테네 쪽 답은 「우리가 지켜 주는 값」이었다.

동맹국에 아테네 화폐와 도량형을 쓰게 하고, 중요한 재판을 아테네 법정에서 하게 했다.

BC 431년 스파르타와 전쟁이 났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다.

BC 416년 멜로스가 중립을 지키려 하자 아테네가 쳤다. 투키디데스가 그 협상을 적었다.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자는 당해야 하는 것을 당한다.」

성인 남자를 모두 죽이고 여자와 아이를 노예로 팔았다.

【그래서】 BC 415년 시칠리아 원정에 나섰다. 함대 대부분을 잃었다.

BC 405년 아이고스포타미에서 남은 함대가 궤멸했다. 이듬해 항복했다.

성벽이 헐렸다. 스파르타 동맹군이 피리를 불며 그 일을 했다고 크세노폰이 적었다.

【남은 것】 아테네는 곧 회복해 다시 동맹을 만든다. 다만 예전의 힘은 아니었다.

그 뒤 그리스 전체가 소모되고, 반세기 만에 북쪽의 마케도니아에게 넘어간다.

이 이야기가 오래 인용된다. 민주정을 가진 나라가 밖에서는 제국이었다는 것 — 안의 자유와 밖의 지배가 한 나라에 있었다.

투키디데스가 그것을 감추지 않고 적었다. 그가 「역사의 아버지」가 아니라 「정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다.

지도에서 보기: BC 5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