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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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절대왕정과 계몽

유럽 대부분이 절대군주의 궁정 정치로 움직였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전쟁이 반복됐고, 그 아래 살롱과 백과전서에서 왕권을 의심하는 사상이 자랐다.

한반도

조선 후기

세도정치와 삼정 문란이 겹쳤다. 서양 선박이 연안에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문을 닫아걸었다.

전쟁 1건

대북방전쟁1700 – 1721
러시아·덴마크·폴란드 vs 스웨덴

발트해 패권을 쥔 스웨덴을 러시아·덴마크·폴란드가 함께 노렸다. 젊은 표트르에게는 바다로 나가는 항구가 절실했다.

나르바 1700폴타바 1709

결과러시아가 스웨덴을 꺾고 발트해의 강자가 됐다. 표트르 대제의 제국이 여기서 시작된다.

21년 · 스웨덴이 강대국 지위를 잃었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5명

바흐예술1723 · 「마태 수난곡」의 작곡가, 음악의 아버지
1685 – 1750

라이프치히 교회의 음악 감독으로 매주 칸타타를 썼다. 살아서는 오르간 연주자로 유명했고 죽은 뒤 백 년 만에 「음악의 아버지」가 됐다.

  • 「브란덴부르크 협주곡」「평균율 클라비어」
  • 「마태 수난곡」(1727)
  • 「푸가의 기법」 — 대위법의 완성
오일러과학1736 · 수학자
1707 – 1783

역사상 가장 많은 논문을 쓴 수학자

  • 쾨니히스베르크 다리 문제 해결
  • 그래프 이론의 시작
  • 현대 수학 표기법 다수 고안
오세이 투투정치1701 · 아샨티를 하나로 묶은 왕
1660?년 무렵 – 1717

흩어진 아칸족 도시들을 쿠마시를 중심으로 통합했다.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황금 의자가 지금도 왕권의 상징이다.

  • 사제 오콤포 아녜에와 함께 아샨티 동맹 결성
  • 황금 의자(시카 드와)를 나라의 영혼으로 선포
  • 금 무역로를 장악해 아샨티를 서아프리카 강국으로
표트르 대제정치1700 · 러시아 차르
1672 – 1725

직접 서유럽에서 조선술을 배워왔다. 늪지에 새 수도를 세우고 바다로 나갔다.

  • 서유럽에서 직접 기술을 배워옴
  •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설
  • 대북방전쟁 승리
마리아 테레지아정치1745 · 16명의 자녀를 낳고 합스부르크를 지킨 여제
1717 – 1780, 재위 1740 – 1780

여자라는 이유로 유럽이 상속을 부정하자 헝가리 귀족 앞에 아기를 안고 나서 군대를 얻었다. 40년 동안 제국을 개혁했다.

  •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에서 제국 수호
  • 의무교육·행정 개혁, 상비군 정비
  • 마리 앙투아네트 등 자녀 정략혼

그 무렵의 사건

1725
영조의 탕평책
영조는 붕당 간 극심한 대립으로 정치가 마비되자, 당파를 가리지 않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숙종 때부터 격화된 붕당 간의 당쟁은 상대 당을 완전히 몰락시키는 환국 정치로까지 치달아 정치 기강이 크게 흔들렸다. 이 와중에 왕위에 오른 영조는 자신의 즉위 과정에서도 붕당의 다툼에 시달렸던 만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각 붕당의 인재를 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는 성균관 앞에 탕평비를 세워 이 원칙을 널리 알리고, 붕당의 뿌리인 서원을 대거 정리하며 이조 전랑의 권한도 축소했다. 영조의 탕평책으로 극단적인 당쟁은 상당히 진정되었으며, 이 흐름은 손자인 정조에게로 이어져 조선 후기 정치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1701
아샨티 제국
1701년 오세이 투투가 세운 아샨티 제국은 금 무역으로 번영하며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 중 하나로 성장했으나, 19세기 말 영국과의 거듭된 전쟁 끝에 식민 지배 아래 놓였다.
건국자 오세이 투투는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황금 의자('황금 스툴')를 왕권의 상징으로 삼아 여러 부족을 하나의 연합체로 묶었다. 이 의자는 오늘날까지도 아샨티 왕권의 신성한 상징으로 여겨진다. 아샨티는 풍부한 금광과 노예무역으로 큰 부를 쌓았으나, 19세기 들어 이권을 노린 영국과 다섯 차례에 걸친 전쟁(영국-아샨티 전쟁)을 치렀다. 1900년 마지막 전쟁에서 패배하며 결국 영국의 보호령으로 편입됐다.
1750
균역법 시행
영조는 백성이 부담하던 군포를 절반으로 줄이는 균역법을 시행해 군역의 폐단을 완화했다.
조선의 양인 남성은 군역 대신 군포(베 2필)를 바쳐야 했는데, 군적이 문란해지면서 이미 죽은 사람이나 갓난아이에게까지 군포를 매기는 백골징포·황구첨정 같은 폐단이 만연했다. 영조는 1750년 균역법을 시행해 군포 부담을 종전의 절반인 1필로 줄였다. 이로 인해 줄어든 국가 재정은 지주에게 걷는 결작(토지에 매기는 세금)과 어업세·소금세 등 잡세로 메우도록 했다. 균역법은 백성의 부담을 다소 덜어주었지만 근본적인 군적 문란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해, 조선 후기까지 군포 관련 폐단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1688
명예혁명
1688~89년, 잉글랜드 의회가 가톨릭 왕 제임스 2세를 몰아내고 그의 딸 메리와 사위 윌리엄을 공동 왕으로 앉혔다. 유혈 충돌 없이 이뤄졌다.
이듬해 권리장전이 제정되며 의회가 왕권 위에 있다는 원칙이 확립됐다. 절대왕정에서 입헌군주정으로 넘어가는 결정적 전환점으로 꼽힌다.
1755
리스본 대지진
만성절 아침 지진·쓰나미·화재가 리스본을 지웠다. 「신은 왜 허락했는가」가 계몽사상의 질문이 됐다.
11월 1일 미사 시간에 규모 8.5로 추정되는 지진이 덮쳤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강가로 피하자 쓰나미가 왔고 촛불이 도시를 닷새 동안 태웠다. 인구 20만 중 3만에서 5만이 죽었다. 재상 폼발은 「죽은 자를 묻고 산 자를 먹이라」며 격자형 내진 도시를 다시 세웠고, 볼테르는 「캉디드」로 낙관론을 비웃었다. 근대 지진학의 출발점이다.
1769
산업혁명
와트의 증기기관 특허와 아크라이트의 방적기가 같은 해에 나왔다. 기계가 사람의 손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석탄과 철이 풍부한 영국 중부에서 면직물 공장이 강가에서 도시로 옮겨 왔다. 증기기관이 방적기와 직조기를 돌리고 곧 철도를 끌었다. 인구가 농촌에서 맨체스터·버밍엄으로 몰렸고 아동 노동과 슬럼, 그리고 중산층이 함께 생겼다. 이 변화는 100년 안에 유럽과 미국, 일본으로 번져 인류의 생활수준을 처음으로 지속적으로 끌어올렸다.

교역로 2개

희망봉 항로1500 – 1900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오간 것후추와 면직물, 그리고 나중엔 차와 아편. 지중해를 거치지 않는 길이 베네치아와 오스만을 밀어냈다.
거점리스본 · 카나리아 · 희망봉 · 모잠비크 · 고아 · 말라카
대서양 삼각무역1600 – 1850

유럽의 공산품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 유럽. 세 대륙이 하나의 경제로 묶였다.

오간 것유럽의 총기·직물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1,200만 명이 대서양을 건넜다.
거점리버풀 · 리스본 · 기니만 · 카리브 · 버지니아

스웨덴 제국

나라의 멸망 · 1721 · 인구 200만이 발트해를 쥐었던 100년

칼 12세는 초반에 연전연승했으나 러시아 내륙 깊이 들어갔다가 폴타바에서 궤멸했다. 니스타드 조약으로 발트해 동안을 잃으며 북유럽의 패권이 러시아로 넘어갔다. 표트르 대제가 그 자리에 제국을 선포한다.

【그때 그 자리】 17세기 발트해는 스웨덴의 호수였다.

핀란드·에스토니아·라트비아·독일 북부 일부가 스웨덴 것이었다.

인구는 200만이 안 됐다. 프랑스의 10분의 1이다.

그런데 유럽의 강대국이었다.

【왜 그렇게 됐나】 구스타브 2세 아돌프가 만들었다.

1611년 열일곱에 즉위했다.

군을 뜯어고쳤다.

대포를 가볍게 만들었다. 「연대포」라 불린 3파운드 포는 사람 몇이 끌 수 있었다. 보병과 함께 움직였다.

대열을 얕게 폈다. 그전까지 열 줄 넘게 세우던 것을 여섯 줄로 줄였다. 화력이 넓게 퍼진다.

기병에게 총을 쏘고 물러나는 대신 검을 들고 돌격하게 했다.

그리고 징병제를 폈다. 교구별로 병력을 할당했다. 유럽에서 이른 사례다.

용병에 기대지 않는 국민군에 가까웠다.

1630년 30년 전쟁에 뛰어들었다.

1631년 브라이텐펠트에서 황제군을 깼다. 개신교 진영이 처음으로 크게 이긴 전투다.

「북방의 사자」라 불렸다.

1632년 뤼첸에서 전사했다.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적진에 들어갔다.

【어떻게 흘렀나】 그래도 제국은 유지됐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독일 북부에 영토를 얻었다.

구리와 철이 있었다. 유럽 구리의 상당 부분이 스웨덴에서 나왔다.

팔룬 광산이 국가 재정의 큰 부분을 댔다.

그런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인구가 적었다. 전쟁을 계속하려면 사람이 모자랐다.

그리고 주변이 다 적이었다. 덴마크·폴란드·러시아·프로이센이다.

【그래서】 1700년 대북방전쟁이 났다.

러시아·덴마크·폴란드가 동시에 쳤다.

열여덟 살 카를 12세가 초반에 압도했다.

나르바에서 4만을 8천으로 깼다.

그런데 폴란드에서 6년을 보냈다.

그사이 표트르가 군대를 다시 만들었다.

1708년 러시아로 들어갔다가 겨울에 갇혔다. 300년 만의 혹한이었다.

1709년 폴타바에서 궤멸했다.

1721년 니스타드 조약으로 발트 연안을 거의 다 잃었다.

【남은 것】 스웨덴이 강대국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올라가려 하지 않았다.

1814년 이후 200년 넘게 전쟁을 하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평화를 유지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중립을 국시로 삼았다.

2024년 나토에 가입하며 그 정책이 바뀌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다.

카를 12세는 1718년 노르웨이 원정 중 참호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적의 탄인지 자기편의 암살인지 지금도 논쟁이다. 유해를 여러 번 발굴해 조사했다.

볼테르가 그의 전기를 썼다. 재능과 용기를 낭비한 사례로 그렸다.

지도에서 보기: 1715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사파비 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