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지도에 표시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틀린 데나 빠진 데를 알려주시면 확인하고 고칩니다.
이 브라우저에만 저장됩니다. 서버로 아무것도 보내지 않습니다.
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로마가 지중해를 장악했지만 그 부가 공화정을 무너뜨렸다. 그라쿠스 형제의 토지 개혁이 유혈로 끝나고, 군벌들이 사병을 거느리며 내전이 반복됐다.
고조선이 무너지고 한의 군현이 설치됐다. 저항 속에서 부여·옥저·동예 같은 정치체가 자라났다.
해당 없음
카틸리나의 음모를 폭로하고 안토니우스를 탄핵했다. 그의 라틴어 문장은 유럽 산문의 교과서가 됐다.
지중해 해적을 석 달 만에 소탕하고 동방을 정복했으나, 삼두정치가 깨진 뒤 파르살루스에서 카이사르에게 졌다.
갈리아를 정복한 군대로 로마를 차지했다. 공화정을 끝냈고 원로원에서 살해됐다.
자기 군대를 이끌고 로마 시내로 진군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처음 넘었고, 이후 카이사르가 같은 길을 간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300년의 마지막 통치자. 로마의 힘을 빌려 왕국을 지키려 했으나 악티움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나라의 멸망 · BC 63 · 너무 넓어서 지킬 수 없었다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가장 큰 조각이 파르티아에 동방을 잃고 시리아 한 귀퉁이로 쪼그라들었다. 왕위 다툼이 하도 잦아 나라 구실을 못 하자, 폼페이우스가 안티오코스 13세를 폐하고 속주로 편입했다 — 전투 없이.
【그때 그 자리】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뒤 부하 셀레우코스가 동방을 받았다.
가장 넓은 땅이었다. 아나톨리아에서 인도 국경까지다.
면적으로는 후계 왕국 가운데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가장 먼저 갉히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됐나】 문제가 여럿이었다.
첫째, 인구다. 그리스계 지배층이 극소수였다.
정복지에 그리스 도시를 세워 이주민을 채웠는데, 넓이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둘째, 다양성이다. 페르시아인·바빌로니아인·유대인·아르메니아인·박트리아인이 섞여 있었다.
공통의 정체성이 없었다.
셋째, 위치다. 사방이 국경이었다. 서쪽에 프톨레마이오스, 북쪽에 갈라티아, 동쪽에 파르티아와 마우리아가 있었다.
셀레우코스 자신이 인도의 찬드라굽타에게 아프가니스탄 일대를 넘기고 코끼리 500마리를 받았다.
동쪽을 포기하고 서쪽에 집중한 것이다.
【어떻게 흘렀나】 BC 3세기 중엽부터 갈라져 나갔다.
박트리아가 독립했다. 그리스계 총독이 세운 나라다.
파르티아가 일어섰다. 이란 고원을 가져갔다.
안티오코스 3세가 되찾으려 동방 원정에 나섰다. 「대왕」이라 불렸다.
일시적으로 회복했다.
그런데 서쪽으로 갔다가 로마와 부딪쳤다.
BC 190년 마그네시아에서 크게 졌다.
아파메이아 조약으로 아나톨리아를 잃고 막대한 배상금을 물었다.
그 배상금을 마련하려 신전의 보물에 손을 댔다.
안티오코스 3세가 엘람의 신전을 약탈하다 현지인에게 살해됐다.
【그래서】 아들 안티오코스 4세가 예루살렘 성전을 건드렸다.
제우스 제단을 세우고 돼지를 바쳤다.
할례와 안식일을 금지했다.
BC 167년 마카베오 반란이 터졌다.
성전을 되찾아 정화한 것이 하누카의 유래다.
유대가 사실상 독립했다.
그 뒤 왕위 다툼이 끝없이 이어졌다. 100년 동안 왕이 스무 명 넘게 바뀌었다.
형제가 서로 죽이고, 프톨레마이오스와 로마가 각각 다른 후보를 밀었다.
【남은 것】 BC 63년 폼페이우스가 시리아를 속주로 만들었다.
마지막 왕 안티오코스 13세는 그냥 폐위됐다. 싸움도 없었다.
남은 영토가 안티오키아 주변뿐이었다.
그래도 남긴 것이 있다.
셀레우키아와 안티오키아 같은 도시들이다. 안티오키아는 로마 시대에 제국 3대 도시가 된다.
그리스어가 서아시아의 공용어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신약이 그리스어로 쓰였다.
「셀레우코스 기원」이라는 연호를 만들었다. BC 312년을 원년으로 삼는다.
연속된 햇수로 연도를 세는 방식이 여기서 처음 나왔다는 견해가 있다. 그전까지는 왕의 재위 몇 년째로 셌다.
지도에서 보기: BC 1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프톨레마이오스 이집트 로마 공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