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
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 왼쪽 · 오른쪽 ▶
지도에 표시
주요 국가
오른쪽 게이지를 끌거나 키보드 ↑↓로 5천 년이 흐릅니다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주요 공격
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청동기의 붕괴

해양 민족의 이동과 함께 여러 왕국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1건

목야 전투BC 1046
주 vs 상

상 주왕의 폭정에 제후들이 등을 돌렸다. 주 무왕이 「하늘의 명」을 내세워 800 제후를 모았다.

목야 BC 1046

결과상의 병력이 훨씬 많았으나 전선의 노예병이 창을 거꾸로 돌렸다. 주왕은 스스로 불에 뛰어들었고, 천명 사상이 여기서 태어났다.

하루 만에 왕조가 바뀌었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해당 없음

그 무렵의 사건

BC 1046
목야 전투
천명이 옮겨간다는 논리가 태어났다.
주 무왕이 상 주왕을 쳤다. 주는 「하늘이 덕 없는 왕에게서 명을 거둬 갔다」는 천명 사상으로 왕조 교체를 정당화했고, 이 논리가 이후 3,000년 동아시아 정치의 문법이 된다.
BC 1050
페니키아 알파벳
서기관의 독점이 22자로 깨졌다.
쐐기문자는 수백 자, 상형문자도 수백 자였다. 페니키아인은 자음 22자로 줄였고, 상인이라면 며칠이면 배웠다. 그리스인이 여기에 모음을 더해 오늘날 우리가 쓰는 알파벳이 됐다.
BC 1000
다윗의 예루살렘
작은 산성 마을이 수도가 됐다.
다윗이 여부스족의 성을 빼앗아 도읍으로 삼았다. 남북 지파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지였다는 점이 선택의 이유로 꼽힌다. 3,000년 뒤에도 같은 이유로 다투는 땅이 됐다.
BC 1000
고조선이 모습을 드러내다
「삼국유사」는 단군의 건국을 BC 2333년으로 적었다. 고고학으로 실체가 잡히는 것은 비파형동검이 나오는 BC 10세기 무렵이다. 지도는 유물이 말하는 쪽을 따라 그렸다.
flag
BC 1000
노크 문화
사하라 이남에서 가장 이른 철.
나이지리아 중부에서 실물 크기에 가까운 테라코타 두상이 나온다. 눈이 삼각형이고 표정이 뚜렷하다. 같은 층에서 제철 유적이 나와, 이 지역이 청동을 건너뛰고 철로 갔음을 보여 준다.

교역로

해당 없음

나라의 멸망 · BC 1046 · 목야에서 노예병이 창을 거꾸로 돌렸다

주 무왕이 목야에서 주왕(紂王)을 쳤다. 상의 병력이 훨씬 많았지만 전선의 노예·포로병이 등을 돌렸다고 전한다. 주왕은 녹대에 올라 스스로 불에 뛰어들었고, 주는 「천명이 옮겨갔다」는 논리를 만들어 왕조 교체를 정당화했다 — 이후 3,000년의 문법이 됐다.

【그때 그 자리】

기원전 2천 년기 황허 중류에 청동기 사회가 있었다. 이보다 앞서 하가 있었다고 전하지만 문자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아 논쟁이 있다.

상은 20세기 초까지 전설로 취급됐다. 사마천의 사기에 왕의 계보가 적혀 있었지만 증거가 없었다.

1899년 학자 왕의영이 학질약으로 쓰던 용골에 이상한 글씨가 새겨진 것을 알아봤다. 거북 배딱지와 소 어깨뼈였다. 출처가 허난성 안양이었다. 1928년부터 발굴이 시작돼 상나라 후기 수도 은허가 나왔다.

【왜 그렇게 됐나】

이 나라를 움직인 것은 점이었다.

왕은 무슨 일이든 점을 쳐서 정했다. 전쟁을 할지, 사냥을 나갈지, 비가 올지, 왕비의 출산이 순조로울지, 이가 아픈 이유가 무엇인지까지 물었다.

뼈 뒷면에 홈을 파고 불에 달군 막대를 대면 앞면에 금이 간다. 그 모양으로 길흉을 읽었다. 그리고 물은 내용과 결과를 뼈에 새겨 보관했다.

이 점을 주관하는 것이 왕이었다. 조상신과 통하는 권한이 곧 통치의 근거였다. 제정일치 사회다.

【어떻게 흘렀나】

발굴된 갑골이 15만 점을 넘는다. 확인된 글자가 4,500자쯤이고 그중 1,500자가 해독됐다. 이 글자가 지금 한자의 직계 조상이다.

갑골문의 왕 계보가 사기의 기록과 거의 일치했다. 사마천이 천 년 전 기록을 정확히 옮겼다는 것이 확인됐다.

청동기 기술이 뛰어났다. 후모무정이라는 솥은 무게가 832킬로그램이다. 이만한 청동을 한 번에 녹여 부으려면 수백 명이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1976년 부호의 무덤이 도굴되지 않은 채 발굴됐다. 무정왕의 왕비인데, 갑골문에 그가 군대를 이끌고 원정한 기록이 여러 번 나온다. 무덤에서 청동 도끼 같은 무기가 나왔다. 3천 년 전 여성 장군이 있었다.

어두운 것도 함께 나왔다. 순장과 인신공희다. 왕의 무덤과 건물 기초에서 사람 뼈가 다수 나왔다. 갑골문에도 제사에 사람을 바친 기록이 있다. 강족 포로가 주로 쓰였다.

【그래서】

기원전 11세기 주 무왕이 목야에서 상을 무너뜨렸다. 마지막 왕 주왕이 스스로 불에 뛰어들었다고 전한다.

주는 하늘의 명이 바뀌었다는 논리로 자기 정당성을 설명했다. 천명 사상이 여기서 나온다. 하늘이 덕 있는 자에게 명을 주고, 덕을 잃으면 거둔다는 것이다.

이 논리가 이후 3천 년간 동아시아에서 왕조 교체를 설명하는 언어가 됐다. 조선이 고려를 대신할 때도 같은 말을 썼다.

【남은 것】

주왕을 술로 채운 연못과 고기를 매단 숲에서 놀았다는 주지육림 이야기는 주 쪽 기록이다. 망한 나라의 마지막 왕을 방탕함으로 설명하는 방식이 여기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상이 남긴 것은 문자와 청동기와 제사 방식이다. 조상을 제사하는 관습, 한자, 그리고 점을 쳐 길흉을 묻는 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진다.

주역의 뿌리도 여기 있다. 뼈에 금을 내어 읽던 것이 산가지로, 다시 괘로 바뀌었다.

2006년 은허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해독되지 않은 갑골문 3천 자가 남아 있다.

지도에서 보기: BC 15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