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지도에 표시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틀린 데나 빠진 데를 알려주시면 확인하고 고칩니다.
이 브라우저에만 저장됩니다. 서버로 아무것도 보내지 않습니다.
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서쪽에는 프랑크·서고트·동고트 왕국이 들어섰고 동쪽 로마만 제국으로 남았다. 유스티니아누스가 옛 영토를 되찾으려 했지만 역병과 재정 파탄이 뒤따랐다.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왜서로마가 사라진 갈리아에서 여러 세력이 남은 조각을 다퉜다.
결과클로비스가 갈리아 대부분을 통합하고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 아리우스파를 택한 다른 게르만 왕들과 달리 로마계 주민과 교회를 자기 편으로 만든 결정이었다. 프랑스의 시작이다.
열다섯에 작은 부족의 왕이 되어 갈리아를 통합했다. 다른 게르만 왕들이 아리우스파를 택할 때 홀로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스물셋에 쓴 책에서 지구가 자전한다고 했다. 원주율을 3.1416으로 계산했고, 일식과 월식이 그림자 때문임을 밝혔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인질로 자라 로마식 교육을 받았다. 이탈리아를 33년 다스리며 로마 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소수점 일곱 자리의 원주율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나라의 멸망 · 494 · 물길에 밀려 스스로 고구려에 들어갔다
송화강 유역의 오래된 나라가 북쪽 물길(勿吉)의 압박에 견디지 못하고 왕이 처자를 데리고 고구려에 투항했다. 고구려와 백제가 모두 부여에서 나왔다고 스스로 밝혔으니, 뿌리가 가지에게 흡수된 셈이다.
【그때 그 자리】
기원전 2세기 무렵 만주 쑹화강 유역의 넓은 평야에 부여가 있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은 이 땅이 오곡을 기르기에 알맞고 사람들이 키가 크며 성질이 강직하고 근엄해 함부로 노략질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고구려를 두고 사납고 노략질을 좋아한다고 쓴 것과 대비된다. 땅이 넉넉하면 밖에서 뺏을 이유가 적다.
【왜 그렇게 됐나】
부여의 제도는 독특했다. 왕 아래 마가·우가·저가·구가라는 이름의 대가들이 각각 사출도를 다스렸다. 말·소·돼지·개에서 따온 이름이다. 왕권이 절대적이지 않아, 흉년이 들면 왕을 바꾸거나 죽이자는 말이 나왔다는 기록이 있다.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12월에 열었다. 이때 죄수를 풀어줬다. 순장 풍습이 있어 많을 때는 100명을 함께 묻었다. 1책 12법이라 하여 도둑질하면 열두 배를 물게 했다.
【어떻게 흘렀나】
부여는 중국 왕조와 대체로 우호적이었다. 서쪽의 선비, 남쪽의 고구려와 맞서려면 배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위치가 부여를 눌렀다. 285년 선비족 모용외의 공격으로 왕 의려가 자살하고 1만여 명이 잡혀갔다. 346년 다시 모용씨에게 왕과 5만 명이 끌려갔다. 이 두 번의 타격에서 회복하지 못했다.
494년 고구려 문자명왕에게 항복하며 사라졌다. 700년 가까운 나라였다.
【그래서】
부여가 남긴 것은 영토가 아니라 계보다.
고구려의 건국 설화에서 주몽은 부여에서 내려온다. 백제는 왕의 성이 부여씨였고, 538년 성왕은 아예 국호를 남부여라 고쳤다. 발해도 부여의 옛 땅에 부여부를 두었다. 삼국이 모두 자기 뿌리를 부여에 댄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서로 싸우던 나라들이 같은 조상을 말했다는 것은, 그들이 서로를 완전히 남으로만 여기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뒷날 하나로 묶이는 바탕이 여기에 있다.
【남은 것】
부여는 오래 잊혔다. 기록이 적고 유적이 대부분 중국 지린성에 있어 연구가 늦었다. 한국사 교과서에서도 삼국 앞의 짧은 설명으로 지나가곤 한다.
그러나 만주에 700년을 버틴 나라가 있었고, 그 나라가 고구려와 백제의 출발점이었다는 사실은 한국사의 공간을 한반도 밖으로 넓힌다. 이 지도에서 부여를 제 자리에 그려 넣은 것도 그래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