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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해양 민족의 이동과 함께 여러 왕국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미케네 궁전이 무너진 뒤 북쪽에서 그리스어를 쓰는 집단이 펠로폰네소스로 내려왔다.
결과정복인지 이주인지 지금도 논쟁이다. 결과로 스파르타 등 도리아계 폴리스가 자리 잡고, 이오니아계는 소아시아로 건너갔다.
해당 없음
해당 없음
나라의 멸망 · BC 1100 · 글을 잃고 400년
필로스·티린스·미케네의 궁전이 차례로 불탔다. 선형문자 B는 함께 사라졌고 그리스는 300년간 문자 없이 살았다. 호메로스가 노래한 트로이아는 이 붕괴 직전의 세계에 대한 기억이다.
【그때 그 자리】 BC 1600~1100년 무렵이다. 그리스 본토에 궁전 국가들이 있었다.
미케네·티린스·필로스·테베·크노소스다.
「사자문」과 「아트레우스의 보고」가 미케네에 남아 있다.
슐리만이 1876년 그곳에서 황금 가면을 발굴하고 「아가멤논의 얼굴을 보았다」고 전보를 보냈다.
실제로는 300년쯤 이른 시대의 것이었다.
【왜 그렇게 됐나】 궁전이 중심이었다.
왕(와낙스)이 창고를 관리하고 배급했다.
선형문자 B로 기록했다. 양의 수, 기름의 양, 노동자의 배급량을 적었다.
그 문서가 남은 것은 궁전이 불탔기 때문이다. 점토판이 구워졌다.
필로스의 마지막 문서에 「해안 감시」에 관한 기록이 있다.
「감시자들이 해안을 지키고 있다」는 내용이다.
무엇을 기다렸는지는 적혀 있지 않다.
그리고 그 궁전이 불탔다.
【어떻게 흘렀나】 BC 1200년 무렵 거의 모든 궁전이 파괴됐다.
원인이 확정되지 않았다.
「바다민족」의 침입, 「도리아인의 남하」, 지진, 내부 반란, 가뭄이 거론된다.
지금은 여러 원인이 겹친 것으로 본다.
나이테와 꽃가루 분석에서 동지중해에 장기 가뭄이 확인된다.
무역망이 끊겼다. 청동을 만들 주석이 오지 않았다.
궁전이 배급을 못 하자 체제가 무너졌다.
【그래서】 그 뒤 400년을 「암흑기」라 부른다.
문자가 사라졌다. 선형문자 B로 쓴 점토판이 BC 1200년 이후 나오지 않는다.
쓸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 문자는 궁전의 회계용이었고, 궁전이 사라지자 필요가 없어졌다.
인구가 줄었다. 유적지 수가 크게 감소한다.
무덤이 작아지고 부장품이 초라해진다.
큰 건축이 사라진다.
【남은 것】 다만 이 시기에 두 가지가 일어났다.
철기가 자리를 잡았다. 주석을 멀리서 들여와야 하는 청동과 달리 철광석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에게해 건너 소아시아 해안으로 갔다. 이오니아다.
BC 8세기에 회복이 시작된다.
페니키아 문자를 빌려 알파벳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회계용이 아니라 누구나 쓸 수 있는 문자였다.
그 알파벳으로 「일리아스」가 적혔다.
400년 동안 노래로만 전해지던 것이다.
그리고 폴리스가 생겼다. 왕이 없는 도시다.
궁전이 사라졌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해석이 있다. 무너진 것이 돌아오지 않아서 다른 것이 생겼다.
지도에서 보기: BC 1500년의 세계